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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독일의 벚꽃엔딩

Schwetzingen Schloss에 가다

by 자상남



지난 3월 말 주말을 이용해 벚꽃놀이를 다녀왔다. 아! 벚꽃. 몽실몽실 하얀 벚꽃들이 활짝 피어 커다란 나무에 옹기종기 뭉쳐있을 때 그 귀여움과 깨끗함은 보는 눈을 시원하게 정화시켜준다.


내 고향에도 벚꽃이 많지만, 유독 20대에 들어 서울로 와 대학생활을 하면서 '벚꽃=낭만'이라는 공식을 의식하게 되었다. 벚꽃놀이는 그 자체로 '놀이' 이기에 충분하다.


독일에도 벚꽃이 있을까? 문득 궁금했다. 예전에 검색을 해보니, Bonn의 겹벚꽃 거리가 사람들 입에 오르락내리락하는 것 같다. 독일 내에서도 꽤 유명하지만, 사실 그렇게 전국구로 유명할 이유는 딱히 없어 보였다. 이유라고 한다면 벚꽃이 별로 없어서랄까. 가보지 않았지만, 끽해야 골목 하나 정도일 듯했다. 진해의 군항제, 서울의 윤중제 등에 비교하면 명함도 못 내밀 것 같았다. 근데 문득 생각해보았다. 과연 독일에서 살면서 벚꽃들을 찾아 꽃놀이를 간 사람들은 과연 몇 명이나 될까? 의심해보지 않을 수 없었다. 워낙 SNS라는 것이 팔로잉을 통해 구전되다 보니 어느 정도 직접 살펴보지 않으면 그 진가를 알아보기 힘들 때도 있지 않은가?


그래서 검색을 했다. 'Kirchblüte'는 독일어로 벚꽃이라는 뜻이란다. 정확히는 벚나무 꽃, 벚나무 꽃 개화 등 약간 중의적이다. 그랬더니 멀지 않은 곳에 벚꽃축제가 있단다. 심지어 온라인 홈페이지에서 벚꽃의 개화 정도를 실시간으로 사진으로 알려주고 있어, 방문 시기를 타진하기 용이했다. 그래서 무작정 떠났다. 홀로 보내는 유학생활 허파에 바람 좀 넣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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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씨가 무척 맑았다. 슈베칭엔은 작은 도시이지만, 베르사유 궁전처럼 넓은 성과 정원이 있어 여행을 하기 딱 좋은 고요한 도시였다. 깨끗한 거리와 볕을 즐길 수 있는 테라스는 칙칙한 독일과는 좀 거리가 멀어 보였다. 마치 프랑스나 이태리 거리를 걷는 느낌도 살짝 들었다. 웬 돼지 한 마리가 석상에 떡하니 있었다. 문득 살을 더 빼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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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운데 찻길을 두고, 양쪽에 테라스와 레스토랑들이 줄지어 있었다. 특이하게도 이곳은 음식점이면서 아이스크림을 팔고 있었다. 아무 생각 없이 앉아 아이스크림을 먹으며 햇빛이나 쬐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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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를 끊고 정원에 들어가니 가히 독일의 베르사유라는 느낌도 들었다. 아직 나무들에 잎이 없어 휑했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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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큰 궁전에서 옛 귀족들은 어떻게 살았을까. 인간의 욕심은 끝이 없다. 바로 벚꽃들이 모인 곳을 찾아갔다. 벚나무들은 인공적으로 조성된 공간에 옹기종기 모여있었다. 나무들의 수령이 꽤 된 것도 많았는데 새로 심어 확장시킨 구역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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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바둑판 식으로 조성했는데 바닥이 전부 잔디밭이라 오히려 꽃동산에 온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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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종을 알 수 없는 나무와 벚나무들이 어우러져 있었다. 때로는 어린 나무도 있었고, 반지의 제왕에서나 볼 법한 두꺼운 벚나무들도 있었다. 꽃들은 한국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그래서 좋았다) 그런데, 나무들의 모습이 무언가 원시적으로 다가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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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사람들처럼 나무 아래 넓은 수건을 깔고 챙겨 온 과일을 먹으며 책을 읽었다. 맑은 하늘 아래 시원한 나무 그늘은 안성맞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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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통 잘 포장된 길을 걸으며 나무를 구경하는 우리와 달리, 이곳은 정말 흙과 잔디를 밟으며 나무를 구경한다. 색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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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슷한 듯 다른 벚나무 느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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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읽다 나무들을 더 눈에 넣고 싶어 금방 덮었다. 문득 생각 나는 친구와 전화를 했다. 대화가 잘 통하는 사람과 통화를 할 때에는 시간이 가는 줄 모른다. 더불어 사라진 줄 알았던 내 유머도 본능적으로 나온다. 나와 맞는 사람을 만난다는 것은 몸이 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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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들 한 자리 차지하며 누워 햇빛을 쬐고 있었다. 이런 장면은 유럽 아니면 보기 힘들다. 아직은 기온이 높지 않을 때라 누워있자니 조금 추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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훌륭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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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안 되는 독일의 장점 중 하나는, 바로 이런 소박한 여유가 있다는 것이다. 인간의 욕심은 끝이 없다. 바쁜 한국에 가면 여유로운 독일에 오고 싶고, 그 여유가 심심함이 되어 다시 바쁜 한국을 찾게 된다. 결국 정답은 없다는 말이다. 하고 싶을 때 여유와 바쁨을 함께 가지는 것이 이상적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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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보다 나무가 더 재미있게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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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 어린 나무들도 있었다. 무럭무럭 자라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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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그러더라. 떨어지는 벚꽃 잎을 잡으면 사랑이 이루어진다고. 나도 하나 잡아 보았다. 과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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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공적인 맛과 자연적인 맛이 묘하게 어우러진 슈베칭엔 성의 벚꽃들이었다. 바둑판처럼 조성한 곳이었는데, 나무들과 잔디, 꽃들과의 조화는 그 어느 때보다 자연스러웠다. 살다 보면 우연히 그런 부조화가 조화가 되는 경우가 많은 것 같다. 사람들의 조합도, 내 커리어의 진행도. 내 독일행도 그런 우연의 화학적 결합이었으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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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핸드폰은 참 좋다. 화질도, 기능도 DSLR이 필요가 없을 정도다. 내 카메라는 유학을 떠나기 전 친한 친구에게 맡겼다. 안 쓰고 썩히는 것보다는 누군가 계속 쓰는 것이 서로 좋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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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정행각 좀 가리면서 해라 이것들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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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일 오전 일찍이었는데 뭔 사람들이 이렇게 많았는지.. 놀라지 않을 수 없다. 가끔 평일 오전에 조깅하는 중년의 남자들을 보면 흠칫 놀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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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인지 덕수궁 돌담길이 생각이 났다. 서울에도 참 갈 곳이 많은데. 미세먼지 때문에 전부 배렸다. 왜 해결이 안 되는 걸까? 이번 기말 페이퍼 중 하나는 이 주제로 글을 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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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약 내가 꿈을 이룬다면 그 장소에 수양 벚꽃이나 이렇게 특이하게 생긴 벚나무를 한 그루 심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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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냥 남들처럼 아이스크림이나 먹을 걸. 가성비 좋은 파스타는 좋았는데, 음료는 너무 달았다. 빛 좋은 개살구. 하지만 여행을 마치고 테라스에 앉아 음식을 먹으니 소풍 온 느낌이 났다. 글을 쓰다 보니 벌써 한 달이 지났구나를 실감한다. 본격적인 학기말에 돌입해 바빠지고 있는 요즘이다. 여유를 갖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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