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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자상남 May 02. 2019

#7. 독일의 벚꽃엔딩

Schwetzingen Schloss에 가다



지난 3월 말 주말을 이용해 벚꽃놀이를 다녀왔다. 아! 벚꽃. 몽실몽실 하얀 벚꽃들이 활짝 피어 커다란 나무에 옹기종기 뭉쳐있을 때 그 귀여움과 깨끗함은 보는 눈을 시원하게 정화시켜준다. 


내 고향에도 벚꽃이 많지만, 유독 20대에 들어 서울로 와 대학생활을 하면서 '벚꽃=낭만'이라는 공식을 의식하게 되었다. 벚꽃놀이는 그 자체로 '놀이' 이기에 충분하다. 


독일에도 벚꽃이 있을까? 문득 궁금했다. 예전에 검색을 해보니, Bonn의 겹벚꽃 거리가 사람들 입에 오르락내리락하는 것 같다. 독일 내에서도 꽤 유명하지만, 사실 그렇게 전국구로 유명할 이유는 딱히 없어 보였다. 이유라고 한다면 벚꽃이 별로 없어서랄까. 가보지 않았지만, 끽해야 골목 하나 정도일 듯했다. 진해의 군항제, 서울의 윤중제 등에 비교하면 명함도 못 내밀 것 같았다. 근데 문득 생각해보았다. 과연 독일에서 살면서 벚꽃들을 찾아 꽃놀이를 간 사람들은 과연 몇 명이나 될까? 의심해보지 않을 수 없었다. 워낙 SNS라는 것이 팔로잉을 통해 구전되다 보니 어느 정도 직접 살펴보지 않으면 그 진가를 알아보기 힘들 때도 있지 않은가?


그래서 검색을 했다. 'Kirchblüte'는 독일어로 벚꽃이라는 뜻이란다. 정확히는 벚나무 꽃, 벚나무 꽃 개화 등 약간 중의적이다. 그랬더니 멀지 않은 곳에 벚꽃축제가 있단다. 심지어 온라인 홈페이지에서 벚꽃의 개화 정도를 실시간으로 사진으로 알려주고 있어, 방문 시기를 타진하기 용이했다. 그래서 무작정 떠났다. 홀로 보내는 유학생활 허파에 바람 좀 넣고 싶었다. 




날씨가 무척 맑았다. 슈베칭엔은 작은 도시이지만, 베르사유 궁전처럼 넓은 성과 정원이 있어 여행을 하기 딱 좋은 고요한 도시였다. 깨끗한 거리와 볕을 즐길 수 있는 테라스는 칙칙한 독일과는 좀 거리가 멀어 보였다. 마치 프랑스나 이태리 거리를 걷는 느낌도 살짝 들었다. 웬 돼지 한 마리가 석상에 떡하니 있었다. 문득 살을 더 빼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가운데 찻길을 두고, 양쪽에 테라스와 레스토랑들이 줄지어 있었다. 특이하게도 이곳은 음식점이면서 아이스크림을 팔고 있었다. 아무 생각 없이 앉아 아이스크림을 먹으며 햇빛이나 쬐고 싶다.


표를 끊고 정원에 들어가니 가히 독일의 베르사유라는 느낌도 들었다. 아직 나무들에 잎이 없어 휑했지만.



이렇게 큰 궁전에서 옛 귀족들은 어떻게 살았을까. 인간의 욕심은 끝이 없다. 바로 벚꽃들이 모인 곳을 찾아갔다. 벚나무들은 인공적으로 조성된 공간에 옹기종기 모여있었다. 나무들의 수령이 꽤 된 것도 많았는데 새로 심어 확장시킨 구역도 있었다. 



이렇게 바둑판 식으로 조성했는데 바닥이 전부 잔디밭이라 오히려 꽃동산에 온 것 같았다.



수종을 알 수 없는 나무와 벚나무들이 어우러져 있었다. 때로는 어린 나무도 있었고, 반지의 제왕에서나 볼 법한 두꺼운 벚나무들도 있었다. 꽃들은 한국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그래서 좋았다) 그런데, 나무들의 모습이 무언가 원시적으로 다가왔다.



다른 사람들처럼 나무 아래 넓은 수건을 깔고 챙겨 온 과일을 먹으며 책을 읽었다. 맑은 하늘 아래 시원한 나무 그늘은 안성맞춤이었다.



보통 잘 포장된 길을 걸으며 나무를 구경하는 우리와 달리, 이곳은 정말 흙과 잔디를 밟으며 나무를 구경한다. 색달랐다.

비슷한 듯 다른 벚나무 느낌들


책을 읽다 나무들을 더 눈에 넣고 싶어 금방 덮었다. 문득 생각 나는 친구와 전화를 했다. 대화가 잘 통하는 사람과 통화를 할 때에는 시간이 가는 줄 모른다. 더불어 사라진 줄 알았던 내 유머도 본능적으로 나온다. 나와 맞는 사람을 만난다는 것은 몸이 안다.



다들 한 자리 차지하며 누워 햇빛을 쬐고 있었다. 이런 장면은 유럽 아니면 보기 힘들다. 아직은 기온이 높지 않을 때라 누워있자니 조금 추웠다.


훌륭하다. 


몇 안 되는 독일의 장점 중 하나는, 바로 이런 소박한 여유가 있다는 것이다. 인간의 욕심은 끝이 없다. 바쁜 한국에 가면 여유로운 독일에 오고 싶고, 그 여유가 심심함이 되어 다시 바쁜 한국을 찾게 된다. 결국 정답은 없다는 말이다. 하고 싶을 때 여유와 바쁨을 함께 가지는 것이 이상적일까?


꽃보다 나무가 더 재미있게 보였다.



아직 어린 나무들도 있었다. 무럭무럭 자라라.



누가 그러더라. 떨어지는 벚꽃 잎을 잡으면 사랑이 이루어진다고. 나도 하나 잡아 보았다. 과연?


인공적인 맛과 자연적인 맛이 묘하게 어우러진 슈베칭엔 성의 벚꽃들이었다. 바둑판처럼 조성한 곳이었는데, 나무들과 잔디, 꽃들과의 조화는 그 어느 때보다 자연스러웠다. 살다 보면 우연히 그런 부조화가 조화가 되는 경우가 많은 것 같다. 사람들의 조합도, 내 커리어의 진행도. 내 독일행도 그런 우연의 화학적 결합이었으니 말이다.



요즘 핸드폰은 참 좋다. 화질도, 기능도 DSLR이 필요가 없을 정도다. 내 카메라는 유학을 떠나기 전 친한 친구에게 맡겼다. 안 쓰고 썩히는 것보다는 누군가 계속 쓰는 것이 서로 좋으니.


애정행각 좀 가리면서 해라 이것들아!



평일 오전 일찍이었는데 뭔 사람들이 이렇게 많았는지.. 놀라지 않을 수 없다. 가끔 평일 오전에 조깅하는 중년의 남자들을 보면 흠칫 놀란다.


왜인지 덕수궁 돌담길이 생각이 났다. 서울에도 참 갈 곳이 많은데. 미세먼지 때문에 전부 배렸다. 왜 해결이 안 되는 걸까? 이번 기말 페이퍼 중 하나는 이 주제로 글을 쓴다. 



만약 내가 꿈을 이룬다면 그 장소에 수양 벚꽃이나 이렇게 특이하게 생긴 벚나무를 한 그루 심을 것이다.




그냥 남들처럼 아이스크림이나 먹을 걸. 가성비 좋은 파스타는 좋았는데, 음료는 너무 달았다. 빛 좋은 개살구. 하지만 여행을 마치고 테라스에 앉아 음식을 먹으니 소풍 온 느낌이 났다. 글을 쓰다 보니 벌써 한 달이 지났구나를 실감한다. 본격적인 학기말에 돌입해 바빠지고 있는 요즘이다. 여유를 갖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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