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기가 마무리 되었다. 방학 때 한 과목 시험을 공부해야 하지만 홀가분하다. 정말 바쁜 세 달을 보냈다. 사실 상 한 학기의 대부분을 시험기간으로 보냈다. 첫 학기에 비해 두 번째 학기는 나름대로 심적인 부담이 줄었다는 장점이 있었다. 근데 그것이 꼭 학기가 쉬워서라기 보다는 내 몸이 독일 대학원 공부에 적응을 해서 그런 것 같기도 하다. 여러 요소가 있었겠지만, 이번 학기는 분명 한 단계 진보했다. 건강상으로도, 공부로도.
그 중 하나는 거주환경이 좋아졌다는 점이다. 드디어 제대로 된 집을 구하게 되면서 완전히 만족하진 않지만 여러 모로 편리하고 편안한 삶을 살 수 있게 됐다. 어디 걸을 코스가 마땅히 없던 지난 임시거처에서 나는 어떻게 한 학기를 살았던 걸까?
하루의 대부분을 학교와 집에서 보냈다. 논문을 읽거나, 쉬거나, 잠시 장을 보고 음식을 해먹는 것 이외에는 역시나 딱히 하는 일이 없었다. 그러다 문득 동네 근처에 아주 좋은 산책 코스를 발견했다. 나는 하루에도 2-3번씩 나가 30분 코스를 한 바퀴 돌고 왔다. 걷기 운동도 되고 일시적으로나마 스트레스도 관리할 수 있으니 일석이조다. 더불어, 날씨가 맑고 시원한 지난 봄에 이 길을 걷노라면 사색하기 딱 좋아 더욱 애용하게 됐다.
집을 나와 조금 골목을 비집고 들어가다보면 이렇게 아파트? 단지 내 길이 나온다.
이 도시에서 흔하지 않는 중산층 이상이 살 법한 동네였다.
전혀 없을 것 같은 곳에 이렇게 숲길이 조성됐다. 집들이 양 옆으로 이어져 있다. 이곳에 사는 사람들은 정말 유럽의 여유를 만끽하는 것 같다.
늘 걷지만 사람이 그리 많지 않아 훨씬 좋았다.
오른쪽으로 갈까 왼쪽으로 갈까. 나는 처음에는 오른쪽으로 나머지는 전부 왼쪽으로 갔다. 인생에도 마찬가지로 가야 할 갈림길 앞에서 선택의 순간이 오곤 한다. 양쪽 길을 다 가는 것이 가장 좋은 선택의 지름길이겠지만, 만약 그렇지 못하다면 우리는 늘 도박아닌 도박을 해야 한다. 그것이 보이지 않는 다음 길을 정하게 된다. 인생의 묘미가 아닐까.
숲이 이어지더니 점점 민가는 줄어들고 숲이 우거졌다.
원시적인 아이들 놀이터. 거의 119 구조대 수준이다.
수령이 올라가는 숲.
정리된 길에서 점점 경계가 모호해지는 흙바닥으로 변한다. 아스팔트를 걷지 않는 것 만으로도 기분이 좋다.
급속도로 나무가 커진다.
내가 좋아하는 곳. 나만의 코스 마지막 부분에 왔다. 이제 반환점이니 돌아가자. 커다란 나무들이 정돈되게 이어져있다.
맑은 날씨와 시원한 봄공기를 만끽하며 이렇게 3-40분의 숲길을 돌았다. 이번 학기 '생존'의 숨은 공신이 아닐까. 아, 물론 아직 학기가 완전히 끝난건 아니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