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 청첩장 모임

24. 8. 21

by 글쓰는 엠지MZ대리



써온 글을 보니 7월에 안온한 나날들이 이어진다 기록한 바 있다. 그로부터 체 한 달이 지나지 않은 지금, 7월 의 나에게 돌아가 이렇게 귀띔해주고싶다. ‘얼마나 오래갈 것 같아? 머지 않았어.’ 역시 사람은 말을 조심해야 한다. 결혼을 두 달 정도 앞둔 시점에 회사에서는 카오스 같은 일들이 일어나고 있다. 바로 팀원이 전부 없어진 것. 정확히 말하면 팀장, 실무자 (나 포함) 3명, 인턴 1명의 구조에서 실무자 2명이 부서이동하고 퇴사했다. 그러니까, 실무자가 나 혼자 남은 상황이다. 올해 삼제가 끝이라 했는데 아닌가보다 싶다. 회사사람들은 나를 걱정하기도 하고, 위로하기도 하고, 누군가는 기회라고 귀띔해주기도 한다. 이 모든 주변인들의 다정한 참견은 내가 처한 상황이 누가보기에도 좋지 않다는 반증이 될 뿐이다.



그 와중에 속절없이 시간은 흘러 어느덧 본식일이 50일 가량 남았다. 나름대로 부지런히 준비한 덕분에 많은 일들이 마무리 되었지만 아직도 해야할 일들은 남아있다. 크게 본식 당일 준비와 청첩장 모임 두 가지 일이 있다. 본식 당일에 대한 준비는 드레스 고르기, 가봉, 식순, BGM, 식전영상 등…이 있다. 이건 하면 된다. 문제는 청첩장 모임이다. 야근과 남아있는 식 준비로 인해 청첩장모임을 다 할 수 있는 물리적 시간이 주어지지 않는다. 평일 점심 시간을 활용하고, 주말 아침 시간까지 틈틈이 만남을 채워넣었지만, 결국 본식까지 계획한 만큼 모든 분들에게 얼굴을 뵙고 인사를 드리는 것은 불가능하게 되었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얼굴 보고, 밥 사며 청첩장 돌리는 문화는 어디서 시작된걸까? 결혼을 축하하는 마음과 좋은 소식을 전하는 마음 사이에 때로는 오해와 서운함이 쌓이기도 한다. 대부분의 한국 결혼 커플은 겪는 소회를 나라고 빗겨 갈 일 없다는 걸 알지만 청첩장을 돌리고 소식을 전하며 인간관계가 ‘정리’된다는 경험자들의 말이 진실이었음을 깨닫는 요즘이다. 조금 더 정확하게 말하자면, 나는 인간관계가 ‘정리’된다고 느낀다기보다는 그것이 ‘정돈’된다고 느낀다. 비슷한 듯 보이지만 정리란 건 맺고 끊으며 영역 내의 사람과 그 밖의 사람을 나누는 일에 가깝다. 반면 정돈이란 건 어떤 선을 기점으로 사람을 나누기 보다는 마음이나 친밀함의 거리에 따라 관계에 차등을 두는 일이다. 그렇다고 모든 청첩장 모임에서 그 등급을 재지는 않지만 말이다. 이런 저런 생각을 하면 결국 머리가 복잡해진다.



그래서 나는 다소 과감하게 눈을 질끈 감아버리기로 했다. 어차피 청첩장을 전부 돌릴 수는 없다. 그렇다고 해서 회사다니고 결혼준비하며 매일매일 빠짐없이 약속을 잡아 내 체력을 축낼 수도 없다. 내 마음이 정돈한 순서에 따라, 물리적 시간이 허락하는 한에서 한분씩 좋은 소식을 전달하기로 했다. 설령 내 마음과 다르게 결국 얼굴을 뵙고 전부 인사드리지 못할지라도, 혹은 나의 연락에 심기가 불편해지는 누군가가 있을지라도 그건 내 마음의 과업이 아니라 상대방 마음의 과업이다. 그렇게 믿기로 했다. 한번에 한분씩. 좋은 소식을 전하는 나의 진심에 집중하기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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