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식까지 약 보름이 남았다. 그 사이 두 가지 사건이 있었다. 우선 결혼 전 마지막 혹은 유부녀로써 첫번째 명절이 있었다. 비록 예식을 올리기 전이지만 이미 같이 살고 있기도 했고, 시부모님이 멀리 지방에서 올라오시는 터라 우리 신혼집에서 명절을 보냈다. 이후에는 친정에 갔는데, 부모님 댁인 평택이 아니라 할머니 할아버지 산소가 있는 강원도에 갔다. 한마디로 ‘빡센’ 일정이었다. 표준어 중에 이 느낌을 살릴 단어를 찾을 수가 없다. 과중한 업무 스트레스와 명절의 체력소진 때문일까. 나는 명절 끝물부터 시름시름 앓기 시작하더니 결국 크게 아프고 말았다. 잔병을 이따금씩 치르긴 해도 크게 아픈 일은 일년에 한번 정도 였는데, 올해는 여러 번 크게 아프다. 여러모로 무리가 되고 있는 것은 명백한 듯하다.
둘째 사건은 이직이다. 결정되거나 그런 것은 아니고 그저 1차 합격일 뿐이다. 하지만 이 사실이 많은 점을 시사하는데, 어쩌면 적어도 향후 10년 혹은 그 이상 전직할 리 없다고 생각했던 미래에서 다른 가능성을 상상해보게 되었다는 점 때문이다. 사건은 바야흐로 기억도 잘 나지 않는 한두달 쯤 전… 퇴근 중이었던 나는 다소 화가 나 있었다. 매일 같이 지나는 서울 톨게이트를 막 지날 때였다. 왼쪽에 어떤 기업 건물이 눈에 딱 들어왔다. 사실 그 기업은 J언니가 지난 1년 동안 나에게 틈 날 때마다 지원해보라고 속삭이던 기업이었다. 관심없다며 대화를 넘겨왔는데 그날은 눈에 박혔다. 귀가하자마자 나는 이력서를 냈다. 그마저도 채용공고가 없어 상시 인재풀에 등록했을 뿐이었다.
그리고는, 잊어버렸다. 완전하게. 그런데 추석 연휴를 몇 시간 앞두지 않은 시점에 합격 메시지를 받았다. 이게 다 무슨 일인가.
이런 사건들을 통해 약간의 부가 효과들을 보고 있다. 이 사건을 시댁 식구들에게 공개한 예비남편 덕분에 가족들 모두가 이 사실을 알게 되었다. 원래라면 나는 확정되지 않은 것들을 오픈하길 꺼려하는 데 주위 사람들을 실망시킬까 걱정이 되고 무엇보다 나 스스로 실망할까 지레 겁먹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금은 이직도, 남아있는 것도 아쉽지 않은 상황이다. 1차 합격 사실이 가족, 친구 그리고 시댁 식구들에게까지 공개된 상황에서 나는 약간의 자존감 상승을 느꼈는데, 실로 이게 나의 정신 건강에 많은 도움이 되었다. 두번째 부가 효과는 회사에서의 내 태도이다. 그저 부담스럽고 버거웠던 지금의 책임이 한결 가볍게 느껴지기 시작했다.
나는 상사들에게 하고 싶었던 말은 하기 시작했다. 나의 상황에 대한 이해와 성과에 대한 인정, 그리고 이로 인한 승진을 더욱 강력하게 어필하기 시작했다. 나의 기류 변화를 느낀 걸까. 아니면 그저 우연의 일치일까. 상사는 나에게 부쩍 친절해졌고, 결혼 준비로 한 두시간 자리를 비워야 한다면 굳이 휴가를 쓰지 않고 다녀와도 된다고 했다.
이직이든, 승진이든 결정된 것은 아무것도 없지만 내 마음은 이전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가벼워졌다. 역시 행복을 결정짓는 건 결과보다도 마음 먹기라는 것을 다시 한번 깨닫는 사건이었다.
그나 저나 정말 보름밖에 남지 않았다. 웨딩홀과 각종 업체에서 당일 예식 진행을 위한 여러 체크리스트와 컨펌 사항, 잔금 처리 요청을 쏟아내고 있다. 다시 한번 정신을 바짝 차려야 할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