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벽주의자란 어떤 사람일까. 모든 일처리를 완벽하게 하는 사람일까? 아니다. 완벽주의자는 모든 것을 완벽하게 해내야 한다는 강박 때문에 어떤 것도 섣불리 시작하지 않는 사람들을 일컫는다. 적어도 지금의 나에게 적용되는 수식어는 그럴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어설픈 완벽주의자인 나는 사실은 미루기 전문가다. 사소한 결정은 그때그때 했어야 했는데, 뭔가 (그게 뭘까?) 잘하고 싶은 마음에 결정을 미뤘던 것들을 한번에 직면하게 되었다. 지난 9개월의 결혼준비 기간을 복기해보면 다소 결정이 늦었던 것들은 다음과 같다.
본식 메이크업 (스스로도 가장 놀라운 부분이다. 이렇게 중요한 걸 늦게 결정하다니…)
본식 배경음악
식전영상
포토테이블 사진 (결국 안했. 못했다)
식순 정하기
성혼선언문, 혼인서약서
식권 도장 (이것도 신랑신부가 직접 준비해야 한다는 사실이 더 놀라웠다!)
답례품 (아직도 주문 안했다)
그렇다고 내가 놀고 있는 건 아니다. 나는 아직도 하루에 수많은 결정을 하며 살아가는 기분인데, 이렇게 많은 것을 밀리고 있다니. 결혼 경력자들의 말의 따르면 준비하는 중에는 스트레스 받고 귀찮더라도 돌아보면 다 추억이니 즐기라고 하던데. 그 말을 듣고 마음에 새겨도 직면하는 순간 너무나 손쉽게 잊고 혈류가 병목되는 느낌을 받는다.
어제는 남자친구 친구 분이 하시는 이비인후과에 내원했다. 딱히 아픈 곳이 있진 않았지만 청첩장도 드릴 겸 평소 귀 관련 기저질환이 있어서 검사도 할 겸 방문했다. 이명, 청력저하 등 극한의 스트레스 상황에 노출되면 종종 이상이 있던 터라 여러 청력 검사를 받아본 적이 있던 나에게도 생소한 몇 가지 자세한 검사를 더 진행했다. 다행히 결과는 모두 정상 범위였지만, 그렇기 때문에 더욱 원인 불명이라 불안하기도 했다. 의사선생님의 진단은 이전 것과는 사뭇 달랐다. 대부분의 전문의는 그동안 나에게 메니에르 병을 의심했다. 하지만 증상이 완벽하게 일치하지 않았었다.
나는 메니에르가 아니라 시각에 더욱 많은 정보를 의존하는 사람이었다. 그래서 이 정보가 과도하거나 불균형이 야기되는 상황에 노출되면 균형을 잃고 어지럼증을 느끼는 사람이었다. 그 예로 나는 큰 소리를 싫어하고 밝은 불빛을 싫어한다. 집에서 남자친구가 음악을 틀어놓으면 그것이 클래식이 아닌 한, 시끄럽다고 느끼고 꺼달라고 한다. 또한 밝은 백색 조명을 싫어해서 남자친구가 없을 땐 거실 불을 결코 켜놓는 법이 없고 언제나 간접등이나 주황색 등을 사용한다. 또 운전할 때 터널을 지나면 출구가 가까울수록 스트레스를 받는다. 곧이어 엄청난 빛과 함께 시각 정보가 한번에 유입될 것이기 때문에 긴장하는 것이다. 나는 이 모든 것들이 다른 사람에게도 똑같이 적용되는 것인줄 알았다. 결국 나는 내 기준에 맞게끔 시각과 청각, 그리고 다른 감각 정보의 균형을 맞춰야 하는 조금 예민한 사람이었던 것이다.
이런 나에게 본식 날 주인공이 되는 일은 설레는 일임에는 분명 맞지만 동시에 극도로 스트레스를 받는 날이기도 하다. 그러니 하루하루 날짜가 다가올수록 밤잠을 설칠 수 밖에…
글을 쓰다보니 마음이 차분해지기 보다는 더 긴장되고 혈압이 올라간다. 남은 5일, 차분한 마음으로 잘 준비할 수 있는 방법은 없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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