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 본식 D-day

24. 10. 12

by 글쓰는 엠지MZ대리


9개월을 준비한 대망의 본식일이자 이 연재글의 마지막을 쓰는 날이다. 9개월 동안 글을 쓰며 때로는 하루, 이틀 간격으로 쓸 때도 있었고 또 어떤 때는 한 달을 넘게 아무 글도 쓰지 못하기도 했다. 돌이켜보면 더 많은 순간과 감정들을 남겼으면 좋았겠다는 아쉬움이 남지만, 어디 우리 인생에 아쉬움 없는 일들이 이뿐인가. 결혼 소식을 늦게 전하고, 혹은 끝내 용기내어 전하지 못하고… 모두 아쉬움이 남는다.



글을 쓰는 동안 예식 당일인 오늘 과연 글을 쓸 수 있을까 생각했다. 알람시계는 따로 맞추지 않았다. 일어나야 하는 시간까지는 두 시간이 남았지만, 한참 전에 눈이 번쩍 뜨여졌다. 글을 써야 하기 때문이다. 결혼을 해도 나는 쓰는 인간일 것이다.



그러나 결코 이전과 같은 인간일 수는 없을 것이다. 아내로써, 엄마로써, 며느리로써, 학부모로써, 워킹맘으로써, 누군가의 형수님, 형님으로써. 이전 과는 비교도 할 수 없는 역할들이 부여될 것이다. 앞선 글에도 밝혔지만 이 역할들을 모두 잘 수행해 내려는 다짐은 하지 않을 것이다. 나를 잘 아는 지인은, 나의 기준점이 다른 사람들의 완벽에 가깝다는 것을 알겠지만, 기준점을 낮출 수 밖에 없다는 사실은 결혼 준비만 하는 기간에도 명명백백히 밝혀졌다. 변화된 역할들을 수행하기 위해서는 에너지의 완급조절이 우선일 것이다. 건강한 정신과 신체를 유지하며 말이다. 무라카미 하루키의 말을 빌리자면, 참으로 불친절한 것을 다루기 위해 우리는 되도록 건강하지 않으면 안되는 것처럼.



이제와 밝히는 소회지만, 모두 내 결혼이 의외라고 했다. “너만은 결혼하지 않을 줄 알았는데.” 모두가 말했다. 한 사람을 빼고. Q는 이렇게 말했다.


“난 네가 결혼할줄 알았어. 행복한 가정 속에서 자란 사람은 반드시 그 가정을 이루고 싶어하거든. 그걸 알아보는 누군가가 반드시 존재할거고.”



내 글이니까 솔직하게 뱉어 보자면 나도 내가 결혼을 안(못)할 것이라고 생각하던 시절이 있었다. 정확하게 말하면 공기업에 입사하기 전까지 그랬다. 결론적으로 퇴사한 곳이긴 하지만 공기업에 입사를 하니 뭐랄까 나에게 갑자기 평생 직장이 생겨버렸다. 향후 30년 정도를 한 곳에 몸담을 생각을 하고 대략적인 벌이가 예상되니 삶을 장기적으로 계획할 수 있게 되었다. 아마 그 과정에서 결혼이라는 카드가 내 인생에 나타나기 시작한 것이라고 지금은 추론하고 있다.



다시 한번 무라카미 하루키의 이야기를 빌려본다. 지금은 세계적인 소설가로 성장한 그이지만 사실 소설가라는 직업은 안정과는 정반대다. 그럼 그가 도전적인 인물이었냐 한다면 그 역시 아니라고 대답해야 할 것이다. 실제로 그는 소설가와는 거리가 멀었다. 오히려 그는 소설을 좋아하는 평범한 애독자였다. 평범하게 살았고, 일을 하거나 가게를 운영하여 가정을 꾸린 그런 사람 말이다. 그의 생활은 안정되어 있었다. 그때였다. 어느 한 날, 논리적 연관성이 없는 어떤 시간과 장소에서, 그는, 문득, 깨달았다. 소설을 써야겠다고.


‘인생의 가파른 계단 하나를 가까스로 오르고 나서, 조금쯤은 트인 장소로 나온 느낌이 들었다. 여기까지 헤쳐 나온 이상 앞으로는 어떻게든지 잘 되어갈 것 같은 자신감도 생겼다. (중략) 그리고 - 나로서도 전혀 예상하지 못한 일이었지만 - 소설을 쓰고 싶다는 생각이 불현듯 솟아났다.’



나의 경우는 그것이 소설이 아니라 결혼으로 이어졌을 뿐이다. 결혼이라는 명제가 내 인생에 떠오르고 얼마 후 지금의 예비남편을 만났다.



마음에 결혼이라는 카드는 생겼다. 하지만 자녀라는 카드는 없었다. 그러던 어느 날, 지금의 예비남편을 만나 이제 막 연애를 시작했을 무렵이었다. 간만에 친구와 커피를 마시는데 친구가 대뜸 물었다. “아이 낳을 생각은 있어?” 여자라면, 아니 여자고 남자고 모두 살면서 이런 질문은 친구들끼리도 몇 번 하게 된다. 내 대답은 한결같았다. “나이들면 후회할 것 같아서 한 명정도는 낳아도 될 것 같지만, 인생 계획을 생각해보면 아이를 끼울 틈이 없는데.” 그런데 그날만큼은 대답이 달랐다. “지금 만나는 남자친구랑 결혼하면 두 명은 낳을 것 같아.” 내 입에서 뱉었다고 믿어지지 않는 말이었다. 그 자리에 제 3자는 없었다. 오로지 친구와 나 뿐이었다. 그 말을 뱉고 얼마 후, 남자친구와 나는 결혼을 약속했다.



자, 이 연재는 그 후로 9개월을 담은 이야기다. 이제는 이 이야기의 종착지를 향해간다. 나보다 더 행복했으면 좋겠는 사람을 만나 소중한 사람들을 사랑의 증인으로 삼아 평생을 약속한다. 아침에 눈을 떠 몸이 쑤시고 피곤하면 상대방도 그럴 것 같아 퉁퉁 부은 눈으로 안마를 해준다. 입맛이 없어도 퇴근하면 따뜻한 밥 향기를 맡게 해주고 싶어 여유가 되는 날에는 저녁 식사를 준비하고 기다린다. 그를 사랑하기 때문이 아니라 그가 행복했으면 좋겠기에 나오는 행동이다.



예비남편은 이런 내가 천사같다고 했다. 내조하기 때문이 아니라 주변 사람들에게 사랑받고 사랑을 나눌 줄 아는 내 모습이 그렇다고 했다. 이 모습이 우리 가정에 오래오래 깃들길 바란다.



적선지가 필유여경. 덕을 쌓은 집안에 복이 깃든다는 뜻이다. 내가 정한 우리의 가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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