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무작정고PD May 31. 2023

특강! 100명의 그들과 맞서다

첫 번째 시리즈 : <1%의 가능성에 대한 선택과 도전>에 관한 삶

“선배님, 퇴근하셨어요?”

“어, 퇴근하려고”


안전벨트를 하다 말고 운전석에 앉은 채로,

휴대폰 속 목소리에 귀를 기울인다.


“선배님, 저......부탁이 있어요”

“부탁?”


“들어주실 거죠?”


휴대폰 너머에서 들려오는,

J방송 라디오 PD인 정PD의 ‘부탁’을 생각해 본다.


“......뭔데?”

“J대학교 특강 좀 해주세요?”


“특강?”

“해주실 거죠?”


“......글쎄......”


순간 휴대폰을 들고 있는 손이 떨리고,

가슴은 매우 심하게 두근거리기 시작했다.


“문헌정보학과 학생들 대상으로, 한 100명쯤 돼요”

“100명 앞에서 강연을 해달라고......”


10명도 아니고 30명도 아닌 100명!

한 학년도 아닌 일이삼사 학년 전체!


그것도 20대 대학생들 앞에서 강연을 해달라니,

정말 부담 100배 되는 일이다.


“할 사람이 선배님 밖에 없어요”

“......아니야, 다른 사람 찾아봐......”


“해주세요, 선배님”

“......”


“교수님들한테 선배님이 하실 거라고 얘기했는데......”

“......확정은 짓지 말고, 생각할 시간 좀 주라”


자신의 모교에서 겸임교수를 하는,

정PD의 애절한 부탁은......


나를......


아주......

아주 거세게......


흔들고 있었다.


“한번 생각해 주세요, 선배님”

“......생각해 볼게”


운전석에 앉은 채로 차창 밖을 내다본다.


‘특강이라......’




‘특강, 수업, 강의, 강연’이란 말!


가족들이 모두 교사와 교수들이라서 수시로 들어왔지만,

전혀 다른 업종에 종사하는 나에겐 그저 ‘딴 나라’ 얘기였었다.


그래도 언젠가는,

‘강의 같은 것’을 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조금......


아주 조금은 갖고 있었다.


아마도,

교단에 서서 학생들에게 무언가를 알려주고 싶은,

유전적 열망이 내 몸속을 강렬하게 흐르고 있기 때문 아닐까?


그렇지만,

정PD의 제안을 피하고 싶었다.


주저,


주저주저하고 있을 때,


마음속,

저 깊은 곳에서 용솟음치는 소리가 들린다.


‘비겁하구나, 고돌진!’


‘항상 도전하라고 해놓고선’


‘거짓말이더냐’


‘겁나냐?, 고돌진!’


항상 후배들에게

‘부딪혀 봐, 할 수 있어’라고 말했던 내 자신이 부끄러웠다.


사실......


‘특강’이란 말을 들었을 때,

내 심장은 터져버릴 것 같은 흥분으로


몹시,


몹시도......


아주,

아주 많이......흔들리고 있었다.


‘한 번 해볼까?’


‘한 번 해보자!’




“한 번 해볼게, 특강”

“감사합니다, 선배님”


정PD의 간절함이 이루어진 순간이었다.


“선배님, 1시간이니까, 부담 갖지는 마세요”

“강의 자체가 부담인데......”


“언제나 잘하셨잖아요”

“......그런가......”


기분을 ‘업’ 시켜주는 정PD는

항상 자신감을 주거나 동기부여를 잘해준다.


“시간은 아직 여유가 있어요”

“언젠데?”


“두 달 후, 11월 말이에요”

“음, 알겠다”


“한 달 후에는 강의 주제를 알려 주세요”

“그래”


아직 까진 여유가 있다.




두 달이란 시간적 여유가 있다지만, 내 맘은 여유 없이 혼란스럽다.


<대학 도서관과 방송국 자료실에 대한 고찰>


아니야,

이 주제는 ‘얘들아, 이제 잘 시간이야’하는 것과 같다.


<지역방송국이 지역에서의 역할>


이건,

강연 시간에 들어오지 말라는 얘기지......


‘어떤 주제로 특강을 할까?’


고민하고......

또 고민하고......

그리고 고민하고......

그리고 또 고민하고......


그러다,

나의 20대를 생각해 본다.


‘삶’

삶에 대하여 두려웠었다.


어떻게 살아야 할지 몰랐고,

무엇을 하며 살아야 할지 몰랐다.


스스로에 대한 가치관과 신념이 제대로 자리잡지 않았으니,

내 주위를 맴도는 것은 ‘허무주의와 ‘염세주의’였고,


그 생각에 빠져있을 때,

찾아온 것은......


‘자살’이었다.


그리고 병원에서 눈을 떴다.


퇴원할 때,

바라본 ‘하늘’은......


눈이 부시게 '파란 하늘'이었다.


그 하늘을 자세히 보기 위해 ‘지리산 종주’를 하곤 했다.


지리산 안에서 올려다본

‘파란 하늘’은 고민에 대한 해결책을 내주며,

내 가슴을 항상 뜨겁게 만들어 주었다.


‘헤매보면 어때, 조금 천천히 가면 되는 거지’

‘길이 안 보인다고, 부딪혀봐......그러면 길이 보여’


그곳에서 만들어진 신념이 나에게 와서 자리매김하였다.


‘그래, 이거야!’


‘20대인 그들을 위해 말해주는 거야’


‘겁먹지 말고, 자신을 믿고 도전하며 살라고’


그렇게 생각해 낸 주제는

<1%의 가능성만 보여도 도전하라!>


이제 1시간 분량의 글을 준비하면 된다.


주제를 정했으니,

소재들을 뽑아내고 자료들을 모은다.


마지막으로,

가장 힘든......‘구성’을 하면 된다.


‘어떻게 구성을 할까?’

‘강연이니까, 주제에 대한 관심을 잊지 않도록 끌고 가야겠지’


마치 흥미 넘치는 추리소설처럼......



서점 한 구석의 '추리소설'서가에 쪼그려 앉아 책들을 살펴본다.


‘셜록 홈즈 시리즈’

‘괴도 루팡 시리즈’


돈이 없다.

책 살 돈이 없다.


여러 추리소설책들이 꽂혀 있는 서가를 둘러보며,


‘조금만 기다려 다시 돌아올게’


서점을 나선다.


“돌진아, 집에 있는 책들 먼저 보고 나서 추리소설 봐라”

“......추리소설 보고 싶은데......”


“그러면 조건이 있어”

“조건?”


“집에 있는 책 3권을 읽을 때마다, 우리들 앞에서 독후감 발표하면......”

“독후감 발표하면?”


“추리소설책 살 돈 줄게”

“3권당 1권이라......”


“싫으면 말고”

“알았어”


초등학생 고돌진에게는

책 3권을 읽고 독후감을 발표하면,

추리소설책 1권을 살 수 있다는 제안을 거절할 수 없었다.


어떤 때는


설 연휴 내내,


먹고 자고 읽고......

또 먹고 자고 읽고......

다시 먹고 자고 읽고......


그리고 발표하고......


그랬다.


그렇게

추리소설 1권을 보기 위해서, 책 3권을 읽고 독후감을 이야기했다.


책을 읽은 후 가족들 앞에서 한 발표가


‘내 강연의 시작은 아니었을까?’




‘내일 강연할 강의실을 둘러볼까?’


설렘과 걱정을 안고서 ‘J대 슈퍼스타관’로 들어간다.

1층을 거쳐, 2층, 3층......작은 강의실과 협업실들이 있다.


‘여기구나......학생들이 교단을 위에서 내려다보는 구조구나’


교단 위쪽에는 플랭카드가 붙어있다.

<특강 : 1%의 가능성만 보여도 도전하라! - 강사 : J방송국 고돌진 사서 겸 PD>


4층의 ‘온누리홀’ 커다란 강당이다.

계단을 밟으며 천천히 아래로 내려갔다.


교단 위에서 올려다보며 상상해 본다.


좌석을 가득 메운 학생들!

나에게 내리꽂는 시선들!


여기는......

마치 ‘반원의 콜로세움’처럼 보인다.


‘내일이면 검투사가 되어, 저 아래에 서있겠지’


‘그들은 매서운 창과 칼의 시선과 질문을 사정없이 던질 것이다’


‘나는 경험의 방패와 지혜의 칼로 막아야 하겠지’


겁이 났다.

겁이 많이 났다.


‘나...... 잘할 수 있겠지’


‘할 수 있다’


‘잊지마, 여기도 그냥 무대일 뿐이야’


이번엔

'강사'로서......'데뷔' 무대다.




성탄 전야제의 무대가 보인다.

그 무대 위에는 초등학생 합창단이 대기하고 있다.


공연을 보러 온 사람들로 가득 채워져 있고,

그들을 보며 초등학생 합창단은 긴장하고 있는 모습니다.


“차렷, 경례”


합창단의 맨 앞줄 하고도 한가운데에 서있는,

나 고돌진의 구령으로 인사를 하고 합창이 시작되었다.


‘그때부터일까?’


무대에 오르기 전,

대기실에서의 긴장감은 심장이 터지기 직전까지 팽창되어 가지만,


일단 무대 위에 오르면,

나를 비추는 조명으로 인하여 관객들의 모습은 사라지며,

나는 꿈을 꾸듯 그 공간을 '솜털 같은 가벼움'으로 날아다닌다.


그 후,

다양한 무대를 경험했다.

 

무대를 대할 때의 느낌은

올라가기 전의 두근거림과 올라간 후의 짜릿함이 반복되었다.


그리고......


1994년 11월!

S방송 그룹 전체의 단합대회에서

‘투투의 일과 이분의 일’을 가지고 올라간 데이터정보부팀이 3등을 했다.


그 무대는 컸다.


엄청나게 컸다.


관객 수로 보나 공연장 크기로 보나,

내 인생에 영원히......다시 만날 수없는 최대의 크기이다.


그곳은 ‘잠실 체조경기장’이었다.


그렇게 다양한 무대를 경험했다.


그렇다.

나는 무대공포증이 없다.


아니다.

무대 위의 쫄깃쫄깃한 짜릿함을 즐긴다.




‘저 위는 무대일 뿐이다’

‘한바탕 춤을 추고 내려오자’


‘평가는 그저 저들의 몫일뿐이다’

‘나는 나다움만을 보여주면 된다’


J대 ‘온누리홀’ 안은 100여명의 학생들로 가득 차있었다.


“여러분, 안녕”


정PD......아니 정교수가 올라와 학생들에게 인사한다.


“안녕하세요~~~~~”


그들이 내뿜는 기센 압력으로 인해,

한쪽 구석에 앉아있는 내게 전달되는 압박감은 상당했지만,


‘나는 나야’


마음을 다잡고 있었다.


“J방송국에서 제가 존경하는 선배님으로 피터팬처럼 자유롭고,

어린 왕자 같은 고돌진 PD님을 소개하겠습니다”


“와아~~~~~~~”


박수갈채가 강당 밖으로 넘어가고 있었다.


그들의 함성에 놀랐지만,

마음을 가다듬으며 교탁으로 걸어간다.


“안녕하세요”


저는

메이크업아티스트, 분장사입니다.


저는

PD입니다.


저는

시나리오 작가이며, 독립영화감독입니다.


그리고


저는 작가로서

글을 써서 책을 낼 거고,

그림도 그려 전시회도 가질 겁니다.


지금까지 말씀드린 것은


제가 도전했던 일이고,

도전하고 있는 일이며,

앞으로 도전할 일들입니다.


그렇지만,

저의 근본은 사서입니다.


여러분처럼

지방대학교인 C대학교 문헌정보학과(도서관학과) 출신입니다.


제 이름은

고돌진입니다.


만나서 반갑습니다.


고개를 숙였다.


다음은......


그다음은......


아무 생각이 안 난다.


머릿속이 하얘졌다.


그냥 하얗다.


하얗다.




창 밖에는 마치 눈처럼, 하얗게 서리가 내려앉았다.

11월 중순의 춘천 아침은 벌써 겨울냄새가 난다.


‘특강이 있는 날까지 보름정도 남았네’


춘천 여행을 나서기 전,

호텔 방 안에서 ‘특강 원고’를 펼치고 처음부터 끝까지 읽어본다.


원고를 쓴 후,

한 달 동안 '매일매일' 원고를 반복해서 읽었다.


이제는

원고를 보지 않고도

말을 할 수 있을 정도가 되었지만......


생각이 안 날 때,

말문이 막힐 때를 대비해야겠다.


‘음......손가락으로 짚으면......’


‘특강 원고의 글씨를 크게 뽑아 ‘비닐파일철’에 넣자’


고개를 숙이지 않고 앞을 바라보고 있지만,

손가락은 마치 점자를 만지듯이 말과 함께 원고를 짚어나간다.


생각이 안 날 때......


손가락이 짚고 있는, 원고를 바로 본다면,

막힘없이 말을 이어나갈 수 있을 것이다.


‘말과 손가락을 같이 사용해야겠다’


‘손가락으로 짚어 나가자’




이어갈 부분의 원고를 찾아 손가락을 갖다 댔다.


‘당황하지 말자’


‘학생들이 눈치채지 못하게 자연스럽게......’


호흡을 가다듬었다.


‘그래, 연습했던 데로 천천히......’


원고를 보고 손가락을 짚었다.


그리고

학생들을 바라보며 강연을 이어갔다.


<중략>


제가

1%의 가능성에 도전을 하지 않았다면,

J방송국에 취직도 못했을 것이고......


지금

이 자리......


여기에서

여러분을 만나지 못했겠지요.


1%에 대한 도전......


다른 사람의 예를 들어볼까요?


배우 이윤지 씨를 아시죠?

한 달 전 ‘S방송 강심장’에 나왔었는데,


이 분도

'1%의 가능성에 도전하는 사람이구나'하는 생각이 들더군요.


이 분이

K방송 연예가중계 MC를 했었잖아요.


MC를 할 수 있었던 이유가

프로그램 개편 때마다 제작팀에게 직접 전화를 걸었답니다.


전화를 걸어서는 물어봤대요.


“혹시 이번 개편 때, MC 그대로 가시나요?”


교체 계획이 없다고 하면,

그다음 개편 때 또 전화를 하고......


또 교체 계획이 없다고 하면,

그다음 개편 때 또 전화를 하고......


계속해서 자신을 '어필'했던 거지요.


그렇게 해서,

3번 만에 MC자리에 앉게 되었다고 하네요.


<중략>


제가 계속해서 도전하는 이유는


어느 날......


매너리즘에 빠져 살고 있을 때,

뒤통수를 얻어맞는 말을 들었습니다.


M방송 ‘드라마 선덕여왕’ 중에서


“뭐든지 하지 그랬어”

“......”


“그러면 알아, 땅에서 물이 솟아오를지”

“......”


“지나가던 공주가 구해줄지”

“......”


어린 덕만이 복야회에서 풀려날 때,

같이 데려가 달라는 어린 천명공주에게 말한 겁니다.


천명공주는

풀려나기 위해서 아무것도 하지 않았지만,


덕만은 풀려나기 위해서

복야회 사람들보다 자기 몸이 부서져라,

지극정성으로 기우제를 지냈거든요.


그 모습을 지켜보던 복야회 두목이

감복하여 덕만을 풀어주었던 것입니다.


그런 덕만을 보며

자신도 '풀어달라'는 천명공주에게......


복야회 두목이 이렇게 말합니다.


“넌, 뭘 했는데......”


“넌, 뭘 했는데......”


여러분!

뜨끔하지 않으세요?


아무것도 안 하고 있는,

저는 뜨끔했습니다.


지금부터

여러분도 뭐든지 시작하길 바랍니다.


<중략>


도전하다 보면,

너무나도 힘들어 포기하고 싶은 마음도 생길 겁니다.


산 정상에 오르기 직전이 매우 매우 힘들고,

태양이 뜨기 직전이 가장 많이 춥습니다.


요즘 ‘강남스타일’로 잘 나가는 ‘싸이’가 말하더군요.


“지치면 지는 겁니다. 미치면 이기는 겁니다”


여러분도

여러분의 꿈을 향해 미치시기 바랍니다.


강연을 마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끝났다.

드디어 끝났다.


‘쉬고 싶다’




쉬고 있었다.

아니, 탈진해 있었다.


어두운 거실 창문으로

도시의 불빛들이 들어왔고, 거기에 달빛이 더해졌다.


어렴풋이 휴대폰을 보니, 정PD의 문자가 와있었다.


‘선배님, 고생하셨어요’


‘명강의 잘 들었습니다’


‘아이들이 좋대요’


특강을 들은 학생들이 정PD에게 보낸

후기 문자를 캡처해서 내게 보내줬다.


‘음, 반응이 좋군’


‘걱정했었는데....’


그들에게 말했던......


‘겁먹지 말고, 자신을 믿고 도전하며 살라’는 말은

지금 나에게도 말하고 싶은 말이었다.


소파에 누워있던 몸을 일으키며, 창문 밖을 바라본다.


‘참, 예쁘다’


‘애썼다’


'애썼다, 고돌진'


도전을 마쳤다.

또 하나의 도전을 또 마쳤다.


다시 강연을 할 기회가 찾아온다면 좋겠다.

또 한 번 해보고 싶다.







- 무작정고PD 무작정고피디 -

이전 08화 레디 액션! 머릿속 상상을 눈앞에 실현시키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