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 공간이야기
서울 시내를 걷다 보면 예전보다 부쩍 늘어난 공공미술작품들이 많이 보여요. 예전에도 있었는데 크게 시선이 가지 않았던 작품들도 있지만 어느 순간부터는 보려고 하지 않아도 눈에 쉬이 들어오더라고요. 아무래도 제가 자주 지나게 되는 곳이 박물관과 미술관이 밀집한 광화문이나 시청 쪽이라 더 그렇겠지만 어느 정도 규모를 갖춘 일반 사옥 건축물 내외부에는 어김없이 회화·사진·조각 작품들이 한두 점씩은 놓여있죠. 평소 미술작품에 관심이 없는 분들이라면 스쳐 지나가는 경우가 많겠지만 관심을 갖고 보기 시작하면 정말 꽤 많은 작품들이 주변에 있답니다.
이곳을 한 번도 안 지나간 분이라면 모를까, 아마 이 작품을 못 본 분은 거의 없을 거라 확신합니다.
서대문 방향으로 서울역사박물관, 씨네큐브, 정동길로 가다 보면 어김없이 마주치는 이 작품은 조나단 보로프스키 Jonathan Borofsky (1942~, 미국)의 <해머링 맨 Hammering Man> (2002)으로 35초에 한 번씩 망치질을 하는(시간 한정, 주말, 공휴일 작동 쉼) 행위를 통해 노동과 삶의 가치를 상징하죠. 스틸과 알루미늄이 주재료인 22m의 이 대형 조각은 광화문 청계천 입구에 있는 다슬기 모양의 < SPRING>(2006, Claes Oldenburg (1929- , 스웨덴) + Coosje van Bruggen (1942-2009, 네덜란드) 부부 공동제작)과 함께 광화문의 랜드마크가 되었는데요, 독일·스위스·미국 등에 이어 7번째로 설치된 이 작품이 바로 오늘 소개드릴 세화 미술관의 대표 소장품입니다.
이미지 출처:https://www.mcasd.org/image-stop/image-hammering-man-la-jolla, https://travel.sygic.com/en/poi/hammering-man-poi:14030057
<해머링 맨>은 노동자의 모습을 형상화한 키네틱 kinetic 조각 작품으로 대부분 도심에 설치되어 있는데 처음 설치되었을 땐 '그래도 이런 작품은 넓은 대지 위에 딱 하나만 서있어야 하지 않나?' 하는 생각이 볼 때마다 들더라고요. 고층 빌딩 옆에 바로 붙어있어서 빽빽하고 갑갑한 느낌이었거든요. 근데 익숙해지다 보니 나름 괜찮더라고요, 특히 쉽게 찾을 수 있는 상징물이라서 주변 위치를 설명할 때도 유용하고요. 조용한 대지 위에 설치된 작품은 아쉬운 대로 국립현대미술관 과천관 야외조각 정원에 설치된 <노래하는 사람>(1994)으로 만족하자고요, 이 작품 역시 동일 작가 작품으로 시카고 아트페어를 기념해 만든 환경조각입니다.
세화 미술관은 <해머링 맨> 곁에 우뚝 선 흥국생명 광화문 사옥 3층에 있어요. 흥국생명이 미술관 운영을 지원하고 있죠. 1950년에 창립한 태광그룹(原 태광산업)의 사업 영역은 섬유·석유화학·금융·미디어·인프라·레저· 육영· Art 분야로, 산하에 태광산업을 창업한 일주(一洲) 이임용 회장(1921-1996)과 세화(世和) 이선애 이사장(1927-? 사망)의 호를 딴 학교법인 일주세화학원(1977, 세화여고·세화여중·세화고를 차례로 세움), 장학사업과 교육·학술·문화지원 사업 등을 위해 사재로 만든 일주학술문화재단(1990), 예술 문화지원 사업을 위한 세화문화재단(2009)을 두고 사회 공헌사업을 펼치고 있습니다. 1973년 태광그룹이 흥국생명을 인수했고 2000년 흥국생명 신문로 사옥이 신축된 후 2007년부터 문화예술 후원 활동의 일환으로 현대미술 전시를 개최하기 시작했죠. 세화문화재단이 세워진 이듬해 3월 일주&선화 갤러리를 정식 개관하여 2016년 1월까지 국내외 작가 교류전, 타 기관과의 연계 기획전, 미디어전 등의 전시를 꾸준히 열었고 2017년 세화 미술관이라는 이름으로 확장 개관하며 현재에 이르렀습니다.
흥국생명 신문로 사옥은 그 자체가 전시장입니다. 내부 건축은 평이한 편이지만 전 층에 미술작품을 전시하고 있어 건물 투어만 해도 볼 수 있는 작품이 꽤 있어요. 예술영화 전용관인 씨네큐브도 B2층에 있고요.
미술관 홈페이지 신청을 통해 화&목요일마다 진행되는 1F 예술작품 투어는 외부의 <HAMMERING MAN>(2002, Jonathan Borofsky)은 물론 로비에 설치된 <YOUR LONG JOURNEY>(2008, Fré Ilgen) , <아름다운 강산>(2010, 강익중) 등 15점의 세계 유명 작가의 작품을 미술관 에듀케이터의 설명으로 들을 수 있습니다. 나와 관련 없는 사무공간, 그것도 경비 인력이 있는 곳에 들어가기가 꺼려지는 건 당연하지만 여긴 로비가 열린 전시장 공간이라 큰 걱정 없이 둘러보셔도 됩니다. 대형 작품들이 로비에 설치되다 보니 전시 환경 면에서 아쉬운 부분이 있긴 하나 꼭 투어에 참여하지 않아도 매 작품마다 설치된 설명이 있고 또 QR코드로 미술관에서 제공하는 소장품 해설도 볼 수 있어 혼자 둘러보기도 편합니다.
2층과 3층을 연결하는 유리 계단도 작품인데 고소공포증이 있는 분이라면 엘리베이터 사용을 권하지만 아닌 분들은 걸어볼 만합니다.
3층 미술관은 단순한 구조로 1·2 전시장과 아트숍으로 구성됩니다. 현재 미술관에서는 《손의 기억》이란 전시가 진행되고 있어요. 제목이 마음에 들어 전시장을 찾았다가 작품에 반해서 나왔습니다. 이날은 개인적으로 굉장히 만족스럽지 못한 하루였는데 마지막에 본 《손의 기억 Embroidered on Memory》(2020.9.16 - 2021.2.28) 전시가 좋아서 기분 전환이 제대로 됐어요. 《손의 기억 Embroidered on Memory》은 '오늘날 현대 미술 흐름에서 예술가의 손끝에서 시작되는 창작행위보다 개념이 앞세워진 보이지 않는 위계에 대한 예술의 근원적 기능과 역할에 대한 반성'을 꾀한 전시입니다. 타이틀에 맞게 '장인 정신'이란 단어가 자연스럽게 떠오르는 작품들도 구성되었어요.
5명의 작가가 선보이는 작품들은 모두 수작업을 통해 재료와 시간을 쌓아가며 완성시켰죠. 손의 기억을 타고 녹아든 제작 과정이 그 속에 오롯이 살아있고 전통적인 방식과 현대적인 방식, 전통 매체와 현대 매체가 공존하고 있어 익숙하지만 새롭습니다. 감상하기 어렵지 않도록 캡션도 잘 되어 있어서 부담 없이 가서 보면 됩니다. 더 자세히 알고 싶으시면 도슨트 투어에 참여하셔도 되고요.
작품 설명을 좀 적을까 하다가, 그것보다는 직접 가셔서 보면 좋을 것 같아서 생략합니다. 설치작품은 사진으로는 그 기세를 다 담을 수가 없어서 무조건 현장에서 보셔야 하고, 직접 체험도 해보셔야 기억에 오래 남잖아요. 김순임, 정문열, 조소희, 최성임, 최수정 작가의 작품들이 어느 하나 빠지는 것 없이 좋으니 이 근처에 지날 일 있으면 꼭 들러서 보세요, 후회 안 하실 겁니다.
더 추워지기 전에요~
참, 나오는 길에 아트숍 그냥 지나치지 마세요. 그곳에 놓인 스툴 의자에 앉아야 해머링 맨을 가깝게 보기 딱 좋은 높이가 되거든요. 맨날 올려다보던 조각 작품을 가까이에서 비슷한 눈높이로 볼 수 있는 기회이니 잊지 마시고요,
오늘 하루도 마무리 잘하세요 : )
https://www.sehwamuseum.org/main.d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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