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둘리뮤지엄 DoolyMuseum 》도봉구 시루봉로1길

예술 공간 이야기

왕가위 감독의 영화〈동사서독東邪西毒 Ashes Of Time>(1994)을 보면 "취생몽사醉生夢死"라는 술이 등장합니다. 마시고 나면 모든 걸 잊게 만드는 술이죠. <동사서독>은, 제 의지보다는 전적으로 친구의 선택으로 본 영화인 데다 정말 오래전에 봐서 내용은 가물가물한데, 이상하게 "취생몽사"라는 술 이름은 또렷이 기억이 납니다. 연관 기억으로 유덕화의 "망정수忘情水"라는 노래도 생각나고요. '사랑을 잊게 하는 물'이란 제목의 노래인데, 당시 영화 <동사서독> 속 "취생몽사"를 떠올리며 자주 들어서 후렴도 따라 부를 수 있을 정도라는. '기억'이란 단어를 떠올리다가 문득 생각났는데, 다시 보고 싶네요 <동사서독>.



그렇게 시간이 지나도 잊히지 않는 것 중에는, 어린 시절 우리를 텔레비전 앞으로 불러 모은 만화 캐릭터도 있죠. 시간이 유수같이 흘러 유년시절과 속절없이 멀어졌음에도 조금의 힌트만 주어지면 거짓말처럼 새록새록 떠오르니까요. 각 세대마다 선호하는 만화 그리고 좋아하는 캐릭터가 있겠지만, 저 역시 성장기에 만난 수많은 만화 캐릭터를 좋아했고, 지금도 좋아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지금까지 만화 주제곡을 거의 완벽하게 따라 부를 수 있는 건 ‘아기공룡 둘리’ 뿐입니다. “요리 보고 조리 봐도 알 수 없는 둘리~ 둘리~”. 또 라면을 끓일 때마다 "라면은 구공탄에 끓여야 ~ 후루룩 짭짭 후루룩 짭짭 맛 좋은 라면" 이런 가사들도 생각나고요. (그러고 보면 멜로디와 함께 텍스트를 외우는 암기법은 꽤 효용성이 높은 것 같다는 ㅎ)

그래서 오늘은, 가정의 달을 맞아 둘리뮤지엄을 소개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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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리뮤지엄 입구©네버레스 홀리다


토종 캐릭터인 둘리는, 1983년부터 1993년까지 10년간 청소년 월간 만화책 '보물섬'에 연재되어 대중에게 큰 사랑을 받았고 이후 텔레비전 애니메이션(1987), 영화(1996, 아기 공룡 둘리-얼음별의 대모험)로도 제작되어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어요. (일부 OTT에서 둘리 시리즈를 제공하고 있습니다.) 육식 공룡 ‘케라토사우루스’를 모티브로 그려졌다는데, 발표 버전마다 약간의 차이가 있어 이견이 있긴 해요. 둘리 코로 알고 있는 그 하얀 동그라미가 '뿔'이라고 했던 방송을 본 거 같긴 한데... 기억이 가물가물~ 원래 7세 아이로 그리려고 했는데 당시 어린이가 어른에게 반말하는 것을 엄격하게 제재했던 사회 기풍 때문에 공룡 캐릭터로 탄생했다고 하죠. 항상 혀를 반쯤 내밀고 있고, 말썽꾸러기에 고길동에겐 늘 반말로 응수하는, 정도 많고, 외계인에게서 전수받은 초능력도 사용하는 다채로운 캐릭터예요. 엄마를 찾을 땐 또 왜 그리 애절한지. 이미 40년 가까이 되었는데 여전히 문화 산업은 물론 다양한 업계의 상품 이미지로 끊임없이 사용될 정도로, 정말 잘 만든 국산 캐릭터입니다. (인터넷 서점 알라딘에서도 굿즈 판매 중인데... 정말 다 갖고 싶다.... 너무... 너무....)



쌍문동에 둘리뮤지엄이 들어설 수 있었던 주된 이유도, 원작자인 김수정 작가가 둘리를 그릴 때 쌍문동 우이천변에 살면서 작가의 주변 요소들을 만화 속에 고스란히 반영했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만화에 등장하는 대사나 점포명, 버스 등이 모두 다 쌍문동을 가리키고 있어요. 만화 속 고희동의 집도 김수정 작가가 살았던 집을 모티브로 했고요. 어떤 예능 프로그램에서 고희동을 "대단한 사람"이라고 재평가했는데, 그 이유로 그가 살고 있는 집이 근처 다른 집에 비해 월등히 넓은 부지를 차지한 단독주택이고, 또 전혀 연고가 없는 둘리, 도우너, 또치를 모두 품고 살았다는 점을 들었어요. (냉장고에도 먹을게 가득~) 어렸을 땐 워낙 주인공에 집중하다 보니 그런 생각을 하지 못했는데, 성인이 되고 보니 정말 대단한 인물이긴 했네요, 정도 많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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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둘리뮤지엄 https://www.doolymuseum.or.kr/html/sub01/sub01_0104.php


둘리뮤지엄은 도봉구 쌍문동 둘리 근린공원 안에 있어요. 국내 최초 단일 캐릭터 공립 박물관으로 2015년 7월에 개관했고, 2020년 5월 도봉문화재단으로 운영 법인이 바뀌어 운영되다가 작년 코로나 방지 차원의 휴관과 리모델링을 거쳐 올해 1월에 재개관했죠. 예전부터 가보고 싶었는데 집에서 너무 멀기도 하고 시간도 애매해서 못 가보다가 최근에 다녀왔어요. 하필 갔던 날이 장날인지 비가 와서 외부에서 찍은 사진은 쨍한 게 하나도 없네요.



둘리 머리 형상을 로고로 사용하고 있는 둘리뮤지엄은, 전시 체험 시설을 갖춘 뮤지엄동과 도서관동으로 나눠집니다. 연면적 4,151㎡, 지하 1층에서 지상 3층 규모로, 토종 만화 캐릭터를 주제로 한 시설로는 국내 최대 규모라고 해요. 뮤지엄동 지하 1층에는 주차장, 영화 상영관, 전시관이 있고 지상 1층부터 3층까지 전시 체험관, 전시홀, 작가의 방, 어린이 실내 놀이터, 둘리 캐릭터를 스테인드글라스로 접목한 카페테리아, 옥상정원, 아트숍 등이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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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리뮤지엄 입구, 전시실 내부, 매직 어드벤처 영상 이미지©둘리 뮤지엄 사진: 네버레스 홀리다


전시동은 관람객들이 둘리의 성장 스토리를 접하며 원작에서 선별된 에피소드를 직접 체험할 수 있도록 꾸며져 있어요. 벽을 치거나 누르거나 소리를 내야 작동이 되는 전시물들이 대부분이죠. 때문에 마음껏 무언가를 두드리고 싶은 아이들과 동심으로 돌아가고 싶은 어른들이 적극적으로 참여해야 관람이 수월한 곳입니다. '매직 어드벤처'와 '김파마의 작업실', 유령 버스 4D극장, 영화관 등이 핵심 콘텐츠이지만, 이 밖에도 둘리 원화 전시, 만화 제작 과정, 피겨 등 다양한 볼거리를 제공합니다. 저는 작가의 초기 원고와 곳곳에 배치된 둘리 피겨가 제일 마음에 와 닿았어요. 코로나 이슈로 일부 대면 시설 및 프로그램 참여가 어렵고, 옥상 정원 및 둘리 캐릭터 스테인드글라스로 꾸며진 카페테리아를 이용할 수 없어서 아쉽기도 했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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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리뮤지엄 내부 사진 © 둘리뮤지엄 사진: 네버레스 홀리다


전시 내용도 괜찮았어요. 특히 2층 '김파마의 작업실'은 둘리 탄생과 이후의 기록을 잘 모아둬서, 둘리를 모르는 관객도 충분히 몰입할 수 있게 해 뒀고요. 1층과 지하층의 영상도 재밌었어요. 은근 볼거리가 많아서 한 2시간 정도 보고 나왔으니 다른 분들도 그 정도 시간을 예상하면 됩니다. 단지, 아이들의 체험이 주가 되다 보니 군데군데 고장 난 장치들이 좀 눈에 들어오는데, 바로바로 원상복구가 되진 않더라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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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리뮤지엄 전시실 내부 및 영상 이미지 © 둘리뮤지엄 사진: 네버레스 홀리다


뮤지엄은 정말 깊숙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가면서도 너무 멀다 멀어~' 여러 번 외쳤는데, 결과적으로는 가보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왜냐하면 둘리뮤지엄으로 향하는 길은 둘리 테마거리로 지정되어 다양한 둘리 캐릭터 설치물들을 만날 수 있거든요. 쌍문역이 둘리 역이라는데 저는 버스를 타고 가서 거긴 들러보지 못했고요, 세 번째로 갈아탄 마을버스가 우이천 위 쌍문교를 건너는 순간, 멀고 긴 거리의 불편함이 환희로 대체된 기억은 있습니다. '아기공룡 둘리'에서 빙하를 타고 내려온 둘리가 처음 발견된 곳이 도봉구 쌍문동 우이천 다리인데, 그 의미를 살려 우이천 옹벽에는 둘리 탄생 과정을 다룬 350m 길이의 벽화가 있거든요. 만화벽화로는 국내에서 가장 큰 규모로 버스를 타고 지나가다 보면 바로 눈에 들어와 그때부터 마음이 설레고 정신이 번쩍 들더라고요. 우이천에서 테마거리 산실인 둘리뮤지엄까지 가는 길에 만나는 119, 주민센터, 경찰서, 버스 정류장, 가로등에는 둘리 패밀리 캐릭터로 꾸며진 벽화, 설치 작품, 래핑 등 다양한 요소가 스며들어 있어 정말로 중간에 몇 번이나 내릴까 고민 하게 됩니다. 물론, 그러다 초행길인 뮤지엄에 닿을 수 없을까 봐 실행에 옮기진 못하고 눈으로 익혀둔 후에 내려오는 길에 쭉 걸어봤지만요. 생각보다 짧더라고요 뮤지엄에서 우이천까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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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리 테마거리 속 둘리패밀리©네버레스 홀리다


또 언제 갈지 몰라 저는 아트숍에서 이것저것 사 가지고 돌아와 눈앞에 잘 모셔두고 있어요. 때마침 친구 생일이어서 아트숍에서 산 둘리 피겨를 선물했는데, 좋아해 줘서 기분도 좋았고요. 소박한 바람이라면, 다음에 갈 땐 카페테리아에서 둘리 라테 아트 음료나 빵을 먹어보고 싶어요. 직원분한테 여쭤봤더니 라테 아트 그런 건 없다고 하긴 했는데, 그래도 뭔가...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아트숍 물건도 더 다양했으면 좋겠고요. 둘리를 좋아했던 꼬마는 이젠 성인이 되어 구매력이 있거든요 ㅎㅎㅎㅎ



날 좋은 날 가셔서 충분히 마음껏 누리고 오길 바랍니다.

사전 관람 예약하셔야 하고요, 유료관람입니다. (주중 4000, 주말 5000원)



https://www.doolymuseum.or.kr/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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