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양주시립민복진미술관》경기도 양주시 장흥면 권율로192

공간 이야기

전 평소에 새로 개관한 미술관이나 주변 자연환경이 좋은 장소들을 답사하는 걸 즐겨합니다. 건축 및 조경 공간에 관심이 많거든요. 오늘 소개드릴 장소는 개관한 지 얼마 안 되기도 했지만, 대중교통으로 접근을 시도했다가 '좌절'을 맛본 개인적인 사연이 덧대어진 곳이라 더 기억에 남아요. 진~짜 날씨 좋은 날에 친구와 함께 미술관으로 향하는 대중교통을 오매불망 2시간 기다렸지만, 결국 버스 구경도 못하고 지쳐서 목적지를 다른 곳으로 바꿔 놀다 왔거든요. 네이버에도 안내가 나오고, 버스정류장에도 노선도가 붙은 그 버스가 정말 존재하는 건지 아직까지 의문이지만, 어쨌거나 그로부터 한 달 후 친구가 운전해 주는 차를 타고 편안하게 다녀왔어요. 규모는 작지만, 작품이 좋은 데다가 맞은편에 있는 양주시립장욱진미술관을 함께 볼 수 있어 하루 놀러 가기 좋습니다. 장욱진미술관 소개는 제 이전 블로그 글에 있으니 참고하세요.

양주시립민복진미술관 테라스 및 외관 © 네버레스홀리다

예전 글에서 우리나라 문화예술진흥법에 대해서 언급한 적이 있습니다. 이 법만 이해하면, 우리나라 대형 건물 앞엔 왜 늘 설치작품이 놓여있을까에 대한 의문이 풀리죠. 덕분에, 우리나라 특히 서울에서는 자유롭게 볼 수 있는 공공미술작품들이 참 많습니다. 일반적으로는 '그냥 그런가 보다~'하고 지나가지만 조금만 주의 깊게 보면 눈길을 끌고 발길을 멈추게 하는 좋은 작품들이 정말 많아요.

출처: https://www.law.go.kr

시카고처럼 공공미술로 관광객을 끄는 도시들도 많은데, 서울도 그에 못지않다는 걸 도시 곳곳을 촘촘하게 걷다 보면 알게 되죠. 분명 산책 가듯 미술 작품을 보러 가는 일이 대중적 트렌드가 되는 날이 올 테니, 지금부터라도 주의 깊게 봐 두세요.


어쨌든 그런 이유로 대형 건물 앞에는 조각(설치) 작품이 많은데, 제 체감으로는 문신(10923-1995) 작품이 제일 많은 것 같아요. 물론, 건물 완공 시기에 따라 작품 선정 시기가 점점 당대로 오긴 하지만요. 오늘 소개드릴 조각가 민복진(1927-2016)의 <모자상> (1990, 구 현대증권 빌딩), <가족상> (1991, 광화문빌딩), <4‧18 학생혁명기념탑>(1961, 고려대학교), <김구 선생 동상>(1969, 남산 광장, 김경승과 공동제작 ), <이승훈 선생 동상>(1974), <매헌 윤봉길 의사상>(1975, 충남 충의사), <고당 조만식 선생상>(1976, 어린이 대공원), <명성왕후 숭모비>(1981, 경복궁) 등도 잘 알려진 공공 조각 작품입니다.


양주시립민복진미술관은 공공미술관으로 올해 3월에 개관했어요. 1952년부터 2007년까지 50여 년간 제작된 작품이 주 소장품이죠. 미술관 건립 양해각서가 체결된 2015년 이후 완공까지 근 7년이 걸렸는데, 그 사이 작가는 고인이 되어 자신의 이름을 건 미술관의 완공을 보지 못했죠. 대지면적 1,980㎡, 연면적 895.04㎡, 총 3층 규모로 지하 1층은 수장고와 기계실, 1층은 전시실, 2층은 전시실, 자료실, 테라스, 사무실 등 복잡하지 않은 구조의 건축물입니다.

조각가 민복진 이미지 출처: https://www.yangju.go.kr/minbokjin/index.do#n

경기도 양주 장흥 출생의 조각가 민복진(閔福鎭, 1927-2016)은 한국 1세대 조각가 김복진, 김경승, 윤효중 등에 영향을 받은 2세대 조각가로, 백문기, 윤영자, 전뢰진, 김영중, 최만린, 최종태 등과 함께 한국 현대조각 선구자입니다. 1952년 홍익대학교 미술학부 입학 후 1953년부터 윤효중에게 사사했고, 홍대 재학 시절 제2회 대한민국 미술전람회(1953년 제2회 국전)에 출품한 <무제>가 입선하며 일찌감치 실력도 인정받았죠. 1960년대 후반부터는 한국 조각미술 발전을 위해 결성된 목우회, 한국 구상조각회, 신상회(新象會) 등 단체 활동을 하며 전업 작가로 활동했는데, 당시 예술가들은 교직 생활을 병행하며 작가로 활동하는 게 일반적이었어요. 1979년에는 프랑스 파리에 있는 그랑팔레에서 열린 《르 살롱 le Salon 》에 출품한 <염>이 금상을 수상, 이를 계기로 해외 교류 조각 전시에 다수 참여했는데, 조각에 입문한 지 30여 년이 흐른 1984년이 돼서야 비로소 첫 개인전을 가졌다는 기록이 조금 의외였고요.


그의 작품은 1950년대부터 1960년대 초 철사와 납 등을 사용한 실험 시기를 제외하면 모자상, 가족상 등 어머니, 가족, 인간에 대한 ‘사랑’이라는 하나의 주제로 일관성 있는 조형세계를 보여줍니다. 

전시 소개 브로슈어에 이런 말이 적혀있어요.


"그에게 조각은 무생물인 돌에게 생명을 불어넣는 행위'인데,  이 행위는 어머니와 아들이 맺고 있는 원초적 사랑과 등가의 것으로 그의 삶과 예술의 집약"


작품을 보면 부연 설명 없이도 이 말이 그대로 와닿습니다. 그래서 이번 개관전의 전시 제목이 <사랑의 시대>인가 봐요. 이 전시에서는 유족 기증 작품 421점 가운데 선정된 200여 점을 볼 수 있습니다.

개관전 <사랑의 시대> 출품작 일부 © 네버레스홀리다


"내가 모자상에 관심을 두는 건 간단한 이유에서죠. 

과거를 만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동시에 현실을 새김질하고 미래의 희망을 되새겨 볼 수도 있고요. 

다시 말해 어머니의 무한한 사랑과 아기의 티 없는 웃음이 언제까지나 우리들 속에 있어 

항상 서로를 아끼고 사랑했으면 하는 것이 소망이라는 겁니다."

                                                       민복진 (주간한국, 1984. 7.1, 브로슈어에서 재인용) 


<사랑의 시대>에 출품된 작은 크기의 조각 60점 © 네버레스홀리다


진행 중인 개관전은 크게 두 부분으로 나눠지는데, 1층에선 ‘사랑의 공간’을 주제로 모자상을 중심으로 한 1960년대 작품부터 2000년대 브론즈와 돌조각 등 작품 87점이, 2층에선 ‘사랑의 시간’을 주제로 초기작부터 말년작까지 톺아볼 수 있는 돌, 브론즈, 조각 원형(Prototype) 144점을 선보입니다. 1층 전시장은 작가 자택의 정원을 모티프로 삼아 공간 및 좌대가 디자인되었는데, 정원 중앙 연못을 중심으로 작품을 서로 마주 보도록 배치한 공간 구성을 참조한 거죠. 2층은 전시장이자 개방형 수장고로, 작품 대부분은 5m 높이의 개방형 수장대에 놓여있어요. 높게 놓인 작품을 자세히 보기 어려운 단점이 있긴 하지만, 꽤 괜찮은 배치라고 생각합니다. 또 그의 삶과 예술에 대한 이해를 돕는 인터뷰 영상 <민복진, 사랑의 시대를 조각하다>(2022)와 예술서적을 모아놓은 <룰라 바이 라이브러리>가 운영되고 있어, 전반적인 규모는 작지만 알차게 구성되어 있어요. 아트숍이 없는 게 개인적으로 가장 아쉽긴 하지만요. 미니어처 조각이 있으면 시리즈로 사 와서 책상 앞에 두고 싶은 마음이 간절히 들거든요, 작품을 보고 나면.

2층 전시장 © 네버레스홀리다

그의 작품은 시멘트, 철사와 납 등 다양한 재료를 실험한 1960년대 초반을 제외하고 중반 이후부터 2000년대까지 돌과 브론즈를 매체로 평생 일관된 조형 세계를 보여, 시기나 조형 변화 등 일반적인 분류 기준으로 작품 경향을 살피긴 어렵더라고요. 그래서 저는 같은 주제를 어떻게 미묘하게 다르게 표현했는지에 중점을 두고 구도나 형태, 조형작품이 주는 그때그때의 느낌에 더 집중해서 봤어요.


보도 자료에선, 그가 자신의 조형이 ‘모자간의 사랑’으로 일관하게 된 이유로 어린 시절 홀몸이 된 큰 어머니에게 입양이 되어 서로 의지하며 살았던 유년기를 언급하더라고요. 생모와 양모가 한 동네에 살았던 특별한 환경 속에서 어머니는 두 분이었지만 그 누구로부터도 충분한 사랑을 받지 못했던 유년의 기억이 모자상으로 발현되어 평생의 조형 테마가 된 것이라고요. 그래서 그의 모자상은 사랑의 충만함에서 비롯된 조형이 아닌, 결핍에서 비롯된 사랑의 조형이라는데, 그래서 그런지 더 관계로부터 분리되지 않고 그 곁에서 눈 맞추며 살고 싶었던 마음이 작품 속에 간절하게 표현되어, 좋은데 또 슬프더라고요. 또, 조각을 시작하게 된 계기를 어린 시절 양아버지의 유품에서 발견한 사군자 목판에서 찾던데, 남겨진 목판과 조각도 등을 손으로 직접 만져보았던 어린 시절의 경험이 그가 미술대학의 여러 전공 가운데 손으로 깎고 다듬는 행위를 반복하는 조각을 선택하게 하는 결정적 계기가 되었을 거라고요. 돌과 브론즈처럼 변하지 않는 재료를 사용한 것 역시 변하지 않는 "사랑"을 표현한 걸 테고요. 그의 유년기 기억이 결국은 그의 평생 기억이 되어 조각 작품 속에 영원히 박제된 거죠. 인류애를 지향한 부분도 분명히 있을 거고요.

2층 개방형 수장고 형 전시실 © 네버레스홀리다

그는 조각을

“삶의 근원이라 할 수 있는 사랑이라는 추상적 개념을 

가장 친근하고 인간애의 상징적 모습으로 형상화하여 

조형적 미감 속에서 따스한 가족애의 숭고한 사랑과 ‘기쁨’을 함께 호흡할 수 있는 공간의 창작품” 

이라고 정의했다고 해요. 또 조각을 결심하게 된 당시를 회상하며 ‘6.25 전쟁이 본인의 주변 환경은 물론 전 국토가 폐허화된 상황에서 재건될 미래에는 아름다운 세상이 되었으면 하고 미학 공부를 하게 됐다.’라고도 했고요.


뭐든 그렇지만 알고 보면, 자세히 보면 더 예쁘고 오래 남잖아요. 아직 가보지 못했다면 꼭 가보길 추천드리고, 간 김에 바로 맞은편 양주시립장욱진미술관까지 함께 다녀오세요. 표 값은 성인 기준 오천 원인데, 당일에 한해서 동일 표로 양주시립민복진미술관과 양주시립장욱진미술관 입장이 가능합니다. 두 곳 다 천천히 둘러봐도 시간이 오래 걸리진 않으니, 장욱진미술관 내 조각 공원도 산책하시고요. 대중교통으로 갈 거라면 구파발역이나 가까운 역까지 가셔서 택시로 이동하길 권해드리고요, 차마 버스를 기다려보라고는 권하지 못하겠어요 ㅎ





https://www.yangju.go.kr/minbokjin/index.do

양주시립장욱진미술관 소개 

https://blog.naver.com/neverlesshollida-1/221689868150


작가의 이전글 《어느 수집가의 초대》국립중앙박물관 기획전시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