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 공간 이야기
예술가의 집, 같거나 다르거나 : 《성북구립 최만린 미술관》 그리고 《권진규 아틀리에》
오늘 소개드릴 곳은 두 조각가의 집입니다. 서로 멀지 않은 곳에 위치하고 있지만, 보이는 상황이 달라 함께 보면 여러 생각을 하게 하는 곳이죠. ' 2020년 12월 '예술가의 집, 무엇을 기억하려는 걸까?' 포스팅에서 종로구 소재, 이상·이상범· ·박노수· 고희동· 백남준의 집을 소개했는데, 이번 두 작가의 집은 성북구 소재이고, 두 분 모두 한국 대표 조각가라는 공통점을 지니고 있습니다. 물론 한 분은 추상 조각, 한 분은 구상 조각을 했지만요.
먼저 소개드릴 곳은 성북구립 최만린 미술관입니다. 현재 미술관으로 사용 중인 정릉동 716-16번지 건축은, 1988 ~ 2018년까지 작가의 작업실로 사용한 곳입니다. 1970년 정릉 고급 주택가에 지어진 2층 양옥으로 지금 봐도 꽤 공을 들인 티가 나죠. 작가는 1988년 이 건물을 리모델링한 후 입주했는데, 2004년부터 2018년까지 작가의 주거 및 작업 공간으로 사용되다 2018년 성북구에서 매입했고, 2019년 성북구립 최만린 미술관으로 추진되면서 또 한 번 리모델링이 이뤄집니다. 리모델링 공사 설계를 진행한 EMA 건축사사무소(이은경 소장)는 기존 건물의 외관, 기본 골격, 나무 계단 및 나무 천장 등을 최대한 살려 작가의 흔적을 보존하면서도 미술관으로서의 기능을 최대한 고려했죠. 그래서 그런지 전시장 안으로 한 걸음만 들어서도 예술이 발산하는 짙은 내음을 느낄 수 있습니다.
성북구립 최만린 미술관은 2019년 10월부터 11월까지 두 달간 사전 개관 프로젝트 진행 후, 2020년 성북구립미술관 분관으로 지정되면서 2020년 08월부터 11월까지 개관전을 열었어요. 기증받은 주요 작품 126점과 작가 유족으로부터 2021년 443점을 추가 기증받았고, 이들 중 16점이 현재 오픈 수장고 '2021 신소장품 전, 비움으로 채워지다'라는 제목으로 함께 전시되고 있습니다. 이외에도 최만린 아카이브 자료 2,043점도 소장하고 있고요.
추상조각의 개척자로 평가받고 있는 그는, '인간과 생명에 대한 관심'이란 주제로 평생 동안 작업합니다. 초기작인 <이브>(1958)는 6.25 전쟁의 폐허 속에서 태어났고, 마지막까지 작업했던 <O> 시리즈는 생명의 근원을 찾아가는 여정을 보여주죠. 성북구립 최만린 미술관 홈페이지에 들어가면 한국 대표 추상 조각가인 최만린(1935-2020)의 작업시기에 따른 대표 작품 이미지가 게재되어 있는데, 홈페이지를 둘러보는 것만으로도 어느 정도 작가 소개가 되어 이 글에서는 작가 소개를 생략합니다.
내부 공간 구조는 단순합니다. 대문을 통과해 한 걸음 들어서면 왼쪽으론 작가의 대표작들을 설치한 작은 정원이, 정면으론 미술관이, 오른쪽 벽 뒤엔 조각 한 점이 설치되어 있어요. 미술관 본관을 들어서면 천고가 높은 큰 홀이 나오는데, 2층 구조로, 1층과 2층은 나무계단을 통해 연결됩니다. 전시장과 오픈 수장고, 재현된 작가 작업실 등이 있는 1층 홀에선 무엇보다 아치형의 문들이 시선을 끕니다. 일반 집이란 느낌보다는 성당이나 중세 건축물에 들어선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키거든요, 작은 규모임에도 실제보다 큰 느낌도 주고요. 제가 갔던 때는 건축 X 조각 <감각의 시어> 전시가 진행 중이어서 다른 작가의 작품도 함께 볼 수 있었는데, 어떤 작품을 가져다 두어도 다 잘 포용될 것 같은, 1층 홀은 그만큼 유연한 공간입니다.
2층은 오픈 아카이브로, 자료로 본 주제별 최만린 연대기와 하이라이트로 꼽히는 130여 권의 스크랩북이 있습니다. "자신의 실상을 낱낱이 드러내는 자서전"같다고 말한 작가 수집 및 정리 스크랩북으로, 모든 자료를 다 볼 순 없지만 꽤 재밌는 것들이 많아요. 다른 곳에서 보기 어려운 자료들이 모여있다는 것만으로도 작가를 공부하는 연구자들에게 큰 도움이 되는 건 말할 것도 없고요. 자료실이자 전시실 겸용인데, 아카이브 자료들 사이에 놓인 작품들이 전혀 낯설지 않게 잘 어우러져서, 마치 현재 사용하고 있는 누군가의 사무실 혹은 작업실에 들어와 있는 기분이 듭니다. 특히, 그가 아내에게 보낸 편지, 엽서를 보면 굉장히 '다정다감한 분'이지 않았을까 싶고요. 또 가족 중에 유명인도 있어 옛 사진에서 찾아보는 재미가 쏠쏠합니다.
전체 공간이 넓은 편은 아닙니다. 그러다 보니 쓱 훑으면 정말 빨리 나올 수 있어요. 하지만, 곳곳에 놓인 작품과 자료들을 보다 보면 시간이 꽤 필요합니다. 무엇보다 '예술가의 집이자 작업실'이었다는 의미가 커서 공간의 한계를 느끼지 못하게 하니, 가신다면 여유를 갖고 천천히 돌아보세요. 먼저 공부를 조금 하고 가시면 더 좋고요. 아무래도 의미가 장소를 특별하게 만들어 주긴 하니까요.
두 번째로 소개드릴 곳은 권진규 아틀리에입니다. (작가 소개가 궁금하신 분은 《권진규 탄생 100주년 기념 -노실의 천사》 포스팅을 봐주세요.) 2004년 국가등록문화재 제134호로 지정된 권진규 아틀리에는, 내셔널트러스트 문화유산기금에서 관리를 맡고 있습니다. 내셔널트러스트 문화유산기금은 '시민들의 자발적인 모금·기부·증여를 통해 보존가치가 있는 문화유산을 확보하여 시민신탁자산으로 영구히 보존·관리하는 비영리재단'입니다. 1895년 영국에서, 자연과 문화자산의 보전을 위해 ‘공적 소유와 국민 신탁’이라는 개념을 공유하며 출발했다고 하죠. 우리나라는 2000년에 자연유산 보존을 위해 사단법인 한국 내셔널트러스트가 발족했고, 산하에 문화유산위원회를 두면서 기금 모집을 통해 2002년 12월 미술사학자 최순우의 옛집을 매입했고, 이를 출연자산으로 2004년 4월 재단법인 내셔널트러스트 문화유산기금이 설립되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최순우 옛집이 시민문화유산 1호, 2호가 2006년 매입한 전남 나주 도래마을 옛집, 3호가 바로 권진규 아틀리에입니다. 2006년 조각가 권진규(1922-1973)의 여동생 권경숙 님이 (재)내셔널트러스트 문화유산기금에 기증했고, 1년여의 보수를 거쳐 2008년 새로 개소했어요. 기증으로 문화유산이 된 첫 사례이고요.
서울시 성북구 동소문로 26마길 2-15에 위치하고 있는 아틀리에는, 성신여대 지하철역에서 도보 한 10여 분 정도 평지를 걸어 계단과 언덕을 조금 오르면 있습니다. 일단 작가의 집으로 가는 길을 알려주는 이정표들이 곳곳에 있어 찾기 어렵진 않습니다. 예약을 하면 문자로 상세한 안내가 오기도 하고요. 밝은 보라색의 대문이 참 특색 있는데, 원래는 철제가 아닌 나무 문이었고, 현재 개방하는 큰 대문 옆 작은 끝 문이 조각가 권진규의 전용 출입문이었다고 해요.
아틀리에는 그가 직접 지은 작업실입니다. 1959년 일본에서 귀국 후 1973년 삶을 마감할 때까지 이곳에서 작품 활동을 했죠. <자소상(自塑像)>, <영희>, <스카프를 맨 여인>, <잉태한 비너스> 등이 여기서 탄생한 작품들입니다. 대지 13평 (43㎡)에 올린 2동의 건축물은, 시멘트 블록으로 쌓은 벽에 서까래와 시멘트 기와지붕을 얹은 단순한 구조로, 대문을 등지고 섰을 때 오른쪽의 살림채와 왼쪽의 아틀리에가 붙어있는 구조입니다. 작가는 아틀리에 곁의 작은방에서 생활했고, 살림채는 가족의 거주 공간이었죠. 원래는 대문을 중심으로 마당에 살림채와 아틀리에를 분리하는 벽이 있었는데, 현재 그 흔적을 찾긴 어렵습니다. 대문을 들어서면 정면으로 보이는 벽에 문처럼 생긴 부조 작품이 있고 그 앞 바닥엔 작가가 직접 판 우물이 있는데, 이 우물 왼쪽 두 개의 기둥을 중심으로 공간이 나눠진다고 보면 이해가 쉽습니다. 우물이 있는 이곳은 당시 살림채의 부엌으로, 벽면엔 여동생 권경숙의 정릉 신혼집에 선물했던 부조 작품인 <십장생> 이 마당을 들어서는 순간 처음으로 시선을 끕니다. 원작은 삼성문화재단(리움미술관)에 기증했는데, 2010년 리움에서 작품의 의미를 기려 복제품을 만들어 아틀리에에 기증했어요. 그리고 올해 권진규 탄생 100주년을 맞아 아틀리에를 재정비할 때 리움미술관의 후원으로 다시 한번 복제품 보수를 진행했고요.
가장 높은 곳의 천고가 4.5m인 작가의 아틀리에는, 큰 작품 제작을 고려해서 지어졌어요. 큰 창도 인상적이죠. 아틀리에 한쪽에 우물을 팠고, 가마도 설치했으며 흙을 저장하는 공간도 지하에, 또 그 위로는 작품을 보관할 수 있는 선반을 올린 마루가 있는, 작업 스타일에 맞게 만들어진 맞춤 공간입니다. 이 모습들은 아직 남아있고요. 아틀리에 옆, 작가가 생활했던 작은방도 남아있습니다. 그가 죽기 전 부쉈다는 가마는 아틀리에 창밖에 있었다는데 지금은 그 원형이 남아 있지 않다고 합니다. 공간에 있는 집기들이 오래되어 먼지가 자연스레 앉다 보니, 알고 있는 연도보다도 더 오래된 것 같은 그런 느낌이 드는 공간이에요. 영화 촬영장처럼 뭔가 시간의 멈춤 혹은 역행이 느껴졌고, 고독함, 쓸쓸함 같은 감정도 깃든 것 같았고요.
이곳은 정해진 정기 개방 시간이 있습니다. 6월~10월 매월 마지막 주 토요일 오후 4시와 5시로, 인터넷 사전 신청을 하고 가셔야 해요. 신청자가 5명 미만일 경우 개방하지 않고 사전 예약이 마감되었을 경우엔 네이버 예약창이 열리지 않습니다. 관람요금은 두 종류인데 1000원은 입장권만, 3000원은 작업실 기념엽서 한 장이 포함됩니다. 저도 그랬지만 대부분은 기부금이다 생각하고 3000원을 선 결제합니다. 물론, 어떤 비용을 지불하셔도 도슨트 설명은 똑같이 들을 수 있어요.
대기 장소가 없다 보니 예약 시간 맞춰서 가는 게 좋고, 화장실은 이용하기 어려우니 이점도 참고하세요. 도착하면 자원봉사자 도슨트의 간단한 설명이 있고, 그 이후부턴 자유롭게 관람하다 나오면 됩니다. 공간이 협소하고, 현재 살림채는 작가 레지던시로 운영 중이어서 내부를 보긴 어렵습니다. 벽면 부조 작품과 관련 영상까지 꼼꼼하게 보고 나와도 30여 분 정도면 넉넉하게 볼 수 있으니 참고하시고요.
사진으로만 봐도 정말 다른 공간이지만, 예술가의 흔적을 느끼고 삶을 들여다볼 수 있는 좋은 장소이니 꼭 한번 가보길 권해드립니다. 별다른 설명이 없어도 느껴지는 게 많을 거예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