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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 Memory》가나아트센터(~’ 22. 8.21)

전시 이야기

《시오타 치하루 Shiota Chiharu – In Memory 》 가나아트센터(2022. 07. 15.~ 08. 21.)


늘 고마운 햇볕이지만 조금씩 거리 두기 하게 되는, 찐 여름입니다.

요 몇 달 연말에 나올 책 때문에 자주 밖을 다니고 있다 보니 얼굴이 좀 많이 탔어요. 쌓인 일이 많아 휴가를 갈 수 없는 처지이지만 찾아볼 만한 전시가 충분해 그래도 위로가 됩니다. 평소에도 기분 전환이 필요하거나 정서적 양분 보충을 위해 전시 보러 자주 가긴 하지만, 섭외랑 취재 다니면서 뙤약볕에 고생하다가 귀갓길에 들러보는 전시는 그 규모에 상관없이 찐 위안이 되거든요.

오늘 소개드릴 시오타 치하루 塩田千春 ( Shiota Chiharu, 1972-)의 《 In Memory 》도 올 초부터 손꼽아 기다렸던 전시라, 이 감흥을 공유하고 싶어 적어봅니다.

시오타 치하루,  (2022), Dresss, wood boat, paper, thread, Overall dimensions variable © 네버레스홀리다


"나는 기억과 죽음, 그리고 인간의 존재에 대해 생각한다.

큰 배 위에 얹힌 옷의 외피와 같이, 우리는 기억의 바다에서 영원히 방황하고 있다."


현재 평창동 가나아트센터에서 진행 중인 시오타 치하루의 전시는 예술 애호가라면 누구나 보고 싶어 하는 전시입니다. 이름을 처음 들어봤을 수는 있어도, 한 번이라도 시오타 치하루의 작품을 봤다면 이후부터는 '꼭 알아야 하는 작가'로 기억하게 되죠. 일반 갤러리보다는 미술관이나 비엔날레 전시에서 자주 만날 수 있던 작가라 생소한 분들도 많을 거예요. 하지만 제 글을 읽은 이후부턴 꼭 기억해두세요.


시오타 치하루는 오사카 출신으로 현재 베를린에서 활동하고 있는 세계적 설치미술가입니다. 2015년 베니스 비엔날레 일본관 대표 작가로 작품을 선보여 주목받았고, 국제적으로 참여한 비엔날레와 미술관 전시가 몇 백건에 달합니다. 특히  2019년 6월부터 10월까지 일본 도쿄 모리 미술관에서 연 대규모 개인전은 66만 명에 달하는 관람객이 찾았을 정도로 화제였죠. 이 전시는 부산시립미술관에서 《영혼의 떨림》(모리미술관 공동기획)이란 제목으로 2019년 12월부터 2020년 4월까지 진행되었지만, 코로나19로 인해 많은 관람객을 만나지 못하고 전시가 막을 내립니다.


기억을 주제로 하는 이번 《 In Memory 》전은 입장료 3000원의 유료 전시인데, 대형 설치 작품 1개를 포함해 조각 16점, 평면 38점 총 55점이 출품되었고, 무엇보다 시오타 치하루의 전시이니 입장료가 아주 저렴한 거죠. 가나아트센터는 1층과 2층 전시장으로 구성되는데, 섹션 구분은 없으니 1층부터 전시장 동선 따라 편하게 보면 됩니다.

시오타 치하루  《 In Memory 》 1층 전시 전경 및 전시 작품들 © 네버레스 홀리다

앞서 편하게 보면 된다고 적긴 했지만, 작가에 대한 사전 이해는 조금 필요합니다. 왜냐하면 그가 겪은 트라우마가 작품 전반에 녹아들어 있거든요. 그는 어린 시절 할머니 무덤을 보고 느낀 죽음에 대한 두려움과 어릴 때 목격한 이웃집 화재에 대한 기억, 두 번의 암 투병으로 삶과 죽음의 경계에서 체험한 슬픔의 정서, 유산, 이주민 여성 아티스트로 겪는 정체성에 대한 고민들을 작품에 담았는데, 자신의 트라우마를 계기로 죽음에 대한 고찰이 작품 전반에 녹아들었고, 다중성의 의미를 띠는 붉은색 실로 상징화됩니다.


시오타 치하루에게 '실'이란 소재는 그림을 그릴 때 사용하는 '붓'과 같은 역할입니다. 12살 때부터 화가가 되고 싶어 미대에 진학해 그림을 그렸지만, 항상 무언가 부족한 느낌을 받았고, 한정된 캔버스를 넘어 공간에 그림을 그리고 싶었던 그가 찾은 매체가 바로 '실'입니다. 실과 오브제를 이용한 설치 작품 외에도 조각, 사진, 드로잉, 영상 등 다양한 장르의 작업을 하고 있어 이러한 행보를 이유로 그를 제2의 쿠사마라 지칭하기도 하죠. 그뿐만 아니라 스승인 마리나 아브라모비치 Marina Abramovich (1946-)와 레베카 호른 Rebecca Horn(1944-)의 영향을 받아 신체를 활용한 퍼포먼스도 합니다.


하지만 그중에서도 붉은 색실을 사용한 설치작업이 가장 많이 알려져 있는데, 거미줄이나 그물처럼 복잡하게 교차시켜 사물과 공간을 속박시킨 형태의 그의 대형 설치 작품에는, 옷(드레스), 창문(창틀), 침대, 배, 트렁크, 의자, 시진, 총 등 다양한 소재가 등장해 인간 내면의 성찰, 불확실성, 삶과 죽음, 경계, 존재의 이유, 인연, 우주, 기억 등과 같은 철학적 질문을 관람객에게 던집니다.


"실은 엉키고, 얽히고, 끊어지고, 풀린다.

이 실들은 인간관계를 형상화한 것으로, 끊임없이 나의 내면의 일부를 반영하기도 한다."


그의 작품에 등장하는 옷은 실과 함께 자주 쓰이는 작품 재료로 자신과 외부를 경계 짓는 제2의 피부를 상징합니다. 1층에서 만나는 옷 판화 작품 제목도 <second skin>이고요. 창문(창틀) 역시 지리적 경계를 상징하는 도구로 해석됩니다.

시오타 치하루  《 In Memory 》 2층 전시 전경 및 전시 작품들 © 네버레스 홀리다

붉은 동양문화권에서 인연을 의미합니다. 시오타의 작품에서도 인연, 타인과의 관계(소우주) 상징하고요. 평면 작품 속엔 세포나 물결처럼 표현된 드로잉과 함께 붉은색 실로 연결된 사람이 등장하죠. 제목은 <connected to the universe>(2022)지만요. 이번 전시작에는 없지만 검은색 실로 연결된 작품도 있습니다. 2000년대부터 특정 공간에 검은 실과 창틀 등을 활용한 대형 설치작업을 선보였고요. 그는 작업 당시 느끼는 감정을 색깔로 표현하는데, 인터뷰를 통해 "색깔이 가지는 의미는 그때그때 다른  같다. 빨간색을 사용하는 의미는 다들 아시다시피 암을   경험하면서 생과 사를 겪으며 생명과 죽음을 연상할  빨간색을 생각했기 때문에 사용했다"라고 말하기도 했죠.


2층 전시장엔 유리와 네트 형태의 구조물이 엉켜 있는 2022년 <cell>이란 조각 연작이 있습니다. 신체를 구성하는 세포를 형상화한 이 작품은 심장처럼 보이기도 하죠. 대부분의 작품들이 혈관, 세포, 피부 등을 연상시키다 보니, 그의 작품 세계를 조금이라도 이해하지 못하고 이 전시를 찾으면 특별한 감흥을 느끼지 못할 수도 있습니다. 또 메탈 프레임 박스 안에 붉은색, 검은색, 흰색 실로 엮어 놓은 <State of Being>(2022) 시리즈는, 누군가의 기억을 엮어둔 작품입니다. 그는 이 구성을 베를린 유학 당시 이용했던 현관 열쇠에서 영감을 얻었다는데, 한 사람에게서 다른 사람에게 전해지며 쓰였을 이 열쇠를 통해 서로 다른 시기에 한 공간에 머물렀다 떠난 숱한 사람들이 있었다는 것에 주목한 거죠. 그래서 벼룩시장에서 구한 오래된 책, 카드, 의자 등 오브제들을 통해, 존재가치가 사라진 것들에 다시 본연의 기억과 가치를 이어주고 찾아주는 작업을 합니다. 특히 작품에 사용된 엽서 오브제는 러브 레터라고 해요.


“베를린 벼룩시장엔 독특한 문화가 있다.

사람이 죽으면 그 사람이 사용하던 물건을 없애지 않고, 청소업체가 가져가서 벼룩시장에 내다 판다.

종종 벼룩시장에 가서 이런 물건들을 살펴보고 모은다.  특히 가족사진을 좋아한다.

사진 속 인물들을 실제로 만난 적도 없고, 지금 이 세상엔 존재하지도 않지만

사진에 그들의 기억이 오롯이 존재하는 게 느껴진다.”


2층 3관을 채운 시오타 치하루의 < In Memory> (2022) © 네버레스홀리다

이번 전시에서 가장 주목받은 작품은 전시 동일 타이틀 작품 <In Memory>입니다. 2층 3 전시장에 설치된 이 작품은 100평(330㎡) 가까운 전시 공간을 하얀색 실과 옷, 흰 종이, 흰 배 오브제로 채웠죠. 마치 그물처럼 전시장 천장과 바닥에 여러 겹으로 겹쳐진 흰 실은 가운데 놓인 7m에 달하는 흰 목조 배를 중심으로 바닥과 4개 벽면을 연결합니다. 와이어로 매달아 살짝 띄운 배에는 흰색의 드레스 3벌이 일렬로 서 있고, 그물과 그물 사이에는 A4 용지 수백 장이 끼워져 있습니다. 보통 실을 엮는 대형 설치작업을 할 땐 대강의 스케치만 하고 전시장의 구조·형편에 따라 수정해 바로 현장에서 제작에 들어가는 데, 그런 이유로 완성작은 첫 스케치와 달라지는 경우가 많다고 해요. 이 작품 역시 애초에 배를 바닥에 놓기로 했다가 천장에 매달아 띄웠고, 핀으로 실을 고정하는 위치들을 그때그때 느낌에 따라 결정하는 방식으로 제작되었죠. 그렇게 그물처럼 연결된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와 떠다니는 '기억'을 표현한 이 작품은, 설치에만 독일 어시스턴트 포함 스태프 14∼15명을 동원, 하루 8시간씩 2주 14일을 꼬박 매달린 끝에 탄생했다고 합니다. (기사마다 참여인원과 시간은 조금씩 차이가 있습니다.) 이번 전시를 위해 완성한 신작이죠. 실도 특별하진 않습니다. 작품에 따라 굵기와 소재만 달라질 뿐 시중에서 누구나 살 수 있는 실로, 이 작품에 쓰인 굵은 털실 타래 수천 개 역시 국내 어느 도매상을 통해 들여왔죠. 그는 배를 미래를 향해 나아가는 상징이자 기억의 바다를 떠다니며 기억을 담는 매개체로, '누군가의 삶이 끝나(죽음 이후)도 기억은 영원히 그 자리에 남는다.'라는 의미를 작품에 담았습니다. 하얀 드레스는 작가 자신(인간)을, 종이는 기억을 담은 매개체로 사용했죠.


이 작품이 이슈가 된 또 다른 이유는 바로, 소설가 한강(1970-)의 『흰』(The elegy of whiteness / white book)(2017)을 읽고 감명받아 흰 색실을 통해 삶과 죽음의 관계, 기억을 풀어냈기 때문입니다.

그에게 영감을 준 한강의 『흰』(2017)은 흰색의 사물과 연계해서 삶과 죽음에 대해 이야기하는 내용입니다. 소설로 분류되어 있지만 작가의 자전적인 에세이이자 산문시 같은 느낌이 짙어요. 소설 속 '나'에게는 죽은 어머니가 스물세 살에 낳았다가 태어난 지 두 시간 만에 죽었다는 '언니'에 대한 기억이 있습니다. 여덟 달 만의 조산이라 몸이 아주 작았지만 눈코입이 또렷한, 달떡처럼 얼굴이 흰 여자아이였다고 하죠. 당시 어머니는 시골 초등학교 교사로 부임한 아버지를 따라 외딴 사택에 살았는데, 산달이 되기도 전에 아무 준비 없는 상태에서 양수가 터졌고, 어머니 혼자 이 모든 상황을 감당하게 됩니다. 산통을 참아가며 간신히 배내옷을 만들고 아이 낳을 준비를 마친 후 고통 속에 아이를 낳았는데, 그때 어머니가 반복적으로 중얼거렸던 말이 "죽지 마라 제발"입니다. (이 말은 책 속에 반복적으로 등장하고, 버전에 따라 다르긴 하지만 책 표지에 적혀있기도 합니다. ) 하지만 아이는 잠깐 어머니와 눈을 맞춘 후 2시간 후쯤 숨을 거둡니다. 어머니는 갓 태어난 아이의 신체가 점점 싸늘해지는 걸 견뎌야 했죠. 첫아이에 이어 두 번째 사내아이도 조산했는데, 『흰』에서는 "그 생명들이 무사히 고비를 넘어 삶 속으로 들어왔다면, 그 후 삼 년이 흘러 내가, 다시 사 년이 흘러 남동생이 태어나는 일은 생기지 않았을 것이다. 어머니가 임종 직전까지 그 부스러진 기억들을 꺼내 어루만지는 일도 없었을 것이다....... 그러니 만일 당신이 아직 살아있다면, 지금 나는 이 삶을 살고 있지 않아야 한다."라는 글로 누군가의 죽음이 누군가에게는 삶이 된 모순된 상황을 보여줍니다.


여러 인터뷰를 통해 밝혔듯 시오타 치하루는 이 책 속에 나온 어머니와 아이에 대한 이야기를 보며 자신이 두 번 암에 걸렸던 당시 임신 6개월이었음을 회상합니다. 책 속 어머니처럼 양수가 터졌고, 병원에 갔지만 아이가 곧 죽을 거라는 이야기를 듣고 너무 충격을 받았다고 하죠. 한강의 『흰』을 읽었을 때 자신과 비슷한 처지라고 생각을 했고, 책 표지에 적힌 '죽지 마, 죽지 마라. 부탁할게'라는 글귀에 감동을 받았다고 해요. 그래서 작품을 흰색 실로 만들게 되었고, 타이틀도 <In Memort>라고 짓게 됩니다. 그렇게 흰색은 생과 사를 다 표현하는 색으로 그의 작품 속에 녹아들었고, 자신의 신체에 남아있던 감각과 이어져 한강의 글에 국적을 넘어 공감할 수 있었다고, 한강 작가가 이 작품을 꼭 봐줬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전하기도 했어요.


"내겐 산다는 것 자체가 예술이고, 예술이 곧 삶이다.  

가장 무서운 건 죽으면 예술을 할 수 없다는 것이다.  

예술을 하지 않는 것이 내겐 죽음이다.”


작품을 보며 떠오르는 개개인의 기억은 다를 테니, 전시장에서 어떤 기억을 찾을 수 있을지 경험해 보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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