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시 이야기
《 Thanking you-Ohnim 개인전 》 StART+(~2023. 02.05) 그리고 오색칠
구정 연휴는 잘 보내고 계시나요?
저는 연휴 전까지 몇 주 동안 '하기 싫어 병' 중증에 시달리다가, 이제 조금씩 '뭔가를 해봐야겠다' 상태로 돌아왔어요. 아직 회복기인데, 그동안 쌓아뒀던 것들을 미룰 수 있는 상태까지 최대한 미뤄둬서, 이 연휴가 끝나면 다시 분주한 삶이 시작됩니다. 그래도 중간중간 의미 있는 일들을 하긴 했어요, 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긴 했죠. 해외에서 설을 보내러 미국, 중국, 대만 친구가 들어와 있고, 회사에서 특별 휴가를 받은 친구와 영화 <슬램덩크>를 보고(이 영화의 높은 평점은 사실입니다! 제가 보증해요!!! 저는 만화책도 안 봤는데 전권을 꼭 봐야겠다는 새해 결심을 했어요!) 밥 먹고 선물 교환(지방 출장 갔다 오면서 선물을 사 왔길래 저도 답례를) 하고 마음속에 담아뒀던 자질구레한 이야기를 나누며 공감대를 확장하기도 했으니까요.
작년 말, 감기가 조금 오래가서 연말과 연초를 거의 누워서 보내고 나니 이번 구정 시작 전엔, 혼자만의 시간이 갖고 싶더라고요. 그래서 어딜 갈까~ 생각하다가, 오늘 소개드릴 개인전에 다녀왔습니다. 작품 수가 적어 갈까 말까 했는데, 가보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고, 전시를 본 후에 작가 오님의 다른 공간이 궁금해져 그의 본캐인 송민호가 운영하는 카페 오색칠에도 다녀왔습니다. 전시가 연장되어 앞으로 10여 일이 남아있으니, 여러분들도 한번 가보세요.
오님은 화가로서의 송민호를 지칭합니다. 왜 오님일까 싶은데, 영문 스펠링을 거꾸로 읽으면 'minho'입니다. 연예계에는 다양한 활동을 병행하고 있는 아티스트들이 많은데, 확실히 예술적인 끼는 분야를 막론하고 잘 드러나나 봐요. 하나도 잘하기 힘든데, 뭐든 잘하는 사람들을 우린 '사기캐'라고 하잖아요. 오님이 제 눈엔 그런 케이스입니다.
작가 오님은 2019년 신진 작가 단체전((SEEA)으로 데뷔 후, StART ART FAIR LONDON (SAATCHI Gallery), KOREAN EYE 2020 특별전 : Creativity and Daydream, 오스트리아 황실 130주년 기념 전시(2021), ART FAIR LONDON (SAATCHI Gallery), ART FAIR SEOUL (GALLERIA FORET)(2022)을 거쳐왔지만, 본캐 '송민호가 아니었다면'이란 생각을 한 번쯤은 하게 될 정도로 전시 장소들이 정말 화려하죠. 하지만, 꼭 그것만은 아니기에 앞으로의 성장을 더 기대합니다. 군 생활 후엔 화풍이 좀 더 확 바뀌지 않을까 싶은데, 그건 그때 가보면 알겠죠.
전시장은 지하철역을 나오면 바로 있습니다. 처음 가본 곳인데, 길을 잃으려야 잃을 수가 없더라고요. 유료 전시(1인 15,000원/ 엽서 4장/ 음료 캔 포함)가 연장되었다는 건 그만큼 많이 보러 온다는 말인데, 제가 찾은 날도 관람객이 꾸준히 들어오더라고요. 작품 수는 많지 않습니다. 2,3층 전관(1층 아트숍)을 사용하고 있지만, 드로잉 포함 30여 점 정도 되거든요. 그래도 3년간 그의 화풍의 변화, 생각의 변화, 주제의 변화는 확실히 보여줍니다.
오님은 이번 전시에서 ▲ 감정에 의한 성장 ▲ 경험에 의한 자각 ▲ 결말에 이르는 화합과 희망 세 가지 주제로 작품을 풀어냈다고 해요. 인터뷰를 통해 "작품 안에 나를 투영해 나의 다양한 감정을 표현했다"라며 "먼발치의 꿈이라 생각했던 작가로의 삶을 시작했을 때부터 현재까지의 작품의 세계관을 다 드러내는 첫 개인 전시이자, 다음 챕터로 넘어가는 새로운 시작을 알리는 전시"라고 개인전의 의미를 설명했죠. 전시장에 들어서면 그가 속한 위너의 노래가 나오는데, 평소 전시장에 음악이 나오는 걸 그다지 좋아하지 않았는데, 여긴 어울리더라고요. 작품은 2022년도 최근작부터 2019년도 순으로 전시했는데, 작품마다 작가의 생각이 담긴 설명이 있어 보기가 수월합니다.
예를 들어 <내가그린기린그림 Giraffe in my eyes>(2022) 시리즈의 경우, "기린 시리즈 작업은 내가 그린 기린 그림이라는 발음의 유사성을 이용한 문장에 꽂혀서 시작했다. 기린 몸통에 적힌 문장 또한 '내가그린기린그림'같은 언어유희 문장이다. 그림 속 기린은 곧 나를 대변한다. 기린은 기다란 목으로 누구보다 높이 내다본다. 야망 덩어리로 자란 나는 누구보다 높은 곳을 보고 오르기 위해 치열하게 살았다. 내 욕망의 높이를 감히 가늠할 수 없어 목 위를 그리지 않았다. 기린을 볼수록 고유한 패턴에 매료되었다. 많은 사랑을 받고 사는 직업이라 패턴에 하트 심벌을 섞었고, 동심의 감정이 묻어 나오기도 해서 진한 색상을 썼다."
설명이 명확하죠? 작가 노트라 이 글을 읽고 작품을 보니 이해가 훨씬 쉽더라고요.
그림들이 아크릴과 바니시 마감의 쨍한 칼라라 마냥 예쁘기만 할 것 같은데, 자신이 투영되다 보니 그렇지도 않더라고요. 다른 기린 그림들도 좋았지만, 저는 메인 이미지로 사용된 기린과 공을 밟고 있는 기린 그림이 많이 와닿았어요. 우선, 메인 이미지로 사용된 기린은, 이곳에서 실크스크린 판화로도 한정 판매하는데, 에디션이 몇 개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이미 여러분들이 예약을 걸어두셨더라고요. 그 외 두 점의 판화도 한정 판매인데, 그 역시도 상황이 비슷비슷. 제게 순서가 올 일이 없다는 걸 눈으로 확인하고 나니 마음이 편해지더라고요 ㅎ
한 발로 공을 밟고 있는 작품은 <내가그린기린그림(애착)>이고, 그 옆 작품은 <내가그린기린그림(서커스)>입니다. <애착>은, "과한 사랑은 애착이라고 한다. 내가 잃고 싶지 않은 것들에 대한 집착. 기린이 한 발로 공을 밟고 있다. 절대 놓치지 않겠다는 나의 애착을 의미한다. 언제나 핑크빛 사랑을 원하는 삶이다"라는 설명을, <서커스>는 " 내 직업은 가수, 연예인. 과거엔 비하하는 표현으로 딴따라라고도 불렸다. 공 위에서 묘기를 부리며 쇼하는 기린처럼 보이지만, 실은 위태로운 매 순간 쓰러지지 않기 위한 발악이다. 기린의 곱게 땋은 꼬리는 남에 의해 치장되는 이 직업을 상징한다 "라는 설명을 곁들였어요. <애착>위에 함께 배치된 작품은 <해바라기린>으로 "나에게 해바라기는 희망을 상징하는 꽃이다. 높이 올라 보이는 것들이 희망적이길 바란다"라는 작가 글이 적혀있고요. 옆은 <국화꽃다발기린>입니다. <애착> 작품 캔버스 옆에는 글이 적혀있는데, 작품마다 앞에 가이드라인을 해놔서 측면을 볼 생각을 거의 못했어요. 작품에 겹쳐지는 가이드라인도 있었는데, 그만큼 작품을 만지고 가까이 가는 관람객이 많았다는 거겠지만, 작품 볼 때 좀 거슬리긴 하더라고요. 그냥 바닥에 선을 그어놓아도 지킬 사람은 지킬 텐데 말이죠.
2층에서 3층으로 가는 통로엔 작품 스케치를 배치했어요. 메모가 적힌 드로잉도 있어서 작품 보는데 참고가 되기도 하고요. 올라가면서 볼 때랑 3층 작품을 보고 내려오면서 다시 볼 때 또 느낌이 다르니, 꼼꼼하게 보고 올라가세요.
3층에는 2019년도부터 2021년도 작품을 선보입니다. 개인적으로는 <Hiding>(2020) 시리즈가 좋았는데, 이 시리즈는 큰 손으로 얼굴을 감싸 쥐는 도상적 특징이 있죠. 대부분 얼굴을 가려 표정이 잘 보이진 않지만, 확대된 동공을 통해 긴장감과 두려움이 표현되고, 매끄럽고 윤기 있는 손이 아닌 거칠고 생기 없게 느껴지는 손에서 전해지는 고통스러움도 있습니다. 무엇보다, 몸을 숨기지 못해 얼굴을 감춘 듯한 도상에서, 저는 '어쩔 수 없이 눈앞의 현실을 잠시 모면해 보고자 하는' 어떤 상황 같은 것도 연상이 되었고요. 작품 해설을 따로 찾아보진 않았지만, 벽면의 글로 대략적인 작가의 심정을 유추할 수 있습니다.
" 우리가 사는 사회는 본능과 감정을 억누르고 숨기는 것이 자연스럽다. 그래야만 생존할 수 있다. 그러다 보니 부정적인 감정을 기피하고 들여다보지 않으려고 했다. 표정을 잃은 책 살아가며 억누르고 있던 감정들을 시각화하고자 했다. 더 이상 감정을 숨기지 않았으면 한다.
화려한 무대, 스포트라이트 속에 살아왔다. 박수갈채 속 귀가 터질듯한 환호성과 함께 무대를 마치기도 했다. 수많은 사랑과 축하로 젖은 몸을 이끌고 무거운 현관문을 열고 들어가 몸을 누이면 가늠할 수 없는 거대한 공허가 온 공간을 지배한다.
하늘을 나는 꿈을 자주 꾼다. 꿈속의 나는 언제나 자유롭다. 구름 속을 가르며 내 멋대로 날아다닌다. 그런 꿈에서 깬 아침은 왠지 불안하다. "
작품을 채우는 우울감, 불안감, 두려움, 허무 등을 느끼게 하는 대목이죠.
가장 인상적인 작품은 <꽃길>입니다. 전시장 한쪽에 단독으로 만들어진 공간엔 향이 놓여있어요. 이 방에 있는 작품이 <꽃길>인데, 작년에 돌아가신 아버지에게 보내는 작가 오님의 그림 편지입니다. 지우고 다시 쓰기를 반복한 글을 읽다 보면, 정말 뭉클해져요. 와닿는 대목도 정말 많았고요. 모두가 공감할 수 있는 작품이고, 관람객의 마음도 충분히 투영이 되는 작품입니다. 대상도 다르고, 부분적이긴 하지만 저도 비슷한 경험을 한 적이 있거든요. 작품을 보다가 문득 저도 향을 피우고 싶단 생각이 들었는데, 혹시 다른 의도가 있을지도 몰라 건들지는 않았어요. 나와서 스태프에게 물어보니, 전시 기간 내내 피우고 있다고 하더라고요. 공간을 벗어나면서 마음속으로 '아버지는 분명 좋은 곳으로 가셨을 거예요'라는 인사만 놓고 나왔습니다.
전시는 빨리 보면 30여 분이면 다 봅니다. 그보다 적게 걸릴 수도 있고요, 텍스트를 읽지 않는다면. 전시를 다 본 후엔 아트숍으로 내려가서 어떤 굿즈가 있는지를 확인 후, 티켓에 포함되어 있는 음료(커피 혹은 아이스티)를 픽업해서 성수동 카페 오색칠로 이동했어요. 뭔가 좀 아쉬워서요.
전시장에서 도보로 한 20분 정도 걸어 도착한 오색칠은, 성수동의 유명 카페인 대림창고 맞은편에 있습니다. 조그마한 마당이 있고 그 안쪽으로 카페가 있어 아마 못 보고 지나친 분들도 많을 듯해요. 원래 계획은 안에서 샌드위치 같은 걸 먹고 다음 장소로 이동하자... 였는데, 여긴 음료랑 쿠키만 있어서 음료만 마시고 근처 스벅에 가서 못 먹은 샌드위치를 먹었죠(뭔가 순서가 좀 뒤바뀌긴 했지만 ㅎ) 커피를 못 마시다 보니 차 종류에서 늘 고민을 하는데, 밀크티 맛있었어요!
공간도 다양하고 넓습니다. 층마다 분위기도 다른데, 주문 및 굿즈 구매가 가능한 메인 빌딩은 작품들이 곳곳에 걸려 1,2층 모두 갤러리 같단 생각이 들었고, 지하층은 모던한 인테리어가 현대적이에요. 시선이 닿는 모든 공간과 소품에 신경을 많이 쓴 티가 납니다. 앞으로 성수동에 가면 여기를 몇 번 더 들러보려고요. 이번엔 1층에 앉아봤으니 다음엔 야외, 그다음엔 2층, 그다음엔 지하층. 빛반사되는 소재가 여럿 쓰였고, 벽화로 멋을 낸 야외 공간들이 있어 골라 앉는 재미가 있겠더라고요.ㅎ
아! 당일 전시 티켓을 지참하고 오색칠에 들리면, 색연필을 받을 수 있습니다. 안내 표시가 따로 없으니, 카페 스태프에게 꼭 문의해 보세요. 색연필이 저는 아주 마음에 들었거든요.
그럼, 남은 연휴 즐겁게 보내세요 모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