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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반장 Nov 06. 2021

청년 고민상담소 행사 시나리오

<언택트 시대의 진~짜 컨택트> 기획 준비

※ 모든 고민에는 말하기를 거절한 제스쳐를 취한 사람 외에 모든 참여자가 대답합니다. 따라서 저의 말에는 어떠한 권위도 없습니다.


1. 자기 소개

매일 안구건조증을 호소하며 모든 행사에 참견하는 만성피로 하이퍼리얼리즘 수간호사 캐릭터, 김반장입니다.


2. 다른 사람들의 2021년은 어땠는지 궁금해요!

저의 2021년은 '만남'이라고 표현할 수 있습니다. 다른 팀으로 옮겨 새로운 동료들과 함께하게 되었고, 조직 내의 변화로 소속이 변경되며 알지 못했던 세계를 경험하게 되었습니다. 업무 중에 매일 자신만의 사정을 가진 사람들을 만나고 또 이별하며 배운 것도 많습니다.

 2021년을 가장 다채로운 만남으로 장식한 것은 두두디북스 조합원 활동이었습니다. 조합원 분들과 3개의 기획을 진행하며 서로 화합해 보람찬 결과물을 내는 경험이 저를 보다 성장하게 만들었다고 자부합니다. 또한 저희가 기획한 행사에 참여해 주신 분들과 강사님을 만나 다른 분야의 관심사를 탐험했던 시간은 저의 일상을 더 풍성하게 만들었습니다. 때론 비슷한 사람들과, 때론 내가 경험해 보지 못한 분야의 사람들과 만나 함께하며 알게된 점이 있다면 인간은 아무리 괴로워도 타인과의 연결을 놓지 않아야 된다는 것입니다. 장폴 사르트르는 타인을 지옥이라 칭했지만, 어느 공간에서 어떤 마음으로 어떻게 만나느냐에 따라 타인은 분명 선물 같은 존재인 것 같습니다.

  


3. 행복한 하루를 보내는 자신만의 방법들이 궁금해요

(화병난 자) 비 보고 맛있는 거 먹기

(기억을 잃은 자) 엎드려서 책보거나 뷰 좋은 카페 가서 멍때리기

(김반장) 햇살 좋은 오후에 강아지가 뛰노는 정원에서 커피를 마시며 마음을 울리는 글을 읽을 때가 가장 행복한 순간인 거 같아요. 제가 가장 이상적이라고 생각하는 하루는 느지막이 일어나 강변을 산책하고 사랑하는 사람과 늦은 점심을 먹고 오후 4시간 동안 책 읽고 공부하고 저녁 4시간 세상을 이롭게 하는 일을 하는 것인데요, 직장생활 하면서는 그런 하루를 살 수가 없죠. 그래서 체크리스트를 만들어서요, 하루 단위로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밥을 먹었는지 강아지와 산책을 했는지 행복을 측정하고, 일 주일 단위로 나를 변화시키는 책을 읽었는지 세상을 이롭게 하는 일을 했는지 측정하는 편입니다.



4. 코로나 이후로 변화 없이 고정된 일상을 지내는 것 같아요. 뭔가 새로운 걸 하려고 하면 두렵구요. 어떻게 하면 좋을까요?

어느 책에서 좋은 운을 부르는 방법은 편안한 마음을 유지하는 것이라 읽었는데요, 본인의 마음이 편안하다면 변화 없이 고정된 일상을 사는 것도, 새로운 것을 시도해 보는 것도 다 좋다고 생각합니다.

다만 고정된 일상을 살며 언제나 같은 하루일 거라 여기는 '기대 없는 마음'이 매일 하는 일과 매일 만나는 사람을 평면적으로 바라보게 한다면 문제가 있어 보입니다. 평면적인 생각이란 경험적 일부 사실로 현상을 지레짐작하는 상태인데요, 예컨대 이런 것이겠죠. '당연히...해야 해.' '얘는 맨날/항상/또 이래, 이게 문제야.' 상황이나 사람을 평면적으로 정의하는 순간 나의 하루는 지루하거나 혐오스러운 것이 되기 십상이죠.

결국 비슷한 하루라 하더라도  매번 달리 바라보는 정성이 필요하고 그러기 위해서는 새로운 경험이 필요합니다. 여기서 새로운 경험이란, 단지 한 두번의 체험으로 끝나는 '새로움'이 아니라 세상을 새로운 눈으로 볼 수 있게 하는 경험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예를 들면, 다른 분야의 타인을 만나 대화하거나 평소와는 다른 장르의 책을 읽어보거나, 다른 세계를 경험할 수 있는 대외활동을 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경험을 하면 자연스레 연속성 있는 다른 경험으로 나아가게 되고 나의 삶이 확장되어 세계와 건강한 영향력을 주고받는 자신을 발견하게 되실 거예요.

새로운 시도가 두렵다구요? 두려워도 괜찮습니다. 진정한 인생의 변화는 그 두려운 마음을 가지고도 한 걸음만 더 나아가 보는 용기에서 나오는 것입니다. 마음도 근육이 있어서 연습이 필요하죠. 한 걸음만 나아가 보세요. 그 다음 걸음은 훨씬 가벼워질테니까요.

 
5. 두두디북스를 더 재밌는 공간으로 만들고 싶습니다.

지금도 충분히 사랑받는 공간이라고 생각하는 데요, 욕심이 과하시네요 ㅋ ㅋ ㅋ ㅋ ㅋ ㅋ

두두디북스는 지나치게 친밀하지도 누구 하나 소외되지도 않는 분위기가 가장 큰 장점이라고 생각합니다. 가깝지만 침해하지 않는 거리감을 유지할 수 있는 것은 책을 중심으로 다양한 의견을 나눌 수 있는 문화행사를 지속적으로 운영하는 조합원들의 '애정' 덕분이겠죠. 말 그대로 '애정'이더라구요. 처음에는 조합원들이 경제적 이익 없이도 시간을 내어 정성을 쏟는 시스템이 의아했는데, 조합원 분들과 이야기를 나누어 보면 하나같이 두두디북스 공간이 더 오래 우리 곁에 머무르며 알려지고 나아지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시작한 일이라 하니 이보다 적확한 표현이 있을까 싶습니다. 사실 본업이 있는 사람들이 모여 사심없이, 각자가 존중받으며, 자발적으로 인생의 진지한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곳을 찾기란 쉽지 않죠. 두두디북스가 공간에 대한 철학을 지켜가며 이 자리에 있어준 것이 감사할 따름입니다. 지금 이대로 존재하고자하는 노력만 있으면 될 것 같아요. 물론 그것도 무척 어려운 일이지만. 시간이 흐르면 더 많은 사람들이 더 재밌는 놀이거리를 가지고 이 자리에 모여 공간에 숨결을 불어 넣지 않을까요?  



6. 좋아하는 일과 현실 사이에서 고민이 됩니다  

아하는 일이라 하면 '적성'일테고, 현실이라 하면 '돈과 안정'이겠죠. 아마도 희망을 품고 사는 대부분의 사람들의 고민이 아닐까 싶습니다. 저 역시 마찬가지 인데요. 저의 개인적인 경험에서 보면, 어렸을 때는 현실만 쫓았고, 조금 큰 다음에는 적성만 좇았고, 지금은 둘 사이의 간극을 좁히는 방법을 찾아가고 있습니다.

'돈과 안정'을 쫓을 때는 타인과 불화할 일이 없었습니다. 정해진 세계에 편입하면 그만이었거든요. 정해진 곳에 줄을 서고 더 빨리, 더 앞서나가기만 하면 됐었으니까요. 하지만 언제나 내 자신과 불화하는 시간이었습니다. 삶의 중요한 가치를 유예하는 동안 나는 소중한 친구와 우정을 나누는 법도 몰랐고, 타인을 사랑해야 할 이유도 찾지 못했습니다. 가끔 잉여물처럼 버려뒀던 감정이 터져나와 어디서든 울었습니다. 발표하다가 울고.. 길바닥에서 울고.. 술 먹고 울고.,. 감정은 참는다고 없어지는 것이 아니더라구요. 오래도록 버려두는 바람에 그 감정을 다시 찾아 이름 붙이고 달래주기까지 많은 시간이 걸렸습니다.

 '적성'을 쫓게 된 계기는 이런 생각 때문이엇습니다.

 '아니, 먹고 자고 싸는 시간 빼고 나면 내 하루에 일하는 시간이 거의 다인데 좋아하지도 않는 일을 하면 내 인생 얼마나 아까워?'

 적성을 쫓다보니 불편한 점이 많았습니다. 모두가 릴레이를 하고 있는데 혼자 운동장 바깥에서 서성이는 기분이었죠. 그런데 문제는 내가 원하는 일을 찾는 과정에서도 여전히 나와도 여전히 불화하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내가 좋아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지 못했고, 좋아하는 분야라 하더라도 훈련이 부족햇죠. 기웃거리고 거절당하기 일쑤였습니다. 적성을 쫓을 때 내 주위가 나를 지지할 수 있는 좋은 환경이라면 괜찮겠지만, 그렇지 않다면 체력이 꼭 필요하다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적성을 쫓는다 해도 내 배를 채우고 잠을 재우려면 얼마간의 돈이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저는 20대 내도록 오전에는 공부를 하고 저녁에는 강의를 하며 생활비를 충당했습니다. 그러다 보니 점점 이런 생각이 들더라구요. '이러다 죽겠네.' 그래도 얻은 것은 있습니다. 제가 지향하는 바가 정확이 무엇인지 알게됐죠. 저는 '타인과 소통하는 인문학자'가 되고 싶었습니다.

  체력이 떨어지며 안온한 조직의 품에 들어가기로 결심했습니다. 현실을 택하긴 했지만 제 적성과도 잘 맞는 곳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저는 드디어 한국 교육의 틀을 벗어나 삶 전반에 대한 이야기를 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나의 가치를 잃지 않고 세상을 살아가기 위해 지켜야 할 것들을 강의했죠. 제 자신에 대한 고민을 오래한 탓에 제 적성과 맞는 일을 하는 것은 놀라움의 연속이었습니다. 다른 사람들보다 적은 노력을 들여도 더 잘 할 수 있었죠. 저는 빠르게 성장했고 조직 전반에서 많은 주목을 받았습니다. 라디오에 인터뷰가 송출되고, 뉴스 기사가 나고, 전국의 강의안을 만들거나 큰 상을 받아 대중 앞에 서기도 했죠. 그러나 그것이 끝은 아니었습니다.  

  하나의 단계를 넘어섰다는 생각이 들면 언제나 새로운 벽이 눈 앞에 나타나는 것이 인생인가봅니다. 저의 내공에 비해 너무 빨리 주목을 받기도 했고, 그런 주목은 안정적인 조직 내에서 살아 남는데 독이었습니다. 인간이란 자신과 다른 존재를  두려워하기에 죽이고 싶어 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인생에 정말 중요한 것이 무엇인가를 다시 고민하게 되었죠.

  지금에 와서는, 현실적인 이유로 직장생활을 하고 제 적성은 세분화해서 하루의 생활 중에 끼워넣고 있는 중입니다. 잊고 살지만 않는다면 언젠가는 이루어질 거라 생각하지만 지금은 아니라는 것을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죽지만 않는다면 인생에 끝은 없고 포기하지만 않는다면 무엇이든 배워 내가 더 나아질 것을 알고 있습니다. 가끔 너무 화가날 때는 내가 무엇에 반응하는가를 생각해본 후 바꿀 수 있는 것은 지금 바꾸고 내 힘으로 바꿀 수 없는 것은 잊지않기 위해 노력합니다. 조직을 단순한 하나의 개체로 보지 않으려고 합니다. 그 안에 만나는 사람 하나하나는 개인적인 인생에서 가장 절박할 때일 수도 있고, 막막하여 아무것도 할 수 없을 대일 수도 있고, 잘 해나가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 밑바닥에서 무지한 영혼이 허우적 거리는 상태일 수도 있으니 그 개별성을 이해하고 존중하려고 합니다. 그러나 무엇이 옳고 그른지는 명민하게 살펴 보려고 합니다.

 좋아하는 일과 현실 사이에 간극은 여전히 존재하지만 그 사이에 절대 넘을 수 없는 벽이 있을 거라 예단하지 않고 지금 할 수 있는 일을 하는 것이 이상주의자인 제가 땅에 발 붙이고 살아갈 수 있는 힘인 것 같습니다.



7. 한 번 싫었던 사람이 그냥 계속 싫어요

누구나 공감할만한 고민이죠. 저도 이럴 때가 가장 힘들더라구요.

사람이 싫다는 것은 과거에 어떤 모습이 나를 침해했거나 나의 가치관과 맞지 않아 싫었고 앞으로도 계속 그럴 것이란는 강한 믿음이 있다는 말인데, 이때는 이런 질문들이 필요합니다. '나는 무엇을 용인할 수 없는 사람인가?' '저 사람이 어떤 행동을 했을 때 내가 이런 반응을 했을까?' '저 사람이 저렇게 행동하는 요인을 제거할 수는 있을까?' '내가 이렇게 반응하는 내 내적인 요인을 변화시킬 수는 있을까?' '이도 저도 안되면 환경을 바구어 당분간은 안보고 살 방법은 없을까?'

첫 번재 해결책은 내가 그 사람을 다른 시각으로 보고 그 행동을 이해하는 것입니다. 이는 단시간에 되는 것은 아니죠. 보통은 미봉책이긴 하지만 갈등 당사자들 끼리 술을 한 잔 하며 분위기를 바꿔 속에 있는 깊은 이야기를 나누는 의식(ceremony)으로 서로 용서한다는 암묵적 합의를 하죠. 전체를 중시하고 갈등을 두려워하는 우리 한국 사회에서 가장 흔한 해결책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평등하지 않은 관계에서 이런 방식은 약자의 침묵만 종용할 뿐입니다. 충분한 고민없이 이루어진 화해는 그 순간으로 끝나고 다음 날이면 다시 같은 문제가 반복되죠. 오히려 더 큰 갈등이 일어나거나, 상황을 악화시키는 경우도 있습니다.

두 번째 해결책은 상대방의 행동을 문제 삼는 것입니다. 상대방을 내가 변화시킬 수는 없지만 그 행동이 문제라는 말은 해 줄수 있죠. 아까도 말씀드렸지만 한국사회는 전체의 평안을 병적으로 중시하고 갈등을 두려워하기 때문에 오히려 본인이 '예민한 사람' '관용을 모르는 사람' '불화를 일으킨 사람'으로 낙인 찍일 가능성이 큽니다. 하지만 미리 겁먹을 필요는 없습니다. 화합과 불화 중 선택해야 할때 개체가 생존할 확률에 대한 실험결과를 본 적이 있습니다. 내가 속한 집단이 좋은 사람이라 평하는 사람과는 무슨 일이 있어도 좋은 관계를 유지해야 하지만, 내가 속한 집단이 나쁜 사람이라 평하는 사람은 오히려 그 사람에게 나쁘게 대해야 자신이 살아남을 확률이 더 커진다고요. 그 사람은 집단 내 평이 좋은 사람인가요, 아님 나쁜 사람인가요?

세 번째 해결책은 환경을 바꾸는 방법입니다. 부서 이동을 하거나 이직을 하는 방법이죠. 이 방법에서 유의해야 할 점은, 두 번째 방법에서의 실패로서 이 방법을 택해서는 안된다는 것입니다. 어설프게 상대방을 찔러 보고 감당하기 힘들 거 같으니 도망치는 거라면 당신은 여전히 그의 영향력에서 벗어나지 못할 것입니다. 내가 반응하면, 상대방도 반응합니다. 상대방은 당신이 자신에게 씌운 나쁜 사람이라는 오명(?)을 벗기 위해 당신의 평판을 해칠 것입니다. 환경을 바꾸는 것은 단지 물리적인 문제가 아니라 그 사람의 영향력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함입니다. 아예 멀리 가거나, 높이 가세요. 자신을 지키는 것이 우선입니다.

이 세가지 해결책이 모두 불가능 하다면 미움을 견디는 수밖에 없습니다. 미운 감정 그대로 가지고 살아 가는 거죠. 사람을 미워하는 것은 잘못이 아닙니다. '내가 저 사람을 미워하고 있구나,' 하고 자신의 감정을 대상화 해서 바라본다면 그 미운 마음이 조금 덜어질 수는 있습니다. 그러다 보면 '내가 저 사람을 미워할 때가 있구나.'로 변하게 되고 그 사람은 미운 사람이 아니라 가끔 내가 싫어하는 행동을 할 때가 있는 사람으로 다시 정의하게 될 수도 있습니다. 누군가를 격렬하게 미워하는 감정도 타인에 대한 희망이 있기 때문입니다. 부디 타인을 미워하는 자신을 미워하지 않기를.


8. 이직 관련 고민입니다. 현재 하고 있는 일은 마케팅 일입니다. 제가 진짜 하고 싶은 일은 글쓰기지만 전업으로 삼기엔 돈이 되지 않고, 애초에 돈벌이로 글을 쓰고 싶지는 않습니다. 그래서 겸업을 할 수밖에 없는데, 이왕이면 돈을 벌기 위해서 하는 일이지만 재밌고 보람차게 일을 하고 싶은 마음입니다. (지금 하는 일은 그렇지 못하네요) 전공을 살려서 출판사나 카피라이터 등 일을 구할 수는 있겠지만 사무직은 적성에 맞지 않는 것 같아요. 제가 좋아하고 나름 잘한다고 생각하는 일은 손으로 만드는 일, 가령 공예 같은 일입니다. 지금 생각하고 있는 직종은 제과제빵이나 목공 인데, 혹시 다른 일이 있는지 궁금하고, 투잡을 위한 노하우? 같은 게 있다면 다른 분들의 얘기를 들어보고 싶네요.

긴 고민 글 감사합니다. 마케팅 관련 업무를 하셨다니 돈벌이로 글을 쓴다는 말은 아마도 대중을 현혹하는 글을 말씀하시는 게 아닌가 싶습니다. 고민자가 쓰고 싶은 글이란, 내적인 세계를 탐험하고 솔직하게 표현하여 나를 돌아볼 수 있는 글이고, 그러한 글을 써서 대중의 입맛에 맞아 돈도 벌 수 있다면 너무 좋겠지만, 그것이 우선순위는 아니라는 말씀이시죠? 그래서 그런 글쓰기와 땀흘려 일하는 정직한 노동을 병행하는 상태를 '겸업'이라고 표현하신 것 같은데, 이런 욕구가 있다는 것은 지금 본인이 많이 소진된 상태라는 방증입니다.

 타인의 기준에 맞추어 내가 아닌 내 모습으로 너무 오래 애썼다, 글을 쓰며 타인의 욕망에 휘둘리지 않는 내 영혼의 집을 짓고, 정직한 노동의 가치를 되새기며 내 적성에도 맞는 일로 돈을 벌고 싶다,는 마음이신 거 같아요. 인생의 의미를 놓치지 않고 열정적으로 살아가려는 모습이 인상 깊네요. 멋지십니다.

공예라는 건 노동으로 빚는 예술이죠. 아마 대부분 공방을 열어 공예품을 팔고 클래스를 진행하는 방식으로 수익을 얻으실 텐데요. 꽃꽂이, 보자기 공예, 미술공방.. 언택트 시대의 컨택트를 진행하며  공방을 운영하시는 분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하나같이 모두 생존의 어려움을 말씀하셨던 거 같아요. 기술을 배우고, 공방을 열 만한 장소를 찾고, 인테리어 하고, 홍보하고, 대중에게 자신을 각인시켜 생존할 만큼의 돈벌이를 하기까지 짧게 잡아도1~2년은 걸리는 것 같더라구요. 내가 '좋아하는' 글을 쓰고 싶어 돈을 벌기 위해 '좋아하는' 공예 일을 도전하는 건 분명 오랜 희생이 필요한 일입니다. 만약 현실적으로 가게 운영이 정상활 될 때까지 버틸 수 있는 여력이 충분하다면 어떤 공예든 도전해 보시길 응원해 드리고 싶고요, 그 정도 여력이 없다면 조금 더 안정적으로 돈을 벌 수 있는 다른 '재밌고 보람찬 일'을 찾아 보셨으면 좋겠습니다.

 경제적인 이유 뿐만 아니라 시간도 문제인데요, 공방을 운영하면 정해진 시간에 열고 닫는 게 끝이 아니라 손님을 끌고 지갑을 열게 하기 위해서 24시간 연락망을 유지하고 행사나 재료 준비에 많은 시간을 소요하게 됩니다. 그때의 고민과 다사다난한 경험은 글감을 벌기에는 좋겠지만, 안정적으로 글쓰는 시간을 확보하기는 어려울 것입니다. 당장은 글을 적게 쓰더라도 인생에 경험을 늘리고 싶다면 공예 분야로 이직하기를 추천 드리고, 더 많이 읽고 써서 최종적으로는 글로 인정받는 작가가 되고 싶다면  이미 하고 있고 잘 하는 일을 계속하면서 내 일과에 읽고 쓰는 시간을 꾸준히 확보하기를 추천드립니다.

 투 잡의 노하우를 말씀드리면, 일단 체력이 가장 중요하다고 말씀드리고 싶구요. 양쪽 다 70프로 정도의 능력만 써서 체력 안배를 잘 해야 오래 그 생활을 유지할 수 있으니 모든 일을 완벽하게 잘 할 수는 없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다음 과제로 넘어가는 면면도 필요하다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8. 지금 직장에서 일을 한지 삼년차... 일하는 것이 버겁고 힘듭니다 어떻게 다시 활력을 찾을 수 있을까요?

마의 3년차에 돌입하셨군요. 웬만큼 적응도 끝났고 일처리가 손에 붙어 익숙함을 넘어 지루해지기 시작하고 직장의 부조리가 눈에 잘 보이는 시기인 3년차. 직장 선배님들은 3년 마다 이런 고비가 온다며 그 시기만 잘 버티면 괜찮아진다고 말씀하시던데, 저는 매일이 이런 고비라 어떤 말씀을 드려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우선 당분간은 감각에 집중해 보시라 권하고 싶습니다. '버겁다'라는 생각이 들면 그 생각을 알아 차리고 심호흡 한 번, 천천히 바디스캐닝을 해보는 겁니다. 바디스캐닝은 발끝에서 머리끝까지 천천히 옮겨가며 감각을 집중해 본는 일종의 명상법입니다. 그렇게 하다보면 갑자기 집중력이 흐트러질 때도 있고, 유난히 불편하게 느껴지는 감각이 드러나기도 합니다. 그 때 그 불편한 감각을 해소해 주는 노력을 하는 것입니다. 허리를 세우고 뻐근한 근육을 환기시키고요, 낮잠을 좀 자거나, 아로마 향을 맡거나, 따뜻한 차를 마시거나, 시원한 물에 손을 씻거나. 책 '굿라이프'에서는 행복은 강도가 아니라 빈도라는 말을 합니다. 감각을 환기시켜 조금 나아지는 순간을 자주 만들면 어느덧 하루가 괜찮아지게 될 것입니다.  평소와 다른 음식에 도해서 미각을 깨워보거나, 산책이나 가벼운 운동으로 체력을 고양시키는 것도 좋은 방법입니다. 3개월만 그렇게 해 보세요. 3개월이면 내가 하고자 하는 일이 정확한 방향이었는지 아니었는지 판가름 나기 충분한 시간이니까요.

그렇게 해서도 괜찮아지지 않는다면 내가 있는 곳이 나와 어울리는 곳인지를 고민해 보셔요. 저로 말할 것 같으면, 보수적이고 획일적인 집단에서는 예민하고 감정적이라는 평을 듣는 편이고요, 타인을 위해 봉사하고 평등하며 자유로운 집단에서는 창의적이고 섬세하다는 평을 듣는 편입니다. 나와 맞지 않느 곳에 있는 사람은 삶이 언제나 버거울 수밖에 없죠. 인간에게 다양한 경험과 넓은 시야가 필요한 이유는, 내가 아닌 다른 사람의 지식을 익히고자 함이 아닙닌다. 개성있는 내 존재 그대로 괜찮다는 걸 깨닫기 위해서죠. 나의 존재를 깨고 갈아서 버겁게 숨쉬어야 하는 곳에 있다면 빠져 나오세요. 더 넓은 세상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9. 요즘시대에 이타주의적 성격은 독일까요? 남을 위해 배려하고 이해해주는 착한사람을 요샌 그렇게 살면 바보같은사람이라고 말하는 현실이 조금 씁쓸합니다.

요즘들어 사람들은 타인의 일에 간섭하고 싶어 하지 않고, (엄밀히 말하면 자신에게 이익이 되는 타인의 행동은 착취하고 싶지만 자신에게 이익이 되지 않는 타인의 고통에는 눈을 감는?)옳고 그름을 따지는 사람보다 경제적 이익을 내는 사람이 영웅시 되는 풍조가 분명 있습니다. 저도 충분히 공감하는 세태구요, 그것이 진실인 것만 같아 사는 게 허무하고 씁쓸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고민자님이 이런 질문을 안고 살아간다는 건 어느정도 자신의 답이 정해져 있기 때문이 아닌가 싶은데요.

예전에 부의 계급에 따라 giver가 많을까, taker가 많을까 실험한 결과를 본 적이 있습니다. 기버라 함은 말 그대로 '주는 성향'을 가진 이타적인 사람이고 테이커는 '받는 성향'을 가진 사람입니다.  확실히 기버는 자신의 이익을 취하지 않다보니 하위 계급에 머무르고 있었구요, 성공한 이들 중에서는 테이커가 많았습니다. 상식적으로 생각해도 내가 많은 이익을 취하면서 어렵고 힘든 일은 적은 금액으로 아웃소싱하는 부자들은 테이커의 성향이 강하죠. 그런데 재밌는 사실이 하나 있었습니다. 최상류층 사람들은 또 기버가 많았다는 것입니다. 의외죠?

자세히 보니 이랬습니다. 최상류층의 기버는 먼저 자신의 것을 베풀되 상대방이 착취하는 사람이라면 베푸는 것을 멈출 수 있었습니다. 그러다 보니 상호 호혜적인 관계만 남아 명성과 이미지로 더 큰 가치를 창출할 수 있었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하위층의 기버는 어땠을까요. 상대방이 누구인지 어떤 상황인지 이것저것 재지 않고 오로지 주는 것의 즐거움만 취했습니다.

이타적인 사람이란, 남에게 자신의 것을 베풀며 심리적 이익을 취하는 사람입니다. 그러나 자신의 것을 베풀었다고 해서 모두 좋은 영향을 주는 것은 아닙니다. 진정한 선한 일은 나도 좋고 남도 좋은 일을 찾는 것입니다. 만약 테이커를 만나 자신의 것을 주고 또 주었다면, 그것은 이미 배부른 사람에게 케이크를 먹여 당뇨병과 고혈압이 오게 하는 것과 같습니다. 테이커가 모든 이익을 취할 수 있는 시스템을 방조하여 타인도 착취당하게 만들었을 수도 있습니다. 타인의 미소에 생각 없이 자신의 것을 주는 사람은 좋은 사람이 아니라, 호구입니다. 단순히 친절과 인정을 구걸하는 식인귀나 다름 없습니다. 요즘 같이 작은 행동도 큰 영향력을 끼칠 수 있는 시대에는 선한 일도 경계심을 가지고 행해야 합니다.  

한 가지 더 말씀 드리고 싶은 것은, 누군가가 나에게 내 성향을 부정한는 말을 할 때는 그 사람이 어떤 사람인가를 먼저 봐야 한다는 것입니다. 누군가에게 조언을 하려면 100번의 업을 쌓으라는 말이 있습니다. 그토록 말이란 신중해야 하는 것입니다. (여기 찔리는 1인....) 그리고 인간은 자신이 보고 듣고 느낀 그 수준 만큼만 타인을 평가하게 되어 있죠. 자신이 할 수 있는 이해의 범위를 벗어난 타인의 고차원적인 삶에서 정답을 찾아줄 수는 없는 일입니다. 그렇기에 어떤 말을 들었을 때는 그 말 자체에 천착하여 고민하기 보다는 그 사람을 볼 필요가 있습니다. 고민자에게 그런 말을 한 사람은 고민자님이 존경하거나, 배울 점이 있는 사람인가요? 자신이 한 말과 행동이 일치하는 사람인가요? 혹여나 자신의 선택을 합리화하는 방편으로 고민자님을 비난한 것은 아닌가요? 고민자님이 가고자 하는 삶의 방향, 그러니가 인생의 가치관과 다른 우선순위를 가진 사람은 아닌가요?


여기까지, 김반장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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