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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반장 Oct 18. 2019

세상에서 가장 강한 존재, 진드기

향수 어느 살인자의 이야기-파트리크 쥐스킨트

 *향수 어느 살인자의 이야기, 파트리크 쥐스킨트, 열린책들

 

장 바티스트 그르누이, 그는 부조리한 존재다.


그는 악취가 심한 파리의 시장 생선 좌판 뒤에서 태어났다. 그의 엄마는 생선을 대가리를 썰듯 무심하게 그르누이의 탯줄을 자르고는 널려 있는 생선 내장 위에 죽도록 버려두었다. 그러나 그르누이는 살아남았다.  태어나자마자 첫 울음소리로 자신의 존재를 세상에 알린 덕분에 그의 엄마는 그레브 광장에서 사형을 당했다.


그리고 그는 세상의 모든 악취가 모인 곳에서 태어났지만 그에게는 인간의 냄새가 나지 않는다. 사람들은 그가 가까이 다가가도 그의 존재를 알아차리지 못하고, 냄새 없는 그에게 왠지 모를 두려움을 느낀다. 그를 죽이고 싶을 정도로 소름 끼치게 여기지만 그는 죽지 않고 살아남는다. 오히려 끝까지 살아남아 인간의 냄새를 탐한다.


 그는 진드기처럼 아무것도 바라지 않았지만 인간의 냄새를 탐하였고, 그에겐 냄새가 나지 않았지만 세상 모든 냄새를 구별해낼 수 있었고, 태어날 때 '사랑을 거부하고 생명을 선택한(p37)' 존재였지만 끝에 가서는 세상 모든 사람의 사랑을 받을 수도 있는 존재, 즉 존재 자체가 부조리함의 극치인 인간이다. 과연 인간일까 싶을 정도로.



그는 진드기처럼 몸을 숨기다가 태어나 처음으로 자신의 사명을 자각하는데, 첫 살인을 저지르고 난 후이다. 그르누이에게 살인은 살인이 아니다. 그에게 살인은 향기를 취하려는 목적에 가장 부합하는, 마치 가야 할 곳을 향해 가장 적당한 길을 선택하듯, 필연적인 선택일 뿐이다. 그는 죽어가는 여자의 영혼에는 관심이 없다. 오직 그녀의 향기만을 생각한다. 숭고하리라고만 치 경건한 살인의 목적. 그는 세상 가장 순수하고 가장 기괴하다.


지금 그는 행복으로 온몸이 떨렸으며 그로 인해 잠을 이룰 수가 없었다. 다시 태어난 기분이었다..... 그는 자신이 천재라는 것, 자신의 인생은 의미와 목적과 목표, 그리고 보다 더 높은 사명을 갖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던 것이다. 그것은 바로 향기의 세계에 혁명을 일으키는 일이었다.(p70)



  평생 몸을 웅크리고 살아왔던 진드기가 천재일우의 기회를 만나 짐승의 피를 빨아대듯, 그르누이는 향수를 만드는 법을 배워간다. 그를 스쳐간 많은 사람들은 그를 이용해 돈을 벌었다. 그들에게는 모두 원대한 계획이 있었지만, 소설은 마치 비웃기라도 하듯 그들의 계획이 어떻게 원대하게 스러져갔는지 소상히 보여준다. 그들은 모두 꿈을 이루지 못하고 죽었다. 하지만 그르누이는 신의 가호를 받는 것처럼 무탈하게 하나의 목적을 향해 달려간다.



그는 첫 살인 이후 24명의 아름다운 소녀들을 죽였고, 향수의 도시 그라스에서 가장 아름다운 여인을 죽임으로써 인간의 냄새를 탐닉하는 여정을 마무리한다. 여기서 주의해야 할 것이 있다. 그르누이가 아름다운 여인들만을 죽이기도 했고 그녀들의 '죽은 상태'는 사람들로 하여금 심미안을 뜨여주기까지 했지만, 그르누이가 그들의 아름다움 때문에 죽인 것은 아니다. 그르누이는 여인들의 아름다움에 대한 사랑은 사람들의 착각이라 말한다. 사람들은 사실 여인들의 냄새에 매혹되는 것인데 그 자신은 그것도 알지 못하고 여인들의 탐스러운 머리칼에, 붉은 입술에, 깨끗한 피부에 사랑을 느낀다고 생각한다고. 인간의 사랑을 받는 것은 젖가슴이 몽글하게 피어오르는, 소녀티를 막 벗은 여인의 향기라는 것이다. 즉 그르누이가 살인의 대상으로 아름다운 여인들을 선택했던 이유는 그들이 아름다워서가 아니라 철저히 냄새 때문이었다. 다시 한 번 말하지만 그르누이에게는 살인이 우리가 생각하는 그런 살인도 아니다. 그저 여인들이 죽든 말든 상관이 없을 뿐이다. 그리고 죽은 상태에서 가장 순순히 냄새를 내어주므로, 여인들을 죽였을 뿐이다.


감동과 겸허, 그리고 감사의 마음이 가슴속에서 솟구쳤다.
'고맙다'
그가 조용한 목소리로 말했다.
'고맙다. 장 바티스트 그르누이. 지금의 네 모습이 자랑스럽다.'
그렇게 그는 자기 자신에게 사로잡혀 있었다. (p329)


  그라스의 경찰들은 그르누이의 숭고한 목적의 완수를 친절하게 기다리기라도 한 듯, 그의 향수 작업이 모두 끝난 후 그를 체포한다. 그르누이의 사형 집행일, 그르누이를 찢어 죽일 듯 광장에 모여든 사람들은 그르누이가 소녀들에게 채취해 만든 향수의 냄새를 맡고 가히 광기라고 볼 수밖에 없을 만한 집단 섹슈얼리티를 선보인다. 그들은 향수의 향기를 맡은 순간 그르누이에게 무릎을 꿇었고 열광했다. 처음에는 기적이라고 생각했고, 모든 이에게 부드러운 애정을 느꼈고, 어린아이의 맹목적인 애착심이 생겨났고, 그들을 나누었던 계급과 성별, 문화, 도덕 그 어느 것도 아랑곳하지 않고 서로 사랑하게 되었다.


그는 그의 원대한 계획대로 향기를 만들어 모두의 사랑을 받게 된 것이다. 그는 승리감에 도취해 인간들에게 경멸적인 비웃음을 보인다. 그 순간의 그는 신과 다름없었다. 그러다 그는 그 승리가 두려워지기 시작했다. 그는 자신이 평생 그렇게 살아왔듯, 증오 속에서만  만족을 얻을 수 있다는 것을 깨닫고는 차라리 사람들이 자신을 죽여줬으면 하는 생각을 한다. 그때 그에게 달려드는 마지막 희생자의 아버지 로르 리쉬. 그르누이는 그가 자신을 죽일 거라는 생각했지만, 그르누이의 기대와는 달리 그는 '용서'라는 가장 고차원적인 사랑을 실천한다. 그 순간 그르누이가 바라는 것은.. '자신의 악취에 질식하지 않기 위해 산산조각으로 폭발'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는 땅바닥에 쓰러져 정신을 잃는다. 그르누이가 말하는 '악취'가 그가 만들어낸 향수인지, 그가 가지지 못했던 그 본연의 냄새를 말하는 것인지, 그의 사악함을 말하는 것인지는 알 수 없다. 어쨌든 그르누이가 그 자신의 냄새를 '악취'라고 표현한 처음이자 마지막 순간이었다.


그는 하나의 목적만을 위해 살았고, 소설 속에서 유일하게 목적을 이룬 인물이지만 자신이 향해 가던 궁극의 끝에서야  그 목적 자체가 자신이 짊어져야 할 원죄였음을 깨달은 것 같다. 인간은 결코 신이 될 수 없다. 그르누이도 신처럼 무심했지만 신이 될 수 없었다. 그래서 사람들이 그르누이를 사이코패스라고 하는 걸까. 신의 무심함과 인간의 무심함의 차이는 무엇일까. 왜 인간 속의 목적 지향적인 예술성은 이토록 병리적인가.



26명을 죽이고도 세상의 사랑과 존경과 용서를 받은 그르누이는 1767년 6월 25일, 자신이 태어난 지 29년 만에 자신이 태어난 파리의 식료품 시장이 있는 이노셍묘지를 찾아간다. 자정이 지나자 이노셍묘지로 몰려든 도둑, 살인자, 창녀, 불량배 등 천민들. 그 속에서 그르누이는 향수를 자신의 몸에 쏟아붓고, 천민들은 그에 대한 외경심에 그를 갈망하여 갈기갈기 찢어서 먹어버린다.


(천민들은) 뱃속이 약간 더부룩하긴 했지만 마음은 날아갈 듯이 가벼웠다. 자신들의 음울했던 영혼이 갑자기 환하게 밝아졌다. 그들의 얼굴에 수줍은 아가씨 같은 달콤한 행복의 빛이 떠올랐다...... 이상할 정도로 당당한 기분이었다. 그들이 사랑에서 비롯된 행동을 하기는 이번이 처음이었던 것이다.(p379)



   이 책을 읽고 처음에는 영화를 보는 듯 생생한 소설의 묘사에 감탄했다. 인우독서회 모임원의 감상평을 인용하면 '실제로 냄새가 나는 것 같다.' 역사학을 전공해서 그런지 세세한 날짜까지 설정하는 작가의 집요함에 또 한 번 놀랐다. 모든 에피소드가 눈앞에서 일어나는 듯하다. 그래서 오히려 불쾌함이 느껴지기도 한다. 작가가 정말로 향수 장인이라도 되는 것 같은 방대한 지식에 나의 미천한 뇌가 방망이질을 당하는 것 같은 느낌도 든다. 예전에 '고래'라는 소설을 읽고 이 비슷한 느낌을 받은 적이 있다. 시나리오 작가답게 천명관 작가님의 필력도 흡인력이 뛰어나다. 어려운 단어도 많고 스토리의 정보도 많지만 책장이 술술 넘어간다. 하지만 '고래'와의 차이점이 있다면, 그것은 소설을 관통하는 메시지의 깊이가 아닐까 싶다.


  '향수 어느 살인자의 이야기'를 읽으면 무언가가 오래 남는다. 그것을 뭐라고 해야 할지 모르겠다. 스토리는 풍부하지만 그 안에 중심은 있다. 해석의 여지는 다양하지만 그 어떠한 해석도 유일한 주제가 될 수 없고, 그것들이 무의미하지도 않다. 그르누이는 가장 악하지만 신적인 사랑을 받았고, 인간들을 경멸하면서도 가장 낮은 천민들에게 죽음으로 사랑을 선물하여 신적인 실천을 했다. 그것이 자신의 목적의 허무함을 깨닫고 자신을 유기한 행동인지 진정한 희생을 한 것인지 알 길이 없다. 읽는 사람으로 하여금 자꾸만 길을 찾게 하는 소설, 무언가 있을 것 같은 중심을 향해 무한히 방황하게 하는 소설이 독자에게 깊이 남는 이야기가 아닐까.



'향수 어느 살인자의 이야기' 그 뒷 이야기,  책 그리고 영화


  소설을 읽은 후 독서모임원들과 함께 영화를 볼 기회가 생겼다. 소설과 영화의 다름 점에 대한 이야기가 나왔다. '소설에서는 주인공이 20명 넘게 죽였는데 영화에서는 13명, 그것도 전설 속의 향수의 13번째 재료를 찾는다는 설정이었다.' '소설에서는 마지막 집단 광기 장면에서 인간에 대한 경멸을 그려내는데, 영화에서는 그르누이가 처음으로 죽였던 소녀를 떠올리며 눈물을 흘렸다. 그 소녀를 사랑했다는 설정 같다. 관객의 입장에서 스토리를 이해하기 쉽도록 각색한 것 같다'

    그리고 잠시의 치맥 타임 동안에도 이어졌던 논란이 있었으니, '과연 그르누이가 처음 죽인 소녀가 손질한 것은 오이인가, 자두인가?'하는 것이었다. 분명 나는 오이라고 봤는데, 다른 회원은 자두라고 하고, 영화에서도 그 소녀는 자두를 손질하다가 죽임을 당한다. 결국 치맥 타임이 끝나고 새벽 2시가 다 되어 집에서 급하게 뒤져봤고, 답은 '출판본마다 다르다.'였다. 열린책들의 옛날 출판본에서는 오이가, 요즘에는 자두가 나오나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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