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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반장 Jan 07. 2021

미안하다. 정인아.

나는 아이들의 말없는 소리가 두려웠다. 자기만의 세상에서 침묵하는 그 아이들의 목소리를 듣지 않고는 한 걸음도 나아갈 수 없는 기분이었다. 특수교사는 아이들의 피드백 없이도 단단한 확신과 올바른 신념을 불쏘시개 삼아 열정을 불태울 줄 알아야 했다. 그러고도 그것이 아이들의 삶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는 그 누구도 알 수 없었다. 아이들은 추워도, 혼자 밥을 먹고 싶어도, 배가 아파도, 나가고 싶어도, 선생이 형편없어 화가 나도 말을 삼킬 테니까.
 -2020.7.5. 브런치 글, 나의 찬란한 20대를 기리며 中-


나는 침묵이 두렵다.

그러나 침묵하는 존재를 두려워하지 않는 이는 더더욱 두렵다.


할 말이 없다.

하찮은 고통에는 장단맞혀 주기 싫어졌다.

어제까지도 옆에 있는 이들의 눈물과 눈물젖어 웃는 가면이 안타까워 술 잔이라도 한 번 쳐 주려고 했는데,

승진이 무엇이며,

돈이 무엇이란 말인가.

태어나 언어를 가져본 적 없는 아이가 죽었는데.

침묵말고는 작은 칭얼거림도 없는 아이가 죽었는데.

알 수 없는 시간에 아무도 모르는 어둠 속에서 고통만이 인생의 전부인 삶을 살았던, 아이가 죽었는데.


섬세했고 기민했던 이들의 시선을 편견이며 오해라고 단정하지 않았다면 정인이는 지금 어떻게 됐을까. -그것을 알고싶다 中-


세상이 하나의 큰 거짓덩어리가 아닐까,

하는 생각은 줄곧 있어왔지만

이토록 어떠한 언어도 허락하지 않는 암담한 어둠 속에 나를 던져 놓은 일이 있었을까.


가슴이 너무 아파서 언어를 떨어뜨렸다.

깊은 구덩이에.

명복을 빈다는 말도,

다음 생은 더 나을 거라는 말도,

위에서 행복하라는 말도,

그저 처참하다.

목에 콱 막혀 아무 말도 할 수 없다.


이 아픔이 무거워 던져 버리고 싶기도 하지만,

나는 이 아픔을 던지지 않을 것이다.

욕 한 번 시원하게 하면 내 고통은 조금 나아질 지라도,

나는 이 아픔을 던지지 않을 것이다.

꾹꾹 삼켜 오래도록 아파할 것이다.

나는 섣불리 누군가를 미워하지 않을 것이다.

꾹꾹 삼켜 오래도록 아파도 그렇게 할 것이다.

삼키고 삼켜 끝까지 생각하고, 생각할 것이다.

생각하는 끝에 그 누가 있든,

내가 있든, 타인이 있든

사랑하는 이들도, 나의 이익이 되는 이들도, 내 곁에 있는 이들도 비판하길 두려워하지 않을 것이다.


당신들.

자신의 하찮은 고통 속에 이 아이의 죽음을 숨기지 말라.

언론의 음모든, 권력의 음모든, 보이지 않는 진실에 대한 판단을 유예하며 신중한 척하는 태도든,

상관없다.

당신이 어떤 말을 지껄이든,

진실은 스스로도 알고 있을테니.

아니, 느끼고 있을 테니.

어떤 말을 듣고, 어떤 상황이었든, 어떤 암묵적 합의가 있었든,

당신들은 알고 있다.

당신의 잘못을.

자기 자신이 제일 잘 안다.

알고 있다는 사실로 그 고통이 사소한 잘못의 값을 다 치룬 것이라 안도하지도 말라.

스스로가 약간의 불편한 가책을 감수했다고 해서 그것이 당신들이 바라는 동화의 끝은 아니다.

고통은 언제나 끝났을 거라 생각되는 그 지점에서 가장 고통스럽게 피어 오를 것이다.

진실로 그럴 것이고, 또 그러길 바란다.

당신에게 내가 가장 두려운 존재가 되어서라도

모두가 피하는 더러운 똥이 되어서라도,

그 이상의 고통이 있길 바란다.

그 고통만을 위해

모두가 가장 하찮다 말하는, 농담거리로 남겨질 그 죽음조차도 내가 감내하고 싶은 마음이다.

그 고통의  끝에  다다랐을 때

부디 당신의 나약함을 탓하며 스스로를 불쌍히 여기지 않기를 바란다.

굴종도 죄고, 무지도 죄다.


당신들.

평생 아파야 할 것이다.

나는 아이를 죽인 이들의 말도 믿지 않고

당신들의 말도 믿지 않는다.

가장 경계해야 할 감정은 값싼 연민이라는 것을 알기에.


감히,

이 아이보다 더 고통스러운 척 하지 말라.

사소한 잘못이라고 그 결과까지 사소한 것은 아니다.

고작 얼굴에 난 자그마한 사마귀같이 새겨진 살아남은 자들의 불안감 주제에, 아는 척 하지 말라.

시끄러운 당신들의 칭얼거림을 들어줄 수가 없다.

태어난 생의 대부분을 죽음과 두려움과의 사투로 지나버린 한 아이는 그 작은 목소리의 칭얼거림 그 한 마디도 삼키고 죽었다.


나는 침묵이 두렵다.

침묵하는 이들의 고통이 두렵다.

그래서 지금은 침묵말고는 할 수 있는 것이 없다.

그래도 다행인 것은

이 침묵은 잠정적 침묵이라는 사실이다.

내 언젠가 그 깊고 깊은 구덩이에서 언어를 찾으면

밤이 내려 어두워진 골목에서

지나가는 이들을 삼가고 삼가게 하는

돌뿌리 같은 존재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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