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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반장 Aug 04. 2021

인간의 조건

노동 같기도 하고 놀이 같기도 한 나의 부캐

이번 하반기 인사이동 시기, 과를 옮겼다.


직장 내에서 내가 어쩌지 못할 변화를 온몸으로 맞고 있다. 나로 인한 것이든, 나로 인한 것이 아니든, 나와 관계한 것은 무엇이든 나의 행위로 영향을 주고받기에 마냥 내맡길 수도 없다. 무언가를 선뜻하기도 어렵고, 아무것도 하지 않기도 어렵다. 자신의 호불호는 내려놓고 운명에 자신을 성실히 내맡겼다던 마이클 싱어는 살다 보니 CEO도 되고 명상센터의 땅도 늘었다지만, 살점이 뜯겨 나가 흰자위를 번뜩이는 짐승 같은 직관으로 불호엔 불호를 외치리라 결심했던 때가 불과 몇 달 전이었다.


국가적 당위와 개인의 욕망이 변화의 회오리를 일으켰고, 내가 어쩌지 못할 결정이라는 것은 이미 알았지만 도통 그 정도일 줄은 몰랐던 순간에 우두커니 서있다. 뭐라도 해야 할 것만 같은데, 아무것도 할 수 없어서 주제넘게 뭐라도 애쓰고 싶은 습성이 갈 곳을 잃었다. 습성은 쥐새끼처럼 재빠르다. 지나치게 친절했다가, 성실했다가, 짜증 나는 목소리 위에 걸터앉았다.


앉은자리는 달그락거리는 소리를 냈다. 고르지 않은 땅 위에서는 어떤 의자도 그런 소리를 낸다. 취하지 않아야지, 하면서 소주를 홀짝이고, 호흡을 가지런히 해야지, 하면서 절로 한숨이 났다. 잘난 사람과 잘난 척하는 사람과 잘나야 하는 사람 사이에서 텅 빈 탁구공이 된  것만 같았다. 매일 점심메뉴를 정하는 일도 곤욕이었고 익숙한 것들은 죄다 지루했다. 어디론가 나가고 싶다면서도 막상 문간에 서서 손잡이를 잡으면 무서워 벌벌 떨었다.


땅을 고르고, 잡을 수 없는 쥐새끼에게는 새 집을.


그런 마음으로 다른 일에 열정을 쏟았다. 직장 밖에서  독서모임과 강연과 새로운 형태의 온라인 모임을 기획했다. 신경질적인 어린아이에게 공을 던져 주듯 나에게 새로운 놀이를 주었다. 여전히 땅은 파도치듯 일렁이고 쥐새끼도 살아 숨 쉬고 있지만, 잠시의 놀이 같은 노동으로 이 순간은 무마될 것이다.


7월의 마지막 날 첫 기획의  첫 번째 강연을 진행했다. 기획은 제일 먼저였지만 시작은 가장 늦었다. 역사기행 전문가의 끊김 없는 파노라마 필름을 구경하며, 어떤 정보는 음각 내듯 기록하고 어떤 정보는 나른하게 흘려보냈다. 순간의 감각을 두텁게 중첩시키고 새로이 확장시키는 역사적 지식들이 민들레 홀씨가 되어 제각각의 가슴에 내려앉았다. 이제, 그들의 역사다.


강연 말미 간단한 소감을 전했다.


굿 라이프라는 책에서 행복한 사람들은 돈으로 이야깃거리를 산다고 읽은 적이 있습니다. 선생님의 말씀을 듣다 보니 선생님의 삶은 참 이야깃거리가 많구나, 나도 그렇게 살고 싶다,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현실을 살다 보면 오늘의 나는 불안하고, 두렵고, 혼란스럽습니다. 그 현실을 한 땀씩 모아 이야기로 만드는 것이 역사의 힘일 텐데요, 제 인생에서도 의미 있는 이야기를 직조해보고자, 선생님처럼 경험을 사볼까 합니다. 빚을 내서라도요. 공수래공수거라고, 빈 손으로 와서 죽을 때는 육체도 못 가져가고 돈도 못 가져간다지만, 빚도 못 가져가지 않겠습니까.

오늘 배운 것도 많고 기억에 남는 이야기도 많았지만, 선생님의 역사 기행 기록이 담긴 sns를 공유해 주신다면 더 큰 도움이 될 것 같습니다."


강연이 끝나고 뒷정리를 하고 있는데 누군가가 좋은 경험 하게 해 줘서 고맙다고 말했다. 고마울 것이 없었다. 돈만 주면 누구나 같은 체험을 살 수도 있겠지만, 체험이 좋은 경험으로 발효할 것인지 여부는 체험자의 역량이다. 체험하는 자가 땀 흘려 스스로 오래 향유하지 않으면 경험은 결코 움트지 않는다. 체험은 경험이 되어야 비로소 세계를 확장시킨다.


행사를 마무리하고 차 한 잔 마실 틈도 없이 후다닥 집으로 향했다. 나의 놀이는 준비할 것도 많고 신경 쓸 것도 많아 꽤나 피로했다. 돈도, 시간도, 체력도 잡아먹는 아귀 같은 놀이의 끝에 내게 남는 것이 무엇일까 생각했다. 무용함의 무한한 우주를 담기에는 내 그릇이 너무 작았다.


걷다 보니 개미 한 마리가 어깨에 올라타 있었다. 툭툭 털어도 당최 떨어지지를 않아 경박스럽게 손목을 떨어가며 개미를 떨궜다. 개미는 부지런히 파쇄석을 옮겨 다니다 사라졌다. 어디서부터 올라탔는지, 여기가 어딘지, 어디로 가는지도 알지 못하면서 저리 부지런을 떠는 게 우습지는 않았다. 나와 나의 동료들은 요즘 어느 거인의 어깨에 올라타 어디에 떨어져 있나,를 생각할 틈도 없이 얼굴 없는 명령과 지시에 부지런을 떨고 있다.


그래도, 나의 돈과 시간과 체력을 쏟아부은 무용한 놀이에 개미 같은 부지런을 나눠 쓰다 보니 새삼 내가 인간이 된 듯했다. 조직에서는 이미 인간이고도 인간 같지 않은 은유의 덫에 쉽게 걸려든다. 짐승의 새끼가 되기도 하고 벌레가 되기도 하고 단세포 생물이 되기도 한다. 파리는 어디서 뭘 파먹고 와서 저리 통통한지 귓가에서 빙빙 돌고, 송충이는 허물을 벗어봐야 해충이다. 그러나 이 피로하고 무용한 놀이를 하는 날에는 새삼 인간이 되는 것이다. 새삼 에피퍼니의 순간이 오는 것이다.


나는 인간임을,  

그들도 인간임을,

말을 잃은 자라도, 한 때는 가졌거나 한 번도 가져보지 못한 자라도, 인간은 하나의 우주임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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