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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TheChoiceIsMine Dec 16. 2022

[라오스 일상] 세 남자

일.

회사에서 두 가지 교육을 받은 후 이수증을 제출하라고 한다.

두 가지 교육을 받으려면 두 기관에 가입을 해야 하는 상황인데, 한 기관은 무리 없이 가입이 되어서 교육을 마친 후 두 번째 기관을 가입할 때였다. 한국 유심으로 갈아 끼우고, 기관 가입 시 핸드폰 본인 확인을 하는데, 어쩐지 문자가 안 온다. 

예전에도 이런 일이 발생한 적이 있어서 전의 통신사에서 답변 왔던 내용을 잘 살펴보았다.

■ APN 설정을 확인합니다. 
환경설정-> 네트워크 더 보기-> 모바일 네트워크-> 액세스 포인트 이름->맨 위에 플러스 버튼 선택
해당 항목 값 입력 이름: SK T
■ LTE 단말 APN 설정 APN : lte.sktelecom.com
MMSC : http://omms.nate.com:9082/oma_mms 
MMS : proxy smart.nate.com  
MMS : port 9093 MCC : 450  
MNC : 05   
Type : Internet + mms
■ 휴대폰 설정 화면 > 연결 > 모바일 네트워크 > 액세스 포인트 이름 > 맨 위 오른쪽 점 세 개를 누르시면 '기본 설정으로 초기화' 설정이 가능합니다.

이 외계 말이 무슨 뜻인지 나는 이해하지 못하지만 예전에 이렇게 해서 문자를 받은 적이 있었기에 심호흡을 한 번 한 후 여기서 하라는 대로 모두 했다. 

그래도 문자가 안 오길래 마지막 줄 '기본 설정으로 초기화'까지 마쳤다.

하지만 목 빼고 기다리던 한국에서의 4자리 숫자는 오지 않는다.

나는 시름에 빠지며... 내일 다시 해보는 거야...라고 생각하며 라오스 유심으로 갈아 끼웠다.


그런데 이게 머선 일이고! 

라오스 유심으로 갈아 끼운 후 데이터가 되지 않는 것이다. 

무슨 말인지도 모르는 저 정보들을 마구 건드린 후 설정이 변화되었는지 라오스 데이터가 작동하지 않는 상황이 되면서... 나는 깊은 절망에 빠졌다.

이제는 누구에게 물어보기도 힘들다. 라오스 통신사에 전화해서 내가 뭐라고 할 건가? 한국말로 해도 무슨 소린지 모르는 판국에...

저녁이 되어 남편이 오고 식사 후 설거지를 마친 후 드디어 조용한 시간이 되자 나는 남편에게 하소연을 하기 시작했다.

"내가 말이지 교육을 두 개 들어야 하는데, 하나는 잘 들었어. 그런데 두 번째가 안되는 거야...(구절구절 구질구질)."

내가 그간의 스토리를 이야기하기 시작하자 남편은 짐작이라도 한 듯 "간단히 말해, 그래서 뭐?" 한다.

"그랬더니 이제는 데이터가 안 돼!" 하며 내 핸드폰을 내밀었다.

남편은 나의 APN 설정을 본인의 것과 비교하더니, 내 APN을 본인과 똑같이 입력하기 시작한다.

그러더니

짜라란~~~

데이터가 되면서 인터넷이 보이기 시작하는 것이다.

야호!

"나 한국에서 출장자들 오면 매번 이거 바꿔 줘"하는데... 갑자기 남편 뒤에서 후광이 비치며 멋있어 보인다.



이.

라오스 데이터 문제는 남편이 잘 해결해 주었지만, 한국의 교육 기관 가입은 여전히 안 되는 상황이다.

결국 나는 아빠에게 카카오톡 전화를 걸었다. 

라오스에 온 후 애용하는 방법인데, 한국에 전화를 걸 일이 생기면 나는 아빠한테 카톡으로 전화하고 아빠는 엄마 전화를 이용해서 그곳에 전화를 걸고 스피커 폰으로 연결해 주시면 우리는 삼자통화 방식으로 대화를 하게 되는 것이다. 


상담원에게 외국에 살아서 문자를 받을 수 없기 때문에 가입이 안 되는데,  교육은 꼭 받아야 하니 다른 방법이 없느냐고 물었더니, "없다"라고 단호히 말한다.

그래서 "그럼, 핸드폰이 없는 사람이나 외국인, 미성년자가 자기 명의의 유심이 없으면 가입 자체가 안 되는 것인가요?"라고 물었다. 

한국에서 살면 이러한 상황들이 너무나 당연하고 물 흐르듯 흘러, 이런 생각을 해보지 못할 것이다. 

그런데 외국에 살며 문자를 받을 수 없는 상황이 되고 보니, 한국에서

 "자기 명의의 핸드폰 번호가 없다"는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와 동일어

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내 말을 듣던 상담원은 생각 난 듯, "다른 분의 번호로도 인증은 할 수 있어요"라고 말해준다.

결국 나는 남편 핸드폰 번호로 인증을 받아 교육을 잘 마칠 수 있었다. 


주말이라 안부를 물을 겸 아빠한테 전화했을 때, 아빠는 한참을 있다가 받으시더니

받자마자 "왜?" 하신다.

나는 "그냥, 잘 계시나.. 해서" 했더니 

"니가 전화하면 나는 머리가 아프다" 하신다.

나는 장난기 발동하여 "아빠, 진짜 오늘 이야기는 복잡해. 종이하고 연필 준비하셔야 해" 했더니

부시럭 부시럭 진짜 종이와 연필 준비하시는 것이 아닌가.

이윽고 듣고 있던 남편이 "안녕하세요" 했더니, 

아빠의 목소리 급변 친절 모드 "그래. 잘 있나? 몸은 괜찮고?~~~"

결국 나는 "아빠, 쫌 너무 심한 거 아니야? 딸 전화는 왜?! 하고 받으시더니, 사위한테는 느므 친절해"라고 한 마디 안 할 수 없었다.


이 날의 전화를 끊고 남편은 "이렇게 딸 전화 멀리하시는 아빠는 처음 본다" 한다.

내가 아빠 찬스를 너무 많이 썼나? 

우리 아빠는 어렸을 때부터 내가 뭐 해달라고 하시면 정말 잘해주셨다. 

최근에 한국 들어가서 코로나 검사받으러 갈 때도 마흔 넘은 딸 보건소 가는 길 잃을까 걱정되시는지 보건소도 따라와 주셨다. 

나는 아직도 친정 가면 딸 모드로 변신하는 순간이 너무 좋다. 

어쨌든, 잘해 주신다고 아빠 찬스 너무 남용했나?... 미안함이 스믈스믈




삼. 

요즘 운동 좀 한다고 어깨가 태평양... 까지는 아니어도 넓어지고 있는 우리 아들.

식사에 고기가 한 번이라도 빠질라 치면 "우리 요즘 너무 야채만 먹는 거 아니에요?" 한다.

그래서 "여기 잡채에도 고기 들어갔고, 카레에도 들어가 있잖아?" 하면 

"이런 건 고기로 안 쳐요"해서 고기가 눈에 보이게 크게 해 줘야 하는 녀석.

나한테 뭐 해주는 건 없어도 보고 있기만 해도 나를 배부르게 하는 녀석.


이 세 명이 내 인생의 세 남자이다.





최근 아빠가 메신저 피싱을 당하셨다.

내가 카톡으로, 핸드폰의 액정이 깨져서 화면을 볼 수 없는데, 보험금을 받아야 하니 아빠가 대신해주면 좋겠다고 했단다. 무슨 앱을 다운로드하여서 그대로 해야 하는데 그 과정이 진행되는 동안 화면을 터치하면 다시 처음부터 해야 하니 절대 화면을 만지지 말라고 했단다.

아빠는 철떡 같이 믿고 하라는 대로 하셨고, 그 과정이 무려 4시간 동안 진행되었는데 그 사이 그 놈들은 핸드폰 소액결제와 통장을 통해 100만 원 정도를 빼갔다고 하셨다.


아빠는 내가 이것저것 부탁하는 일이 워낙 많아 

또 그러려니 하고 추호도 의심은 하지 않으셨고

4시간 동안이나 핸드폰을 못 쓰니 짜증이 나서 엄마 통해 나한테 연락하셨는데 

그때서야 메신저 피싱을 통한 전기통신 금융사기임을 알게 되신 것이다. 


어르신들 속여 쉽게 돈 벌려고 하는 자들 벌 받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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