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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TheChoiceIsMine Mar 13. 2023

[감사하는 삶] 이사를 갈 수가 없다.

작은 마당이 있는 우리 집은 

집주인이 정원 가꾸는데 진심이어서인지, 

아니면 나를 딱 보는 순간 무심하여 식물 따위는 잘 돌보지 않을 사람이라는 느낌적인 느낌이 있었는지... 

먼저 요청하지 않았는데도 정원사 아저씨를 정기적으로 보내주어 마당을 관리하게 해 주셨다.


오늘이 바로 그 정원사 아저씨가 오는 날이었다.

다른 날보다 정원 관리 시간이 길어진다.. 생각하고 있는데

아저씨가 나를 막 부르신다.

우리 집 망고나무에서 망고를 그득 따서 나보고 집으로 들고 가라고 하신다.

나는 감사한 마음에 아저씨도 좀 가져가세요~했더니

내거는 이미 챙겼어요

하며 가리키시는 아저씨의 배낭이 볼록하다.


나는 참 기분이 좋아

한국에 계시는 엄마, 아빠, 시어머니, 시아버님께 마구 사진을 투척하며 자랑을 하고 있었는데

사진을 보고 이 사실을 알게 된 남편이

아니, 내 즐거움을...;;;

한다.


그렇다!

생각해 보니, 정원사 아저씨가 남편의 즐거움을 가로챈 것이다.


집 마당 나무에 새록새록 달린 초록색 대추 같은 것이 망고라는 것을 알게 된 순간부터 우리의 작은 즐거움은 시작되었다.

망고의 생태에 대하여 공부하고

초록색이 점점 노란색으로 변하고, 대추 크기에서 성인 남자의 주먹만 한 크기의 망고가 대롱대롱 달리다 못해

지 무게에 못 이겨 툭 떨어지는 날이면,

이게 웬 횡재냐 하며 온 식구가 나누어 먹는데 그 맛이 시장에서 억지로 숙성시켜 나온 망고의 맛과 비교할 수가 없다.

라오스의 날씨가 더워지기 시작하면서 망고는 더 잘 익고

이틀 전 아침에 일어나서 7개의 떨어진 망고를 주워왔을 때는 정말 유레카를 외쳤다.


하지만

떨어지는 망고들은 가끔 과숙성되기도 하고

무엇보다 떨어지면서 충격에 터지게 되어 우리보다 개미들이 먼저 시식하고 있는 경우가 다반사여서 

떨어지기 전에 망고를 따보기로 결정을 한다.

하지만 뻔이 보이는 망고가 막상 따려고 하면 얼마나 높이 있는지, 사다리를 이용하고 위험을 감수하며 나무에 올라가 보기도 했지만 여전히 저 먼 곳에 있다.


그래서 우리의 <망고 따기 프로젝트>가 시작되었다.

1단계: 문헌 고찰. 과연 망고는 어떻게 딸 수 있는지 인터넷 자료와 유튜브를 검색해 보았다.

2단계: 실태 조사. 집에 망고나무가 있는 라오스 현지인들은 어떻게 따는지 물어보았다. 보통 알리바바에서 망고 따는 도구를 주문, 구매하여 사용하고 있었다.

3단계: 연구, 실험과 시행착오

우리는 기성품을 구매하지 않고 직접 개발{?) 해보기로 하였고, 여러 번의 시행착오를 거치게 된다.

망고 따는 도구 DIY

1차 시도: 2리터짜리 플라스틱 우유통의 옆 부분을 크게 잘라 주워온 2미터 정도의 긴 나무 막대기에 연결하였다. 하지만 잘라진 면적이 너무 커서 망고가 그 사이로 쏙 들어오지 않아 실패다.

2차 시도: 동일한 우유통의 구멍을 조금 더 작게 내고 윗부분을 톱니모양으로 잘라 망고가 잘 걸리게 한다.

3차 시도: 마침 간장을 다 사용한 날. 간장통이 더 튼튼하며 망고가 쏙 들어올 모양이라는 판단하에 간장통에 망고보다 조금 큰 구멍을 내고, 윗부분을 톱니 모양으로 자른다. 기존 긴 나무 막대기에 튼튼하게 연결한다.

4단계: 결과. 바로, 오늘이 그날이었다. 3차 실험 결과를 시험해 보는 D-day.

부분 부분 노랗게 익어가는 망고들을 보며 남편은 미소를 지으며 출근하였는데, 그 사이 남편이 개발한 도구로 정원사 아저씨가 휘리릭 따버린 것이다.


오늘의 사태를 경험하며

다음에 정원사 아저씨에게 이야기하려고 한다.

오늘 망고를 많이 따주셔서 감사해요.
그리고 센스 있게 본인 것을 미리 챙겨두셨어요^^
하지만 다음부터는 우리가 따는 기쁨을 온전히 누릴 수 있게 해 주세요.

이 집 렌트비 6개월치를 선불로 지불한지 얼마 되지 않은 것이 우리가 이사를 갈 수 없는 표면적인 이유지만,

다른 여러 불편한 점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망고가 익어가고

그것을 따고 먹고 하는 작고 소소하지만 소중한 즐거움이

우리를 계속 이 집에서 살게 하는 결정적인 이유 중 하나일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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