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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핍 없는 아이

어떤 선물을 받고 싶니?

by 정미숙

12월엔 아이의 생일, 크리스마스가 있다.

아이에게 물어 본다.

“생일날 어떤 선물을 받고 싶니?”

“음... 어떤 걸로 받지.”

아이가 생각해 보고 며칠 있다가 이야기해주기로 했다.


며칠 뒤 아이에다시 물어본다.

“생일날 어떤 선물을 받고 싶니?”

“아, 너무 어렵다. 엄마는 어떤 걸 받고 싶어?”

“엄마는 받고 싶은 것 많지. 내가 좋아하는 걸로 받으면 되니깐. 책, 문구, 립스틱, 귀걸이.”

아이는 엄마의 대답을 듣고도 생각나지 않는 듯 하다.


“엄마, 나 어떤 걸 선택해야 할지 모르겠어.”

선물을 선택하지 못한다는 점이 이해되지 않았다.

“네가 좋아하는 걸로 말하면 되지 않을까.”

“있잖아. 책은 엄마가 서점 가면 2권씩 사주지, 문구는 용돈(월 2만 원)에서 필요한 걸 사면되지. 옷, 가방, 지갑 말하면 다 사주지. 선물 고르기 너무 어렵다.”


순간 머리를 한 대 얻어맞는 기분이다. 너무 많은 것을 아이에게 해주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이에게는 결핍이 없었다. 모든 것을 갖고 있으니 생일이라도 특별히 받고 싶은 것이 없었던 거다. 어린 시절을 떠올려본다. 1년에 딱 한번 받는 선물이라 손꼽아 기다리고 기다렸던 기억이 아이에게는 없다. 말만 하면 쉽게 살 수 있는 환경이었다. 이것이 우리 집만의 이야기일까.




같은 아파트 동갑내기 엄마와 이야기를 나눴다.

“곧 있으면 우리 아이 생일이라서 생일 선물을 말하라고 했더니 뭐라는 줄 알아?”

“뭘 사달래요?”

“선물을 못 고르더라. 너무 충격받았어. 자기네는 어때?”

“언니 우리도 마찬가지에요. 웬만한 건 다 사주니깐 선물을 말하라고 해도 말을 못 해서 옷 사주면서 이건 생일선물이야 했어요. 그래서 요즘 부모들의 고민이 결핍을 어떻게 하면 줄까 라네요.”


이런 세상에 우리 아이들이 살고 있다. 결핍이 없다 보니 딱히 열정이 없다. 모든 것이 존재하는 세상 속에 사는 보통의 아이들은 결핍 있는 아이들의 간절함을 모른다. 좋은 나라에 태어난 행운의 아이들은 그것이 행운이라 느끼지 못한다.



아이가 드디어 생일 선물을 결정했다. 바로 자이언트 얀 1kg 뜨개실이다. 지난번에 피아노 공연 후 받았던 선물이다. 가방 3개를 만들어서 아이가 하나를 갖고 하나는 나에게 선물했다. 마지막 하나는 친구에게 선물했다. 그때의 기억이 떠올랐나보다. 이번엔 방석을 만들어 친구들에게 선물하겠단다. 어릴 적 내가 갖고 싶었던 선물을 받는 기쁨이 컸다면 아이는 자신이 만들어 친구들에게 선물하는 기쁨을 더 좋아한다. 만드는 기쁨과 주는 기쁨을 동시에 느끼는 거다. 이 정도면 잘 자라고 있는 것이 아닐까.


결핍 없는 아이를 있는 그대로 바라보는 것도 나쁘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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