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최악의 크리스마스

아빠 엄마의 부재

by 정미숙

아이들은 5월과 12월을 좋아한다. 1년 동안 착한 일을 하지 않은 아이도 12월이면 자신이 도울 일이 없는지 엄마 아빠 주위를 기웃거린다. 겨울이도 다른 아이들과 별반 차이가 없다. 산타할아버지가 어떤 선물을 주실까. 아이는 몇 해 전 받고 싶은 선물을 말하는 걸 깜빡했다. 마음이 급했던 아이는 하늘에 대고 쩌렁쩌렁 소리쳤다.

“산타할아버지, 무드등이 망가졌어요. 저와 동갑인 무드등을 꼭 받고 싶습니다.”

아이의 외침에 산타할아버지는 바빠지셨다. 똑같은 무드등을 찾아보았지만 벌써 10년 가까이 된 제품이라 쉽게 찾을 수 없었다. 대신 요즘 유행하는 무드등을 주기로 결정했다. 다양한 필름이 들어있어 매일 밤 다른 장소로 여행을 떠나는 무드등이다.


아이는 크리스마스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선물을 찾느라 바빴다. 드디어 선물을 발견했다. 기쁨에 찬 아이의 발소리가 점점 크게 들린다.

“엄마, 산타할아버지가 무드등을 선물하셨어요. 함께 켜봐요.”

아이의 손이 빨라졌다. 암막커튼을 치고 주변을 어둡게 만들자, 무드등은 방안 가득 별들로 가득 찼다. 별나라에 온 듯 아이가 행복한 미소를 짓는다. 다른 필름도 끼워보았다. 이번엔 꽃밭이다. 아이는 무드등 필름을 바꿔 끼우며 바다, 우주, 들로 자유롭게 여행을 떠나고 있었다. 이처럼 부모는 아이의 순수함을 지키기 위해 매년 노력했다.




2022년 크리스마스 날 아침. 휴대폰 메시지가 계속 들어온다. 누구지? 무슨 일일까. 화면을 터치하자 아이에게서 여러 통의 메시지가 들어와 있었다. 없다. 없어. 진짜 없다. 아. 어떻게 이럴 수가. 없다. 최악의 크리스마스다. 문자를 본 남편은 한숨을 길게 내쉰다. 아이의 속상한 마음이 온전히 느껴졌다. 얼마나 속상할까. 매년 크리스마스날은 온 가족이 모여 파티를 열었다. 맛있는 음식과 함께 영화를 한편 골라 관람했다. 이번엔 혼자다. 할머니, 할아버지와 보드게임도 하고 TV시청도 했다. 문득 엄마 아빠가 보고 싶어지면 늦은 밤 전화를 걸었다. 남편은 아이와 함께 있어주지 못하는 지금 이 상황이 야속하다.


수화기 너머 아이가 말을 건넨다.

“엄마 산타할아버지는 어떻게 생기셨을까?”

“글세. TV에서 본모습처럼 생기시지 않았을까.”

“산타할아버지는 배가 많이 나오셨어. 또 고기를 아주 많이 좋아할 것 같아. 아주 귀엽게 생기셨을 것 같아.”

아이의 말을 듣고 보니 남편이 떠올랐다. 아이도 누군가가 떠올랐는지 수화기 너머 웃는 소리가 들린다. 산타할아버지가 누군지 알게 된 순간이다.


크리스마스 프로젝트는 매년 성공했었다. 이번은 다르다. 크리스마스를 며칠 앞둔 12월 22일 밤 갑자기 남편은 사고가 났고, 수술을 해야 했다. 남편간호를 하는 동안 병원 밖으로 나갈 수 없다. 코로나가 갑자기 심해져 확진자가 늘었다. 방법을 찾기 위해 뇌는 바삐 움직였다. 집에 혼자 있을 아이가 걱정이 된다. 이럴 때 부탁할 만한 곳은 친정밖에 없다.

“엄마, 미안해. 남편이 사고가 났어. 내일 수술인데 오실 수 있으세요?”

“내일 아침 바로 올라갈게.”

엄마는 많은 것을 묻지 않았다. 그저 바로 올라온다는 말과 함께 머리 안 다쳤으면 됐다. 다 잘 될 거라는 말만 하셨다. 아이는 걱정하지 말라고 하셨다. 부모는 언제든 든든한 나무처럼 같은 자리에 서있으면 된다. 아이는 힘들 때 부모에게 와 쉬면 된다. 쉴 수 있는 부모가 있다는 건 축복이다.



엄마와 아빠의 부재로 아이의 일상이 완전히 바뀌었다. 모든 것을 챙겨주던 엄마가 사라졌다. 방학 전인 아이는 학교에 가기 위해 스스로 알람을 맞추고 잠자리에 든다. 평소 아침잠이 많은 아이가 걱정스러운 엄마의 마음과 달리 아이는 알람이 울리면 혼자 일어나 학교 갈 준비를 했다. 80세 할머니, 할아버지를 위해 아침밥을 짓는다. 인덕션, 압력솥을 사용하지 못하시는 할머니를 위해 차근차근 설명해 드린다. 익숙지 않은 현대문물에 당황스럽다. 그것도 잠시 엄마는 금방 사용법을 익히셨고 아이를 위한 음식을 뚝딱 준비하셨다. 아이가 배달음식을 먹고 싶어 하면 배민으로 주문해 주었다. 밥은 아이 담당. 할머니는 요리담당, 할아버지는 청소 담당이다. 이렇게 각자의 역할을 나눠 맡으며 일주일을 멋지게 해냈다. 남편과 나도 잘 회복되기 위해 잘 챙겨 먹고 푹 쉬며 운동했다. 병원에 더 있어야 했지만 남편의 부재로 회사도 엉망진창이다. 울며 겨자 먹기로 퇴원했다. 앞으로 남편의 출/퇴근은 온전히 나의 몫이 되었다.


부모의 부재로 아이는 스스로 문제를 해결해 나간다. 일주일의 경험은 아이를 한 뼘 더 자라게 했다. 자리가 사람을 만든다는 말처럼 닥치면 무엇이든 해결할 힘을 우리는 모두 갖고 있다. 어린아이도 이와 같이 잘 해낸 걸 보면 말이다.

이제 아이 스스로 성장하도록 내려놓는 연습을 할 시기가 다가왔음을 실감한다.

산타할아버지의 존재는 사라졌지만 아이는 부모의 사랑에 감사하며 자신의 삶을 주도적으로 살아가려 한다.


사진출처. pixabay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결핍 없는 아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