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년에 한 번씩 이사를 하던 우리는 이곳에 이사를 오면서 6년째 살고 있다. 초중고가 걸어서 가능하다. 초등학교는 아파트와 벽 하나로 붙어있다. 아파트 뒤에는 낮은 산이 있어 가볍게 걷기 좋다. 이사 올 당시 근처에 복합문화센터가 설립된다는 이야기가 있었다. 언제쯤 공사가 시작될까 기다리다 몇 해 전 공사가 시작되었다. 하지만 점점 개관이 늦어졌다. 그렇게 1년이라는 시간이 지난 후 11월 말에 임시 오픈을 했다. 동네 주민들은 도서관, 수영장, 프로그램실이 궁금해 복합문화센터로 찾는 이들이 많았다. 다양한 사람들이 이용할 수 있도록 최첨단 시스템과 안락함을 제공하는 가구들과 조명 덕분에 도서관에 오래 머물고 싶어 진다.
사람들에게는 바람이 있었다. 늦은 시간까지 운영되어 많은 사람들이 이용하길 소망했다. 간절하면 이루어진다더니 도서관은 평일 10시 주말 6시까지 운행이 되었다. 주말도 9시까지 하기를 원했지만, 인력충원이 쉽지 않아 보인다. 동네 사람들은 좋은 환경 속에서 아이들이 책을 통해 성장할 생각에 가슴이 따뜻해진다. 갑자기 추워진 날씨에 어디든 가고 싶지만 갈 수 없었던 가족들은 아이들의 손을 잡고 도서관에 간다.
아직 책이 많지는 않지만 아이들은 고사리 같은 손으로 책을 펼치고, 눈을 반짝이며 마음에 드는 책을 고른다. 요즘에 지어지는 도서관들은 책상, 의자, 화장실의 손잡이가 모두 아이들의 눈높이에 맞춰 낮게 설치되어 있다. 작은 배려는 아이들을 바르게 자라게 한다. 이렇게 멋진 공간이 생겼다는 사실에 어른도 아이도 매일매일이 행복하다.
나에게는 작은 꿈이 있었다.
걸어서 갈 수 있는 도서관과 수영장이 있는 곳에서 살고 싶었다.
지금 살고 있는 곳은 경기도 외곽지역이다. 신도시가 조성된 지 20년 가까이 되다 보니 도서관, 수영장이 많이 불편하다. 그래도 차를 타고 10분만 가면 어린이 도서관과 종합 도서관이 있어서 감사해하며 지냈다. 다만, 앉아서 읽을 만한 공간이 부족해 아쉬웠다. 이 모든 것을 보완한 도서관과 수영장이 생겼다. 어디든 앉아서 읽을 공간이 많다. 아이부터 노인까지 모두가 편안하게 자기만의 세계 속으로 빠져들 수 있는 곳이다.
어느덧 시간을 흘렀고, 아름답고 안락하고 편안한 도서관이 개관했다.
정식 개관은 지난주에 했지만, 많은 사람들이 임시개관 후 매일 찾아온다. 1층은 어린이 도서인 그림책과 동화책이 있다. 아이들은 책 놀이터에 놀러 온 듯 편안한 장소를 찾아 책 속 여행을 떠난다.
2층은 어른들과 중고등학생들이 공부도 하고 책을 읽는 공간인 종합자료실이다. 룸도 3개나 있어 학생들이 삼삼오오 친구들과 함께 프로젝트를 하면서 공부를 하는 모습이 아름답다.
주말 오전 책가방에 노트북, 책 2권을 챙겨서 도서관에 갔다. 벌써 많은 사람들이 자리를 잡았지만 내가 좋아하는 좌석은 비어있다. 책가방을 내려놓고 책을 펼치며 나만의 시간을 갖는다. 얼마나 지났을까? 어깨와 허리가 아프다. 고개를 들어 주변을 살펴보니 많은 학생들이 공부를 하고 있었다. 아직 기말고사가 끝나지 않은 중고등학생들이 문제를 풀면서 집중하고 있었다.
모두 각자의 목표를 향해 집중하는 모습에 기지개를 하고 다시 책을 읽었다. 점심때가 되자 자리를 비우고 나가는 이들이 하나둘 보인다. 다시 돌아온 학생들은 식사 후 졸음을 이기지 못하고 꾸벅꾸벅 졸고 있다. 가서 어깨를 쳐주고 싶지만 오지랖이라며 야단치던 딸의 얼굴이 떠올라 미소 한번 지어 보이며 다시 책으로 눈길을 돌렸다. 이후 학생들은 자신과 타협을 한 듯 엎드려 잠을 잔다.
시험이 얼마 남지 않은 상황이라 공부는 해야겠고 잠은 쏟아지는 그들의 마음을 알기에 마음이 짠하다. 그렇게 30분을 자던 학생 두 명은 다시 정신을 차리고 문제를 풀고 채점하고를 반복한다. 현재의 삶에 최선을 다하려 애쓰는 학생들을 보며 '분명 너희는 자신의 몫을 충분히 해내며 사회의 일원이 될 거야.'라고 외쳐본다.
머리가 하얀 노부부가 1인 의자에 앉아서 한강의 책을 읽고 있다. 518 사태를 살아낸 분들이 읽어 내려가는 마음은 어떠할까. 도서관에는 다양한 사람들이 찾는다. 연령대도 다양하다. 그들을 관찰하는 것만으로 도서관에 있는 시간이 즐겁다. 3살쯤 되어 보이는 아이가 엄마의 손을 잡아당긴다. 엄마와 함께 책장 앞에 서더니 그림책 하나를 꺼낸다. 다름 아닌 <구름빵>이다. 엄마는 아이와 눈높이를 맞추며 말을 건넨다. "엄마랑 읽었던 구름빵이네." 아이가 맞다며 책을 들고 해맑은 미소를 보이며 책을 펼친다.
이런 모습을 어디서 볼 수 있을까. 도서관에서만 볼 수 있는 귀한 모습에 넋을 놓고 한참을 보았다. 도서관이라는 공간은 마음을 따뜻하고 맑게 해 준다. 이런 공간을 걸어서 갈 수 있다니 꿈만 같다. 특히 책을 좋아하는 모녀에게는 더할 나위 없이 좋다.
"딸, 내일은 뭐 할 거야?"
"도서관 갈 건데요."
"엄마도."
How Many a man has dated a new era in his life from the reading of a book? (얼마나 많은 사람이 책을 읽고 인생의 새로운 시대를 맞이했을까요?) - Henry David Thoreau - (헨리 데이비드 소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