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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미숙 Jan 23. 2023

두 분만을 위한 낭독회

덕분에 잘 자랐습니다

책 출간 후 처음으로 친정에 방문하던 날. 부모님은 환한 미소로 우리를 반겼다. 언제나처럼 밥은 먹었냐는 말과 함께 엄마의 손은 바쁘게 움직였다. 엄마의 밥상을 보자 반가움에 저절로 미소 지어졌다.

“잘 먹겠습니다.” 큰소리로 외쳐본다. 엄마가 웃는다. 나도 웃는다. 엄마의 밥상은 모두를 웃게 만드는 마법이다. 식사를 마치고 엄마는 딸의 책을 갖고 오셨다.

“어떻게 책을 낼 생각을 했니? 책을 읽고 싶은데 글씨가 작아 많이 읽지 못했어.”

책을 펼쳐보니 50페이지까지 읽으셨다. 잘 보이지 않는 눈으로 어떻게든 딸의 책을 읽으려고 했을 엄마생각에 마음이 짠했다.

“괜찮아요, 엄마. 제가 읽어 들릴게요. 다음에 올 때는 녹음도 해드릴게요.”

“친정엄마를 이해하게 되다. 어릴 적 나는 엄마가 앉아서 쉬는 모습을 본 기억이 없다......(중략)..... 엄마의 밥상은 잊지 못할 사랑이다.”

엄마의 이야기를 읽으며 엄마를 본다. 엄마는 소리 없이 눈물만 흘리며 자신의 이야기를 듣고 있었다. 자신이 살아온 삶과 딸이 쓴 글이 만나는 시간이라 더욱 소중하고 감사하다. 아무도 엄마의 시간을 깨고 싶지 않은 듯 숨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낭독이 끝나자 엄마가 나를 꼭 안아주셨다. 엄마의 품은 어느 때보다 더 따뜻한 온기가 느껴졌다.

“고맙다, 고맙다, 고맙다. 잘했다, 잘했다, 잘했다.”



아빠의 이야기를 낭독했다. 아빠는 6남매의 장남으로써 그 자리를 지키는 것이 당연했다. 힘든 순간에 부딪힐 때마다 더 강한 척하며 평생을 사셨다. 아빠가 얼마나 애쓰며 하루하루를 사셨을지 안다. 누구와도 상의할 수 없었던 그때 그 시절. 아빠를 힘껏 안아 드렸다. 아빠의 얼굴에도 촉촉한 액체가 흘러내린다. 한참 뒤 침묵을 깨고 아빠는 자신의 이야기를 시작하셨다. 80년 동안 살아온 삶에 관한 이야기. 이야기 내내 눈물을 보이기도 하시고 행복해 목소리를 높이시기도 하셨다. 아빠의 이야기는 새벽 3시가 되어서야 끝이 났다.




온 가족이 모여 함께 웃고 울고, 맛있는 것을 먹는 이 시간이 훗날 얼마나 소중한 추억이 될지 안다. 앞으로 부모님과 함께 하는 시간 동안 다른 효도를 하려고 한다. 다름 아닌 '부모님의 이야기를 들려 주세요'다. 부모님의 이야기 속에는 내가 알지 못하는 조부모님의 이야기를 알 수 있고, 내가 살지 않았던 그 시대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다. 이 세상에 하나밖에 없는 소중한 아이가 자신의 역사를 안다는 것은 중요하다. 뿌리를 알기 위해 나라의 역사를 공부하듯이 자신을 제대로 알기 위해 우리 집의 역사를 듣는다. 아이는 할머니, 할아버지의 이야기를 통해 자신의 뿌리를 보다 더 정확히 알게 된다. 자신을 보다 객관적으로 보게 된다.

가족들의 장점과 단점을 보면서 어떤 것들이 대물림되었는지 알게 된다. 자신의 어떤 것을 수정 보완해야 하는지 깨닫게 된다. 한 발짝 물러나 객관적으로 자신을 볼 수 있는 눈을 가졌다는 것은 강점이 된다.


효도란 무엇일까? 용돈을 많이 드리고, 넓은 집에 사실 수 있도록 해드리는 것일까. 그것도 중요하다. 내가 생각하는 효도는 그들의 삶을 온전히 이해하는 거다. 80년의 인생을 자식이 인정해 주고 들어주는 거다. 오늘은 용기 내서 부모님께 이 말을 전해 본다.



힘든 순간이 닥칠 때마다 포기하지 않고 살아주셔서 감사합니다. 부모님이 힘을 내셨기에 저는 잘 자랄 수 있었습니다. 부모의 그늘 아래에서 걱정 없이 살게 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두 분의 딸로 태어나 많이 행복했습니다.
사랑합니다.





사진 출처.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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