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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미숙 Mar 02. 2023

갈매기 밥 주는 남자

행동 이면엔 사연이 있다

주말 아침. 창문을 연다. 어디라도 가야 할 것 같은 날씨다. 아이에게 물어본다.

“어디 갈까?”

아이가 생각 중이다. 지나가던 남편이 해맑은 표정으로 다가온다.

“갈매기 밥 주러 갈까?”

아이가 눈살을 찌푸린다.

“아빠, 갈매기는 물고기를 먹고살아야 하는 데 사람들이 자꾸만 새우깡을 줘서 많이 아프대요. 새우깡을 주는 건 생태계를 파괴하는 거예요.”

우리는 딸의 말에 두 눈이 커졌다. 언제 이렇게 큰 걸까. 확실히 초등학교에 입학 후 아이는 빠르게 성장하고 있었다.

“맞아요. 우리 생태계 파괴는 하지 말죠.”

남편은 고개를 끄덕였지만 내심 아쉬워 보인다.


 올해 2월 중순 지인가족과 캠핑을 다녀오다가 행담도 휴게소에 잠시 들렀다. 남편은 해맑은 웃음을 지으며 손을 흔들고 있었다. 다른 한 손에는 새우깡 두 봉지가 있다. 철없는 남편을 누가 말릴까. 아이들은 덕분에 신나 하며 갈매기 먹이 주는 장소로 뛰어갔다. 갈매기 먹이 주는 장소에는 갈매기가 없었다. 날이 추워서 없는 걸까. 이런 생각도 잠시, 어디서 날아온 건지 알 수 없지만 많은 갈매기가 순식간에 나타났다. 분명 없었는데 갈매기들은 어떻게 알고 온 걸까.


갈매기와 대화하는 남편


아이들과 남편은 새우깡을 던져 주기 시작했다. 근데 갈매기들이 날지 않는다. 난간에 한 줄로 서서 던지는 새우깡을 받아먹고 있다. 이게 어떻게 된 일일까. 남편은 보란 듯이 갈매기들을 새우깡으로 조련을 하고 있다. 마치 갈매기와 대화를 나누고 있다는 착각을 일으킬 정도다. 아이들은 이 광경이 신기하다.


이번엔 남편이 새우깡을 엄지손가락과 검지손가락으로 들고 있자, 순식간에 날아온 한 녀석이 새우깡을 낚아채 간다. 그 모습을 보며 입을 다물지 못하는 아이들. 박수를 치며 좋아한다. 남편은 만족스러운 눈빛이다. 초등 고학년 녀석들도 용기를 내 갈매기에게 새우깡을 준다. 많은 갈매기들의 공격으로 서로 안으며 소리만 지른다. 가장 어린 초등학교 2학년 아이는 점프까지 하면 용감하게 새우깡을 던진다. 이보다 더 열정적일 수는 없다.


용감하게 점프하는 초2


이번엔 아이들이 새우깡을 들고 뛰어간다. 갈매기도 따라간다. 피리 부는 사나이처럼 아이들을 따라가는 갈매기. 신기하면서도 짠한 마음이다. 물고기, 해조류를 먹어야 하는 갈매기들이 화학조미료가 들어있는 새우깡을 먹는다. 갈매기들은 새우향이 나는 과자를 진짜 새우로 착각하고 먹는다. 잘못된 것을 알면서도 새우깡을 파는 편의점, 새우깡을 사서 갈매기에게 던져주는 사람들. 누구의 잘못일까.




남편은 인천에서 태어났다. 가족과 함께 월미도에 자주 갔다. 그때마다 형은  항상 새우깡을 샀다. 200원에 배를 타며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새우깡을 던지며 행복했던 순간이다. 온 가족이 함께 월미도에 갔던 기억은 갈매기를 볼 때면 떠오른다. 처음엔 무서웠고 어느 순간 자신을 따라오는 갈매기들이 친구 같아서 좋았다고 한다. 남편에게 갈매기는 가족이 함께 웃었던 소중한 시간을 떠올릴 수 있는 매개체다.


지금은 4명의 가족 중 2명아있다. 9년 전 사고로 가장 사랑하던 형은 다시 볼 수 없게 되었다. 작년에 아버지도 돌아가셨다. 이제 어머니만 살아계신다. 남편은 갈매기 밥을 주며 잠시나마 동심으로 돌아간다. 내가 바다를 좋아하는 것처럼 남편은 갈매기에게 밥을 주며 행복한 기억을 소환하는 거다.

 

갈매기들을 생각하면 새우깡 주는 것을 멈추는 것이 맞다. 남편의 마음을 생각하면 그냥 두는 게 맞다. 나는 어떤 선택도 할 수 없다. 누군가에게는 소중한 추억을 떠올릴 수 있는 유일한 존재이기에. 이번 주말도 우린 갈매기 밥 주러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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