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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미숙 Mar 16. 2023

이제는 말할 수 있다

같은 시간, 다른 생각

 출산 5일 전. 배에 통증이 예사롭지 않다. 병원에 전화를 했다. 출산 준비 후 바로 병원으로 오라고 했다. 나름 침착하게 목욕을 하고 출산가방을 들고 병원에 갔다. 병원에 도착하니 통증이 점점 더 심해졌다. 접수를 하고 출산을 하기 위해 침대에 누웠다. 간호사가 다가와 내진을 한다. 자궁문이 얼마나 벌어졌는지를 확인하는 과정이다. 아직은 조금밖에 열리지 않은 상태. 그렇게 얼마나 지났을까.


 따뜻한 무언가가 흘러내리는 느낌이다. 양수가 터졌다. 간호사들이 분주히 움직이기 시작했다. 자궁문이 10센티가 열렸다. 빠른 속도로 진행되자, 다른 방으로 옮겨졌다. 옮겨진 방에서 나는 미친 듯이 괴성을 질렀다. 배가 찢어질 듯한 진통과 죽을 것 같은 고통을 참을 수 없었다. 그리곤 언제 그랬냐는 듯 평온 상태가 된다. 다시 또 찾아온 진통은 쓰나미처럼 몰아쳤다 잠잠했다를 반복했다. 이 과정을 얼마나 했을까. 이제 곧 죽겠다는 생각과 함께 의사 선생님의 또랑또랑한 목소리가 들린다.


“산모님, 이제 아이가 내려올 겁니다. 호흡하세요. 대변 힘주는 것처럼 배에 힘을 줘 볼게요.”

얼마나 힘을 줬는지 모르겠다. 엄마의 잘못된 호흡법에 아이가 힘들어질까 두렵고 무서웠다. 의사 선생님의 말에 귀를 기울이며 힘을 주라면 주고, 힘을 빼라면 뺐다. 여러 번의 호흡을 반복 후 의사 선생님의 격앙된 목소리가 들렸다.


“산모님, 마지막으로 호흡 제대로 하면 아이가 나옵니다. 자, 힘주세요. 네네 아이가 나오고 있습니다. 여기서  힘 빼시면 안 됩니다. 네네 거의 다 나왔습니다. 잘하셨습니다.”

잠시 후, 아이의 울음소리가 방안 가득 울려 퍼졌다. 폭풍이 지나간 자리는 편안했다. 의사 선생님은 가까이 다가오며 환하게 웃는다.

“환자분, 괜찮으세요? 아기 손가락, 발가락 10개 확인했습니다. 곧 아이를 씻겨서 데려다 드리겠습니다. 잘하셨습니다.”

 의사 선생님의 손가락, 발가락 10개라는 말에 안도했다.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선물을 품에 안은 순간, 온 세상이 환하게 빛났다. 갓 태어난 아기의 모습은 경이로웠다. 천사가 있다면 이런 모습이 아닐까.




 결혼한 지 13년이 지났다. 저녁식사를 하는 도중 남편이 문득 생각난 출산이야기를 꺼낸다.

“자기 출산할 때 비하인드 스토리 이야기해 줄게. 이제는 말할 수 있다.”

무슨 이야기인지 궁금한 모녀는 눈을 반짝이면 귀를 쫑긋 세웠다.

“애가 나올 때쯤 갑자기 간호사가 밖으로 나오라고 하는 거야. 그러면서 하는 말이 남편들이 아기 나오는 모습 보면 놀라서 충격이 오래 지속된대.”


 남편이 눈을 동그랗게 뜨고 심호흡을 하더니 말을 이어갔다.

“근데 밖으로 나가니 글쎄 뭐라는 줄 알아.”

 알 수 없다는 듯 눈을 동그랗게 뜨고 고개만 저었다.


“보호자분 산모님 식사는 어떤 걸 하실 건가요? 일반식과 특식이 있습니다.”

“티 나나요?”

“네 티 나죠.”

“그럼 특식으로 해주세요.”


“영양제는 일반과 고영양제가 있습니다. 어떤 걸 하실 건가요?”

“티 나나요?”

“아무래도 회복이 다르시겠죠.”

“그럼 고영양제로 해 주세요.”


“병실은 1인실과 2인실이 있습니다. 어떤 걸 하실 건가요?”

“2인실은 어떻게 되어 있나요?”

“커튼으로 나눠져 있습니다.”

“1인실로 해주세요.”

남편은 간호사와의 대화를 목소리까지 바꿔가며 리드미컬하게 설명했다.


“결론은 그 중요한 순간 밖으로 나가서 그걸 묻는 거야. 정말 대박이지?”

산부인과도 출산의 순간에 장사를 한다는 점에 놀랐다고 했다. 당시 했던 말이 오랫동안 기억에 남아 잊히지 않는다며 웃는 남편의 얼굴에 진심이 느껴졌다. 티 나나요?를 묻던 철없던 남편은 제일 좋은 것들로 선택했고 덕분에 순산했다.


잊지 못 한마디, 티 나나요?



사진 출처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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