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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Negative to Positive Jul 16. 2017

퇴사후  #16 그릇 크기만큼 배려할 것

과잉은 사치 자원봉사자 아님


비가 억수로 내린다. 우산을 두고 왔는데 아쉽지가 않다. 싸구려 비닐우산인 것도 그렇지만 이날 비는 왠지 느끼고 싶다. 버스에서 내렸다. 다들 비  한 방울이라도 덜 맞겠다고 몸을 움츠린다. 횡단보도 앞에 섰다. 비에 젖어 든다.  예전엔 ‘비 맞는 게 좋다’고 말하는 사람이 이상하게만 보였다. 그런데 비로소 이 말이 이해된다. 갑자기 머리 위로 우산이 올라 온다. 나보다 20cm는 작아 보이는 키의 아주머니다.




“아니, 왜 이렇게 비를 왜 맞아요.”
“아, 괜찮아요. 오늘따라 비가 맞고 싶네요. 예전엔 이해가 안 갔는데. 하하.”
“오늘 정말 안 좋은 일이 있었나보네.”
“그냥 맞고 싶어서요.”
“맞어. 그럴 때 있지. 바닥 끝까지 비를 맞고 싶을 때. 난 이제 가요. 옆 사람한테 좀 씌워달라고 그래.”
“괜찮아요.”




이날따라 냉랭해진 가슴. 여름밤 뜨뜻한 비를 맞으면 조금 해동이 되지 않나 싶어 집에 도착할 때까지 아깝지 않을 만큼 비를 맞았다.

가슴이 많이 차갑다. 아니 차가워졌다. 젊을 때 심장의 피는 솟구치듯 했는데 요즘은 아니다. 내 글이 ‘차분하다’는 이야기도 들었다. 난 차분한 사람은 아니다. 브런치 글은 보통 가라앉은 기분일 때 쓴다. 그런데 확실한 건 있다. 나는 예전보다 까칠해지고 까다로워지고 차가워졌다. 어렸을 적엔 아무나 보고 친절을 베풀고 친근하게 굴었다. 주변 사람들에게 사랑 받고 싶었던 게 분명하다. 내가 베푼 만큼의 질량의 친절 혹은 그보다 더 큰 친절이 다시 돌아오기를 기대하면서 말이다. 그래서일까. 살면서 실망한 일이 참 많다. 언제부터인가 내 친절이 과잉, 오용, 쓸모없음(useless)이란 생각을 했다. 남에게 친절을 베풀어 스스로 행복해지면 그 행위는 아름답다. 스스로의 인격이 된다면 그릇이 크다면 베푸는 게 답이다. 하지만 무언가를 바라고 베풀면 탈이 난다. 기대가 크면 실망도 크기 때문이다. 실망이란 감정으로 인한 결과도 부정적이다. 상대방을 향해 던지나 말이나 행동 따위에 부정적 감정이 투영된다. 처음 예쁜 마음의 빛깔도 퇴색된다. 그리고 둘 사이 관계는 점차 모호해진다.

주고받는 베품은 시너지로 이어진다. 행복이나 즐거움 따위의 긍정적인 감정을 생산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한쪽으로 치우친 베품은 아니다. 균열이 생기기 쉽다. 한쪽이 ‘자원봉사자’가 아닌 이상 그렇다. 쓸데없이 자원 봉사한 날. 비를 맞고 더러운 기분을 씻어내야 했다. 한동안 더 냉랭해질까봐 벌써부터 무섭다. 내 인격의 그릇은 적다. 자원봉사자도 아니다. 그러므로 앞으로 과잉의 배려는 더욱 철저하게 자제하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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