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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Negative to Positive Jul 17. 2017

퇴사후  #17 불안감 1g 내려놓는 밤

누구라도 불안하다

동생은 국회쪽에서 일한다. 주로 정책자료를 만드는 박사들 연구를 보조한다. 그런데 계약직이라 파리 목숨이다. 이 아이의 미래 역시 나처럼 불안하다고 볼 수 있는 이유다. 그런데 나보다 나은 게 있다. 자신이 가는 길에 대한 확고한 믿음이다. 미국에서 박사학위를 취득하고 교수가 되는 거다. 중국에서의 교수직을 맡는 로드맵을 상세히도 그려 놨다. 그래서 미친 듯 중국어 공부 중이다. 오늘 중국어로 떠드는 걸 들었는데 제법 그럴싸하다. 예전에는 ‘대학원 간다고 취직 되는 줄 아냐’라며 비난만 했다. 요즘에는 확고한 자기 소신과 비전으로 묵묵히 자신의 길을 걷는 동생이 부럽기만 하다. 통장 잔고가 바닥을 쳐도 흔들리지 않는 신념. 곧죽어도 100% 장학금 지원을 통해 미국 박사과정을 마치겠다는 소신. 나로선 생각조차 하기 어려운 일들이다. 계약직의 타이틀에도 불안함이라곤 눈 씻고 찾아볼 수 없는 이 아이. 때로는 존경스럽다.



하지만 많은 이들이 나처럼 불안을 느낀다. 동생이 일하는 곳도 마찬가지다. 이곳 박사들은 보통 7년 단위로 계약을 갱신한다고 한다. 임기가 끝나면 국회의원실 5급 비서관으로 가는 경우가 많단다. 문제는 5급 공무원에 준하는 지위라고 하는데 이것도 임시직이다. 보통 의원 한명당 4급 보좌관 2명, 5급 비서관 2명, 6급, 8급, 9급 인턴 등의 비서를 거느린다. 이렇게 국회의원실 하나하나가 작은 소기업처럼 운영되니 잡음이 많을 수밖에 없다. 해외 대학에서 박사학위까지 받아 날고 기는 이들이지만 국회의원실에선 의원 아래 ‘직원’이 된다. 이야기를 들어보면 국회의원 갑질은 상상 그 이상이라고. 남들은 우러러 보는 박사일 수 있어도 불안감에 시달린다고 한다. 일반 공무원처럼 미래가 보장되는 게 아니라 미래를 걱정하며 끊임없이 달려야 하는 거다.


최근에는 친구를 통해 알게 된 말레이시아에서 온 친구를 만났다. 그녀는 한때 한국에서 ‘콘택트렌즈’를 들여와 홍콩에 파는 작은 무역업을 했다. 그녀에게 사업에 대해 물었다. 손사래를 친다. 사업은 아무나 하는 게 아니더라 하는 표정이다. “그 일은 잊어버려.” 딱 한번의 제스쳐와 한마디 했을뿐인데 공감의 전율이 온몸에 퍼진다. 지금 그녀는 싱가폴에서 HR(Human Resources) 일을 하고 있다. 홍콩에서 만난 친구와 그녀는 밤새 항상 무엇을 먹고 살까 이야기를 하며 친해졌다. 이들은 그때의 이야기에 몰두하기 시작한다.




 불안감이란 데스밸리를 힘겹게 나고 있는 나. 사람들과 만나고 이야기하며 조금 누그러진다. ‘누구나 불안하다’며 남모를 동지애를 느낀다. 불안감 1g을 내려놓는 밤.


누구라도 불안함에서 100% 자유롭지 않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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