먼지에서 문장으로
나는 아주 긴 시간, 집 안에 고립되어 살았다.
우주에서 바라본 지구는 한 점의 푸른 입자에 불과하다.
그러나 그 작은 원 안에서 우리는 태어나고 숨 쉬며 서로를 잃고, 또 찾는다.
나에게 집은 그러했다.
눈을 감으면 작은 주방과 어지러진 장난감들이 겹겹의 기억으로 부풀어 올라, 그것이 곧 하나의 세계였다.
나는 그 안에서 사람을 먹이고, 키우고, 살렸다.
좁은 공간에서 이어진 매일의 일들은 어느새 내 삶의 4분의 1을 차지했다.
그 시간 동안 후회는 없었다. 마음은 한 번도 기울지 않았다.
이 일이 가진 무게와 깊이를, 나는 누구보다 속속들이 알고 있었다.
그러나 내 인생은 누군가의 말 한마디로도 쉽게 지워졌다.
아이들을 돌보며 살아온 4분의 1은 “집에서 뭐 했길래”라는 말로 사라졌고,
공부와 취업, 승진을 위해 달려온 나머지 4분의 3조차 ‘경력단절’이라는 말로 지워진 지 오래였다.
나 아닌 타인에게 이 집은 말 그대로 우주의 먼지일 뿐이었다.
그리고 나 역시, 광막한 어둠 속을 부유하다 잊혀진 듯했다.
발 디딜 데 없는 참담함이 삶을 천천히 휘저었다.
우울증이라는 이름으로 불릴 만한 증상들이 지나갔고,
집착과 무기력 같은 양극의 행동들이 몇 달간 반복됐다.
그러던 어느 날, 나는 기록을 시작했다.
내 인생의 많은 부분을 완전히 차지한, 앞으로도 차지할지 모르는 그 작고 무거운 일들을 기록하지 않으면,
나 자신마저 집과 함께 먼지가 되어 사라질 것만 같았다.
브런치북 연재를 시작한 것도 그 무렵이었다.
처음부터 두려움으로 시작한 글쓰기였다.
희망과 용기 같은 빛나는 가치들을 덧대 옷을 지어 입었지만,
아무리 촘촘히 기워도 태초의 두려움은 틈새를 찾아 비집고 나왔다.
가볍고 얕은 나의 글이 이 일의 실체를 왜곡하지는 않을까.
수십 편의 글 중 흩어진 몇 조각만 꺼내어 보이는 일이, 오히려 본질을 가리우는 건 아닐까.
그 안에서 내 글은 미로 속을 떠도는 빛처럼, 편협하고 근시안적으로 반사되고 있었다.
그럼에도 연재는 나에게 스승과도 같았다.
이 일을 언어로 옮기려면, 좁은 골목을 벗어나 끝없이 위로 이어지는 계단을 한 발 한 발 올라야 한다는 걸 깨달았다.
이 일은 철부지의 투정으로 읽히기에는 인간 삶에 너무나 광범위하고 깊숙하게 관여한다.
겉으로는 쉽게 지워지는 듯 보이지만, 결코 지워질 수 없는 일이다.
이 일을 경험한 나는, 그 기억과 증언을 남길 사명이 있다고 믿는다.
그래서 나는 여전히 밥을 지으면서 동시에 글을 쓴다.
밥솥에서 피어오른 하얀 김이 좁은 세상에 잠시 스미다 자취를 감추는 동안,
나는 이 노동과 존재의 냄새를 붙잡을 문장을 고르고 또 고른다.
이 글은 아직 완성되지 않았다.
발행된 글조차 얼마나 많은 퇴고가 필요할지 가늠하기 어렵다.
그 안에서, 아직 발화되지 않은 이야기들이 줄지어 서서 초조하게 차례를 기다린다.
언젠가 이 글의 마지막 문장을 닫을 때가 오면,
밥 짓는 냄새처럼 흩어지더라도 잠시 머물다, 누군가의 빈 허기를 불러낼 수 있기를 바란다.
밥이 그렇듯, 글도 누군가의 삶을 잠시 붙잡아둘 수 있을지 모르니.
부족한 글에 귀 기울여주신 분들께 마음 깊이 감사드립니다.
그 응답이 제게는 가장 큰 밑거름이 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