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것이라 쓰고, 전부라 읽는다
어제 요가 수업이 끝날 무렵,
큰 깨달음을 얻었다.
사바사나를 하면서.
일주일 만에 간 요가라 더 반가웠고, 그 시간이 너무나 행복했다.
사바사나를 할 때는 참 많은 생각들이 스쳐 지나간다.
특히 금요일 밤 9시 20분 수업에서는 더욱 그렇다.
어제는 이상하게도 부모님 생각이 났다.
특히 어머니.
나는 이들을 죽어도 이해하지 못할 거다.
아마도 내가 내 자식을 낳아보면 조금은 알게 되겠지.
어른들이 그런 말을 하는 이유를 어제야 어렴풋이 깨달았다.
어머니는 왜 나에게 그렇게 집착했을까.
왜 나를 놓지 못하는 걸까.
왜 본인과 나를 분리하지 못하는 걸까.
나는 이런 기질적인 것들이 내게 유전되었고,
연애관계에서도 어머니와 똑같은 모습을 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게 꼭 유전 때문만은 아닐 수도 있겠다.
물론 ‘소유’, ‘내 것’, ‘내가 만든 것’에 대한 욕심,
완벽한 무언가에 대한 갈망이 강한 건 유전이 맞다.
이건 어머니뿐 아니라 아버지도 마찬가지일지도 모른다.
책임감이 강하고 정리 정돈을 철저하게 하는 우리 아버지를 보면.
그런데, 이건 단순히 기질의 문제가 아니라,
‘부모’와 ‘아이’라는 관계의 특수성 때문일 수도 있겠다.
아이는 부모의 정자와 난자로 만들어진다.
엄마의 뱃속에서, 엄마가 먹는 음식과 영양을 온전히 받으며 세상에 나올 준비를 한다.
아빠와 엄마의 몸에서 시작된 존재.
그래서 부모는 "내가 만든 아이”라고 생각한다.
이건 틀린 말이 아니다. 맞는 말이다.
그리고 그 순간, 세상의 그 어떤 물건보다도 더 강한,
어마어마한 ‘소유에 대한 책임감’이 생긴다.
소유욕이 아니다.
처음에는 소유에 대한 책임감이다.
“내가 만들었으니 책임져야 한다.”
“내가 만들었으니 더 소중하고, 귀하고, 신기하고, 놀랍다.”
이렇게 생각하니, 내가 ‘내 것’이라고 여기는 것들을 돌아보게 된다.
심지어 열정을 쏟고 공을 들이는 것들을 생각하면,
나는 이제야 부모님의 마음을 아주 조금, 이해할 것 같다.
내 새끼. 그렇지.
정말 미치겠는, 깨물어 죽이고 싶을 만큼 사랑스러운 내 새끼.
남이 이 아이를 죽이든 해치는 건 참을 수 없다.
내가 차라리 죽이고 차라리 사랑하는 마음만큼
심지어는 남김없이 씹어먹을 지언정.
어느 하나 예쁘지 않은 구석이 없는 내 새끼.
잔혹한 표현이지만,
진짜 그게 부모의 마음이 아닐까.
미친 듯한, 형용할 수 없는 신비함.
그 감정이.
왜, 이 생각을 하면 눈물이 날까.
여튼. 굉장하다.
결론은,
나는 어제 두 분의 마음을 조금이나마 간접 체험했다.
그 감동이 너무 컸다.
너무도 감격스러웠다.
아주.
“잘해드려야지.” 라기보다는,
더 자주 보고,
더 자주 전화 드리고,
더 자주 살가운 말을 해야지.
그냥,
감사하고 사랑한다.
그들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