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나경 Jun 08. 2023

주택에 반하다

 "나중에 은퇴하면 시골에 내려가서 살고 싶어"

아빠는 늘 주택에서 살고 싶다고 했다. 그건 아빠의 꿈이지 내 것은 아니었다.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남의 사연 같았달까. 내가 살아보기로 정하기 전까지는. 남편의 직장 때문에 신혼집에서 이사해야 했다. 남편은 주택에 살기를 원했다. 매수에는 확신이 들지 않아서 전세로 알아보기로 했다. 단독주택보다는 아파트처럼 여러 세대가 같이 사는 타운하우스로 정했다. 한 가구가 똑떨어져 있는 단독주택은 나 혼자 집에 있을 때 무서울 것 같았다. 조건에 맞는 마땅한 집을 찾아냈다. 그리고 우리는 일단 살아보기로 했다.

  

 봄이 끝나갈 즈음에 이사를 했다. 처음에는 무작정 좋았다. 문 하나를 열었을 뿐인데 파란 하늘이 보이고 풀 냄새가 났다. 기분 좋은 바람이 불어왔고, 햇빛은 따뜻했다. 하지만 얼마 안 가 문제가 보이기 시작했다. "여보, 마당 정리 좀 해야 할 것 같아!" 나의 압박에 남편은 "알았어"라는 대답만 며칠째 반복했다. 여름에는 조금만 신경을 안 쓰면 집 앞에서 아마존 우림을 볼 수 있었다. 풀만 많은 것이라면 다행이겠지만, 벌레도 많이 꼬였다. 모기, 날파리, 최악은 돈벌레다. 익충이라 죽이지 않고 살려서 내보내려 노력하지만, 그 움직임을 보고 있으면 심장이 움찔움찔한다. 겨울에는 또 어떠한가. 산 밑, 오르막길이라서 눈이라도 한 번 내리면 마을 전체가 난리가 났다.


 '주택 생활은 나한테는 안 맞는 건가'라는 생각이 들 때쯤 코로나가 퍼졌다. 마스크를 쓰고도 집 밖으로 나가기 무서웠던 초기, 주택의 장점이 보이기 시작했다. 마당이 있으니까 그나마 답답함이 덜했다. 여행 대신 마당 캠핑을 했다. 주말 저녁 나무 타는 냄새와 고기 굽는 냄새는 평일 동안 마스크를 쓰고 긴장하고 다닌 우리 가족에게 힐링이 되어주었다. 무더운 여름, 바다나 계곡에 가지 않아도 마당에서 아이와 물놀이가 가능했다. 신혼 가구로 들였던 빔프로젝터는 우리 집을 극장, 경기장 관중석으로 만들어줬다. 소리가 커도 눈치 볼 필요 없었다. 밤에 세탁기, 청소기를 돌려도 괜찮았다. 시간을 자유롭게 쓸 수 있다는 건 생각지 못한 선물이었다.

    

 전원주택에서 사는 것이 로망인 사람들이 많다. 살아보니 로망이 될 만했다. 가능하다면 회사 업무나 육아로 바쁘고 지치는 일이 많을 때, 아이가 발 망치를 휘두를 때 살아보라고 말해주고 싶다. 힘들고 지칠수록 집은 위로와 쉼이 됐다. 하루 종일 이유 없이 울던 아이를 재우고 테라스에 나가 마셨던 맥주 한 캔을 아직도 잊을 수가 없다. '쿵쿵 쿵쿵' 아이와 강아지가 집 안에서 달리기 하는 소리가 들려도 신경이 쓰이지 않았다. 아이 놀이터, 강아지 운동장이 되어도 괜찮았다. "뛰지 마!"라고 잔소리할 필요 없었다.


 요즘에는 수도권에도 타운하우스가 많다. 살아보지 않아서 고민이 된다면 전세도 괜찮다. 오히려 주택에 처음 사는 사람에게는 전세를 권하고 싶다. 살다 보면 마당이 조금 더 컸으면 좋겠다든지, 1층에 방이 하나 더 있었으면 좋겠다든지 하는 주택 이상형이 생긴다. 우린 두 달 뒤, 아파트로 이사한다. 운 좋게 청약에 당첨됐지만, 이곳을 떠나야 한다는 게 아쉽기만 하다. 지금이야 여러 사정으로 한 발 물러나지만 언젠가 전원주택으로 다시 돌아올 계획이다. 전원주택에서 사는 것을 고민한다면 그냥 한번 살아보라. 그 매력에 반할 것이다.

매거진의 이전글 일잘러는 OO을 합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