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때 조금만 더 잘했더라면...
어느 날 아침 방송을 보고 있는데, 연예 뉴스라는 코너에서 연예인들이 갖고 있는 미신이나 징크스에 대한 내용이 나오고 있었다. 이는 운동선수들이나 혹은 유명한 사람들에게서 익히 들어온 내용인 것 같다. 자신들이 어떤 옷을 입었을 때 경기나 강의가 잘 풀렸다든지 혹은 중요한 사건이 해결이 되었다든지 말이다. 얼마 전에 종영된 드라마 '오! 마이 비너스'에서도 신민아가 극 중에서 변호사로 나오는데, 내일 중요한 재판이 있다고 하면서 자신이 첫 재판에서 이겼던 날에 들었던 '가방'에 대해 집착을 하며, 그 가방을 들고 가야 행운이 있을 것이라고 얘기를 하는 장면이 그려졌다.
이러한 행동에 대해 미국의 심리학자 Julian B. Rotter는 통제의 소재(Locus of control)라는 개념을 통해 사람들의 심리에 대해 설명을 하였다. Locus라는 말은 라틴어로 'place' 혹은 'location'을 뜻하는 말로, 통제의 소재는 사람들이 자신이 경험하고 있는 일들에 대한 통제권이 어디에 있는지 혹은 누구에게 있는지를 생각하게 되는 과정(?)에 사용되는 개념이다. 즉, 내게 일어나는 일들이 현재 외적(external) 요인(환경이나 다른 사람들)에 의해 발생된 건지, 아니면 내적(internal) 요인(나의 능력 등)에 의해 발생된 것인지에 대해 생각을 한다는 것이다.
사람들은 통제의 소재가 내적에 있어야 편안한 마음을 갖게 된다. 나에게 일어나는 일들을 내가 통제를 할 수 있다고 생각을 해야지, 그렇지 않고 내가 아무리 노력을 해도 소용없다는 생각이 들면 우리는 스스로 무기력해지게 되고 활력도 없어질 것이다. 그로 인해 사람들은 미신이나 징크스, 꿈에 대한 해석 등 대부분의 것들에 대해 의미를 부여해서 자신의 삶을 통제하려는 경향, 혹은 예측하고 싶어 하는 경향을 보인다.
특히, 아이들일 경우 자기중심적인 사고를 하기 때문에 더 쉽게 그러한 경향성을 보이게 된다. 예를 들면, 부모가 서로의 의견 충돌이 있어 싸움을 하거나, 혹은 엄마가 몸이 아파서 병원에 입원을 하게 되더라도 내가 뭔가 잘못했거나 혹은 내가 나쁜 아이라서 그렇다고 느낄 가능성 높다는 것이다.
그러한 생각이 좀 더 깊어지면 사람은 우울감을 경험하게 된다. 나에게 혹은 내 주변에서 일어나는 일들이 모두 나 때문이라는 생각을 하고, 그것이 자기 비난으로 이어지게 되면 당연히 우울해지지 않겠는가. 그런데 한 편으로는 그러한 생각들이 오히려 우울감에서 벗어나려고 애를 쓰는 것이 아닌가?라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왜냐하면 나에게 이러한 슬픔이나 상실, 혹은 불행한 일이 있는 것이 '외부 요인'에 의해 야기된 것이라고 생각하게 되면, 이 문제를 내 노력으로 극복할 수 있다는 생각도 못하게 되고 오히려 무력감에 빠질 것 같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러한 우울증적 성향을 가진 사람들은 자신의 힘을 너무 크게 생각하기 때문에 자기 비난을 남들보다 '더' 하게 되고 '더'깊은 우울감에 빠지게 되는 것이라고 한다. 그런 사람들에게는 자신의 막강한 영향력이나 큰 책임감에 대해 오히려 더 비난을 해주어, 내적 통제의 힘을 경감시켜주는 것이 도움이 될 것이라고 한다. 이는 내 생각이 아니라 정신분석가인 Nancy McWilliams가 이야기를 한 것이다. 그녀가 말하기를 자기비판적인 사람들은 타인이 자신에 대해 비난하는 것을 잘 받아들이기 때문에, 그 사람들이 본인에 대해 비난하는 말(예, 우리 관계가 끊기게 된 것은 다 내 탓이에요)에 대해 우리가 다시 반박을 하라(예, 당신의 영향력이 그렇게 크다는 것은 무슨 자신감에서 오는 거예요?)는 것이다. 너의 힘이 그렇게 거대하지 않고, 위대하지 않다는 것을 알게 해주어, 그 일이 전부다 너의 탓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해주라는 것이다.
그러한 과정에서 사람들이 균형 있는 생각을 갖고 행동하게끔 하는 것이 생각만큼 쉽지 않을 수 있다는 생각이 든다. 나의 삶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들의 원인이 전부다 나 때문에 그런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전부다 다른 사람들 때문에 발생하는 것도 아닌데, 그러한 애매모호한 상황에서 균형을 맞춰 생각하도록 하는 것이 쉽지 만은 않겠다. 그래서 이러한 흑백논리의 사고를 바꾸도록 우리는 끊임없이 싸워야 하는 것 같다. 그들은 본인들이 경험하는 슬픈 일이나 상황들이 본인들 때문에 일어난 것이라고 할 것이고, 우리는 그렇지 않다는 근거를 대면서 상대방의 생각이 좀 더 옅어질 수 있도록, 조금 더 우리가 주장하는 쪽으로 옮겨올 수 있도록 끊임없이 주장해야 하는 것 같다. 시소 타기에서 서로의 무게를 균형 맞춰가며 앞 뒤로 움직이는 것처럼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