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쁘게 보이는지 의심하는 그녀들_1

by 박지선
출처: 구글 이미지

# 사랑받기 위해서는 예뻐야 한다.

내가 사랑받을 수 있는지 없는지 끊임없이 의심한다. 어떤 모습이 좋은 평가를 받을지 모를 때는 그저 생긴 대로 살아가지만, 사회로 나가 타인의 점수에 노출되기 시작하면 나의 모든 특성들이 나로부터 자유롭지 못하게 된다. 여성으로서 사회가 부여한 미적 기준에 부합하도록, 특히 남성들에게 이성적인 매력을 얼마나 피력할 수 있을지, 내 주변에 있는 다른 동성들에 비해 나의 아름다움은 어느 정도 순위에 위치하는지 매 순간 긴장하며 체크한다.


머리가 조금만 길어도 미용실에 당장 달려간다. 미용실 예약이 불가할 때는 매일 거울 보는 게 불편하다. 귀 뒤로 살짝 삐져나온 그 머리카락들 때문에 못생겨 보이기 때문이다. 바지 길이가 1cm만 길어도 그냥 두지 못하고 보기 좋은 길이로 수선을 한다. 발목이 살짝 보이지 않으면 그렇게 답답해 보일 수가 없고 예뻐 보이지 않는다.


절대적인 기준이 있는 것도 아닌데 타인이 먼저 점수를 매기기 전에 내가 먼저 나를 지적하고 하나의 흠도 허락하지 않는다. 남보다 더 지독하게 나를 비난한다. 먹는 것을 절제하고 좋다는 운동을 쉬지 않고 해댄다. 내 몸이 매력적으로 보일 수 있도록 뼈를 깎는 고통으로 내 몸을 혹사시킨다. 행여, 조금이라도 음식에 탐을 내기라도 한다면 한심한 나에게 포악을 부린다.


스스로 독하게 구는 건. 단지 타인의 평가에 자유롭지 못해서 그럴 뿐이다. 단지 사랑받고 싶은 그 마음 때문에 그럴 뿐, 어떤 큰 이유가 있는 것은 아니다.


이성적으로는 이미 다 알고 있다. 몸무게나, 머리 스타일, 혹은 옷 스타일로 인해 내 가치가 달라질 거라고 생각하지도 않고, 그런 생각이 오히려 잘못됐고, 그런 가치를 부여하는 이 사회가 부조리하다는 것도 이미 다 알고 있다. 몸무게가 줄어든다고 해서 행복감을 얻을 수 있는 것은 아니라고 머리로는 이미 다 알고 있다.


하지만, 마음은 그렇지 않다. 정서적으로 압도됐을 때, 사랑받는다는 느낌을 못 받을 때, 지금 받고 있는 사랑이 사라질 수도 있다는 불안감에 휩싸였을 때는 이성의 힘을 잃어버린다. 다시 또 타인이 원하는 모습대로 존재하지 못하는 나를 구박한다.


# 사랑받기 위해서는 나를 먼저 사랑해야 한다.

내 모습에 스스로 당당하지 못하면 타인의 사랑을 받을 기회조차 잃게 된다. 누군가와 애정 어린 소통을 하려면 그 누군가에게 접근을 해야 하지만, 사랑받을 수 없다는 생각에 가득 차서 꽁꽁 숨는다면 어느 누구도 나를 발견하지 못하니 교류조차 할 수 없다. 발견했다 하더라도 그가 내민 손을 내가 뿌리친다. 이 모습을 밖으로 내보였다간 상처 받을 게 분명하기에, 시련의 아픔을 미연에 방지하고자 할 수 있는 한 최대한 고립시킨다.


결국 나를 먼저 사랑해야 나를 드러내고 타인과 사랑을 주고받을 수 있게 된다. 자기애(自己愛). 나를 사랑하는 그 마음은 뽐내고 싶은 내 욕구를 누군가 인정해줄 때 자라난다. 최근까지도 뽐내기를 좋아했던 나는 어렸을 때는 뽐낼만한 특성이 없었다. 여성으로 태어난 나는, 우리 사회가 추구하는 그 ‘여성스러움’은 눈곱만큼도 찾을 수 없었다. 오히려 에너지가 과해서 활동량이 누구보다 많았고, 목소리도 크고 하고 싶은 말이 많아서 엄청 시끄러웠다. 그러다 보니 부모님 눈에는, 특히 엄마 눈에는 예뻐 보이지 않는 게 너무 많았을 것이다. 사회가 인정하는 예쁜 여자아이로 키우고 싶었던 엄마는, 내게 예쁜 원피스도 입혀보았고, 예쁘게 말하는 법이나, 예쁘게 앉는 법을 알려주었다. 하지만 그런 옷차림에 전혀 개의치 않았던 나는 예쁜 원피스를 입고 담을 넘고 자전거를 타다 옷이 찢어진 적이 여러 번 있었고, 예쁘게 앉으라고 할수록 남녀 차별이라며 목소리를 높였다. 그나마 어렸을 때부터 자기주장이 너무 뚜렷했고, 어느 정도 수용을 받았기에 내 멋대로 살아갈 수 있었지만 속은 허전했다.


겉모습과는 다르게 내심 자신감을 잃어갔다. 나도 나 스스로를 뽐내며 인정받고 싶은데, 내가 뽐낼 수 있었던 활동적인 모습과 씩씩함, 그리고 대담한 용기들은 오히려 내가 아닌 오빠가 가졌어야 한다며 아쉬워했기 때문이다. 나는 내가 생각하는 내 장점을 드러낼 수 없었고, 결국 나는 장점이 없는, 나 스스로 사랑할 구석이 없는 사람으로 정의 내리며 지내왔었다. 힘이 없던 어린 시절에는 내 장점들을 묻은 채 살아갈 수밖에 없었다. 내가 자랑하려고 드러내고 싶은 내 장점은 다수가 찬성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 나를 사랑하기 위해서는 결국 타인이 필요하다.

우리는 타인의 평가로부터 자유로워지는 연습을 해야한다. 하지만 그와 동시에 내가 갖고 있는 장점들을 발견하고 드러내어 타인의 공감을 받아야 한다. 타인 없이 텅 빈 공간에서 내 존재의 가치가 빛나는 일은 절대로 있을 수 없기 때문이다. 타인과 함께 해야 한다는 게 어렵고 고통스러우며 귀찮은 일이겠지만 아이러니하게도 나 스스로 수용하고 사랑하기 위해서 나의 인정만 필요한 게 아니라 타인의 인정 또한 필수적인 요소이다.


다만, 타인의 욕구를 충족시키기 위해 나를 꾸미라는 것이 아니다. 내가 갖고 있는 특성들을 귀하게 바라봐 주고 존중해주며 사랑해줄 수 있는 그런 사람과 관계를 맺으라는 것이다. 애정욕구와 인정 욕구를 지닌 존재임을 수용해주는 사람과 관계를 맺으라는 것이다. 내 결핍에 건강하지 않은 관계를 쫓게 되면 곤란하다. 결핍되어 있는 애정 욕구를 채우는 것이 우선시 되어야 건강한 관계를 맺을 수 있다. 그러기 위해서 한 인격체로서 서로의 감정과 생각을 존중하고 존중받는 관계를 해야 한다. 그런 관계의 연습을 하기 위해 모인 장소가 집단상담이다. 집단상담은 타인에게 사랑받는 나로 변화시켜주는 곳이 아니다. 다만, 내 모습을 그대로 수용하는 사람이 있는 곳이다. 반대로 내 모습을 싫어하는 사람도 있는 곳이다. 결국 내 안에 가득 차있던 삐뚤어진 사회적 시선이나 편견, 즉 어떤 조건을 갖추기만 하면 사랑받을 것이라는 잘못된 신념을 거두어 주는 사람들이 있을 뿐이다. 그리고 나와 같은 고민과 생각을 하며 힘들었던 시간들을 보냈던 사람들이 나와 함께 해줄 뿐이다.


그것밖에 해줄 수 없는 만남이지만, 자신의 필요에 의해 나를 이용하는 사람들이 아닌 진정한 관계를 하기 위해 모인 그 관계는 타인의 평가로부터 나를 자유롭게 해주고, 나 스스로 내 모습 있는 그대로 사랑해주고 수용해주도록 변화시킨다.



<추천!!!!>


외적인 모습이 아닌, 나를 있는 그대로 사랑한다면 어떤 변화가 생기는지 보여주는 영화를 추천합니다.


더 나아가서 트라우마를 겪은 후 자신을 지키기 위해 몸을 키워나갔지만, 그로 인해 스스로를 더 혐오하게 되었던 저자가 자기혐오에서 벗어나며 자신이 차지하고 있는 공간만큼, 자신의 몸의 부피만큼 자신을 사랑하게 되는 과정을 가감 없이 사실적으로 표현해낸 책 한 권도 추천합니다.




기회가 되면 영화와 책을 읽어보기를 추천합니다. 직접 관계 경험을 해보지 않더라고 영화와 책을 보고 읽으면서 스스로 위안받고,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 방향성을 제공받기도 합니다. 하지만 더 직접적으로 새로운 관계 경험을 해보고 싶다면 집단상담을 적극 추천합니다. 집단상담에 참여를 원하는 사람들은 아래의 링크 주소를 클릭해서 신청서를 작성해 주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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