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한테 신경 좀 써줘야 할 것 같아

by 박지선

임신했을 때 부러워했던 언니가 있다. 그 남편과는 이전부터 잘 알고 지냈는데 그 남편은 육아와 집안일을 도와주는 차원이 아니라 자기 일처럼 인식하고 행동하고 있어서 신기하기도 부럽기도 했다. 그에 비해 내 남편은 출산, 육아 서적을 보여줘도 읽으려고 하지도 않고, 가부장적인 사고방식으로 돌봄 받기를 좋아하는 사람이라 누군가를 위해 자신이 뒷전이 되어도 오케이 할 사람으로 여겨지지 않았다.

그 언니에게 남편의 무심함에 대해 푸념도 많이 했다. 그럴 때마다 나는 부부관계의 진리를 알게 되어 꼬인 마음이 많이 풀어졌다. 언니 남편도 출산 관련 책에 관심도 없었다고 한다. 게다가 집안 일도 원래 하던 사람이 아니라 말을 해야 알고, 임신 중, 출산 후 겪는 감정과 신체 변화에 대해서도 자세하게 알려줘야 이해한다고 했다. 갑자기 답답하고 우울했던 마음이 가벼워졌다. 그 사람도 그렇다니! 내가 생각했던 이상적인 남편도 우리 남편과 비슷하다니! 그렇게 섬세하던 남편도 아내가 설명을 해줘야 알아차리고 움직인다니 위로가 됐다. 언니도 편하지만은 않구나 라는 생각에 위로가 되는 게 아니라 내 남편을 이해할 수 있게 되어 위로가 된 것이다. 나에게 관심이 없고 무심한 것이 아니라 어떻게 해줘야 할지 몰라서 그랬던 것이고, 그게 일반적인 남편의 모습이라는 생각이 드니까 마음이 한결 가벼워졌다. 그때부터였던 것 같다. 임신 중 감정 기복에 대해 자세히 설명해주고, 내 몸 상태에 대해서도 자세하게 설명하기 시작했던 때가.

남편에게 내 상태에 대해 이야기를 하기 시작하니 나중에는 남편이 먼저 묻기 시작했다. 내 행동이나 표정을 보고 얘가 좀 이상하구나 싶어 지면 무슨 생각하는지 물어봐줬다. 그리고 나 또한 기분이 침체될 위기에 처하거나, 내가 곧 남편에게 화낼 것 같은 순간이 되기 전에 미리미리 말했다. ‘여보, 나 요즘 우울해. 나 좀 신경 써줘야 할 것 같아.’ 그러면 남편은 그에 맞춰 더 관심을 줬다. 요즘엔 남편도 점차 자신이 서운할 때 이야기를 한다. 그러면 나도 그 부분에 대해 신경을 쓰기 시작한다. 서로가 서로를 다시 바라보기 시작한다.

서로에 대한 마음은 있지만 행동이 느슨해질 때가 있다. 각자의 힘듦에 빠져서 상대의 노고를 바라보지 못할 때가 많다. 같은 집에 살며 자기 자신만 바라보는 그 순간이 되면 외롭고 서운한 마음이 원망과 분노로 변하기 시작한다. 그때 터지는 싸움은 서로에 대한 비난밖에 안된다. 가장 좋은 것은 그 순간이 되기 전에 미리미리 상대에게 이야기를 해주는 것이 필요하다.

남편이 말한다. 화가 나기 전 미리 말하는 게 어렵다고, 내가 언제 어떻게 화가 날지 그 정도를 가늠하기 어렵다고 한다. 자신의 한계치를 모른 채 살아가는 사람들이 많다. 내가 어떤 일에 특별히 화가 나고, 어느 정도 쌓이면 화가 폭발할지 모른 채 살아간다. 그렇기 때문에 서로 상처되는 싸움도 많이 하고 이해받지 못한다며 분노하는 경우가 많은 것이다. 감정을 잘 조절하기 위해서는, 갈등을 잘 진행하기 위해서는 내 감정이 어떠한지 명확하게 알아야 하고 내가 어떤 순간에 화를 내고 어디까지 참을 수 있는지 인식하는 능력이 있어야 한다. 힘든 육아를 하기 위해서는 그 능력이 있어야 하기 때문에 미리미리 키워두면 좋다. 그래서 남편과 나도 여전히 함께 노력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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