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이트 폭력을 경험한 사람들이 연인 관계를 유지하는 경우를 심심치 않게 보게 되니, 생각보다 폭력에 대한 허용 범위가 그렇게 엄격하지 않다는 생각도 든다. 폭력은 신체적·심리적 모두 해당되는 것이다. 실제로 사소한 폭력 경험이라고 하더라도 이후에 좀 더 심각한 혹은 또 다른 형태의 폭력을 경험하게 될 가능성을 높이기 때문에 스스로가 자신의 안전에 대한 책임 및 보호를 할 필요가 있겠다.
데이트 폭력에서 신체적으로 직접적인 폭력을 가하는 경우를 제외하고 비폭력적인 행동으로 다양한 측면에서의 강압적인 행동을 하는 경우도 폭력에 해당한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이 이러한 행동을 폭력이라고 인식하는 경우가 적으며, 상대의 강압적인 요구에 반대되는 자신의 의견을 주장하지 못하고 순응하는 태도를 보이는 경우가 빈번한 것 같다.
외국의 경우, 대학교 상담 센터에 ‘이런 남자 조심해라’라는 팸플릿이 마련되어 있는데, 그 안의 내용에는 어떤 유형의 사람을 조심해야 하는지 자세히 나와 있다고 한다. 특히, 이후의 폭력적이거나 가해-피해 구도를 형성할 사람의 유형 중에는 관계 초기에 통제를 하는 행동을 반드시 보인다고 한다. 예를 들어, 연인이 누구와 어떠한 연락을 하고 무엇을 하는지 알기 위해 핸드폰을 검토/확인하거나, 외모를 자신이 원하는 대로 바꾸기를 요청하거나, 다른 지인(모임, 친구, 가족 등)들과의 만남을 통제하기 시작하는 것 등 외부 자원들을 제거하기 시작함으로써 자신에게 절대적으로 의존할 수밖에 없도록 만든다고 한다.
위와 같은 행동을 하는 사람들을 조심하고 경계하며 관계에 거리를 두어야 하는데, 관계 단절에 대한 두려움을 느끼는 경우에는 상대방의 통제적인 요구에 계속해서 응하게 된다고 한다.
그렇다면 이러한 데이트 폭력을 허용하는 정도에 영향을 미치는 변인들은 무엇이 있을까?
위의 연구자들은 폭력에 대한 인식, 정서적 의존 욕구와 더불어 성역할 고정관념이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주장하였다. 성역할 고정관념이란 개인적인 속성들을 남성과 여성이라는 역할에 국한시키는 것으로 남성은 좀 더 지배적이고 주장적이며 경쟁적이고, 여성은 순종적이고 친절하고 협동적인 면을 추구하도록 요구하는 것이다. " Muehlenhard와 McCoy(1991)의 연구에 의하면, 전통적인 성역할 기대란 남성이 성 행동을 시작하는 사람으로, 여성들은 남성들의 시도에 반응하는 역할을 하는 사람인 것으로 나타났다. 따라서 이러한 전통적인 성역할 기대를 내면화한 여성의 경우 성과 관련된 상황에서 거절하기와 자기주장하기가 어려워지고 원하지 않는 성행위를 할 가능성이 높을 것"이라고 한다.
선행 연구 결과를 토대로 성역할의 기대에 따라 여성들이 자기주장의 어려운 상황이 더 많을 것으로 예상하고, 폭력 자체가 남성은 자신의 목적을 위해 여성은 방어적인 면에서 발생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여대생들의 데이트 폭력에만 초점을 맞추어 살펴보고자 했다.
과거 1회 이상 이성 교제 경험이 있는 여자 대학생 548명을 대상으로 성역할 고정관념(가정적, 사회적,직업 및 외형적, 사회심리적, 지적 성역할), 데이트 폭력허용도(8가지 상황에서 연인에게 폭력을 행사하는 것이 정당한지 아닌지 응답), 성적 자기주장과 관련된 설문조사를 하였다. 거기에 추가하여 질적 조사에도 동의하는 60명을 대상으로 “이성관계에서 성적 자기주장을 잘 하지 못하는 되는 이유”를 추가 조사하였는데, ‘외적 이유, 내적 이유“를 각각 조사하였고, 주장을 잘 하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필요한 도움“이 무엇인지에 대해서도 물어보았다.
연구 결과, 성역할에 대한 고정관념이 높을수록 데이트 폭력에 대한 허용하는 경우가 많았는데, 이 둘의 관계를 성적 자기주장성이 매개하였다. 즉, 성역할에 대한 고정관념이 높으면 성적 자기주장을 못하고,성적 자기주장을 못할수록 데이트 폭력에 대한 허용 범위가 넓어진다는 것이다.
그런데 여기서 더 눈여겨볼 만한 것이 질적 조사의 결과였다. 이성관계에서 성적 행동에 대한 자기주장을 잘 하지 못하는 경우에 외적 이유는 대부분 “잘못된 인식”의 부분이 차지하였다. 즉, 인지적인 교육이 필요하며 사회적 통념이 바뀌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내적 이유에서는 아래와 같은 결과가 나타났다. 응답한 비율로 보자면, 1위가 낮은 자존감, 2위 공포, 두려움, 불안, 3위, 지나친 이타심(착한 아이 콤플렉스), 4위 의존감, 그리고 마지막 5위가 버림받고 싶지 않은 욕구라고 나타났다.
그러나 이 표를 보면서 나는 “버림받고 싶지 않은 욕구”가 핵심이라고 생각을 하였다. “낮은 자존감(1위)”을 갖고 있어서 이성에게 사랑받지 못할까 봐 혹은 거절당하는 두려움에 성적 행위에 대해 거부하지 못하고, “착한 아이 콤플렉스(3위)”를 가진 사람도 타인의 요구에 거절하지 않아야 사랑을 받고 버림받지 않는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타인의 요청에 응하는 것이고, “의존감(4위)”도 혼자 있을 수 없기 때문에 관계가 끊기면 안 되는 것이 목숨보다 중요하기 때문에 타인의 요청에 응하는 것이다. 이는 모두 “버림받고 싶지 않은 욕구(5위)”에 의해 비롯된 마음들이라고 생각한다. (“공포, 두려움, 불안(2위)”은 구체적으로 무엇에 대한 공포, 두려움, 불안인지 몰라서 추가적 설명을 못 붙이겠다)
우리는 상대방으로부터 거절당하는 것이 두려워 내 생각이나 감정을 표현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버림받는 것이 죽기보다 끔찍한 경우가 있기 때문에 나의 어떠한 부분이 손상되고 있는지, 나를 얼마나 갉아먹고 있는 관계인지도 모른 채 병리적인 관계를 유지하는 경우가 많다.
좀 더 건강한 관계를 형성하고 유지하고 나를 보호하고 존중하기 위해서는 거절에 대해, 미움받는 것에 대해 좀 더 단련될 필요가 있다. 이런 측면에서 나는 집단상담에 참여하기를 권한다. 실제로 내가 누군가에게 버림을 받을 만큼 하찮은 존재가 아니라는 것도 깨닫고, 누군가는 미워하고 누군가는 나를 좋아하고, 그리고 나를 미워하는 누군가가 있더라도 내가 생각했던 만큼 끔찍한 결과가 발생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았으면 한다. 또한 한 사람에게만 의존하는 것이 아니라 의존 대상을 여러 사람에게 분배해서 그들에게 정서적 충족감을 얻는 것도 연습을 해야 한다. 그 아무리 튼튼하다 하더라도 하나의 동아줄만 잡고 있으면 불안감이 상당히 높아지고 서로에게 좋지 않은 관계로 발전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부디, 자신을 소중히 여기는 연습을 통해 좀 더 건강한 관계를 맺을 수 있도록 노력해보면 좋겠다.
위의 논문은 ‘과학자-전문가 준비반(월요일 오전)’에서 신다혜님이 발표하신 다음의 논문을 근거로 하고 있음.
손강숙, 정소미 (2016). 여대생의 성역할 고정관념과 데이트폭력허용도의 관계에서 성적 자기주장의 매개효과. 한국심리학회지: 여성, 21(3), 441-4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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