끝이라는 순간을 맞이했을 때.
그리고 그 끝이 내가 원하는 마지막이 아니었고,
일방적으로 이별을 통보받았을 때.
그 이후의 시간들을 비슷하게 보내지 않을까 싶다. 그중에 하나는 헤어짐의 이유에 대해 끊임없이 반복해서 생각하게 될 것이다.
갑작스러운 이별을 한 후에 첫 단계에서는 상대를 원망도 했다가, 믿을 수 없다고 부인도 했다가, 허전한 마음에 우울해지기도 할 것이다. 관계를 이어나가며 '나한테 왜 그러냐?'고 질문하고 답할 사람도 없으니, 나 혼자서 우리의 관계에 대한 여러 가지 왜곡된 추측을 해가며 다양한 감정선을 오르락내리락할 것이다.
“나는 진심이었는데... 걔도 진심이었을까?”
“나 혼자 좋아했었던 것 같기도 해...”
“걔는 그냥 심심했었나 봐... 그냥 외로웠었던 것 같아... 나를 좋아한 게 아니었어”
“왜 헤어지자고 한 거지? 이유를 모르겠어. 아니... 이유를 들어도 납득이 안가. 혹시 다른 여자가 생긴 건가?”
“아니면... 내가 못생겨서 그런가? 내가 뚱뚱해서? 내 옷차림이 별로인가?”
“아니면... 내가 너무 피곤하게 했나?”
“아니면... 그냥 나를 갖고 놀았던 건가?”
상대가 이별을 원할 때. 그 이유를 듣지 못할 경우 우리는 더 많은 추측을 하게 되고 스스로를 자괴감에 빠지게 하는 망상 속에서 헤어 나오지 못하게 된다. 이는 "Zeigarnik 효과"로도 설명이 가능하다. 심리학자 Bluma Zeigarnik이 말하기를, 우리는 해결되지 않은 문제에 대해서 끊임없이 반추하게 되어 기억에서 떨쳐내지 못하게 된다고 한다. 그래서 미완성작인 첫사랑을 더 못 잊는 것이고, “60초 후에” 돌아오겠다는 방송 프로그램의 사회자들 말이 야속하게 들리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가 이별하는 이유가 납득이 가지 않거나 듣지 못했을 경우에는 풀리지 않은 문제로 남아있게 되어 계속해서 내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고 생각을 하게 되는 것이다. 우리는 ‘끝’을 봐야 그다음 단계로 넘어갈 수 있는 것이다.
그리고 또 하나.
갑작스럽고 준비되지 않은 이별에 대해 힘들어하는 사람들이 이별 후에 많이 하는 행동이 하나 더 있다.
이별의 이유를 나에게서만 찾는 것이다. 우리는 상대가 이별을 원할 때, 내가 혹시 그에게 잘못한 것은 없는지 찾게 되는 습성이 있다. 내가 혹시 이성적인 매력이 없는 것은 아닌지, 내가 혹시 성격이 너무 안 좋은 것은 아닌지, 내가 혹시 너무 못해준 것은 아닌지 말이다. 자기반성이나 자기성찰에 대한 시간과 성장하기 위한 변화의 노력도 중요하겠지만, 관계는 둘이서 하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온전히 나만 문제가 있어서 우리가 끝이 난 것은 아니다.
실제로 다른 사람의 마음을 쉽게 생각하는 사람이 있기도 하고, 진지한 연애보다 가벼운 연애를 즐기는 사람도 있을 것이며, 천천히 깊게 관계를 맺기보다 금방 사랑에 빠졌다가 금방 나오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더욱이 상대방의 마음을 사는 것을 즐기며, 어떻게 하면 상대가 기분이 좋아지는지 귀신같이도 잘 알아서 그가 나를 좋아하게 만들면, 그 순간에 관계에 흥미가 떨어지는 경우도 있다. 물론, 상대의 나쁜 점에 대해 깨닫게 되는 순간이 오더라도 자책은 금물이다. 내가 사람 보는 눈이 없든, 상대가 나를 갖고 놀아서 분통한 마음이 들든, 그것은 지금 중요하지 않다. 그저 담담하게 내가 왜 그런 사람에게 훅- 빠지게 되었는지 자기 스스로를 들여다볼 필요만 있는 것이다.
우리는 어차피 속고 속이며 살아가고 있다. 아무리 두 눈 크게 뜨고 상대를 살펴보려고 하더라도 마음이 먼저 동하면 우리는 까막눈이 되어 버리는 것이다. 그래도 그 순간, 상대를 좋아하는 내 마음이 진심이었고, 그 시간 동안에 내가 행복했으면 그걸로 만족하자. 그리고 이후에 만나게 될 연인은 조금 더 건강한 사람을 만날 수 있도록 나의 정신 건강에도 마음을 더 써보자.
부디, 나 자신을 돌아보되 자책을 하거나 스스로 자존감을 낮추는 행동은 하지 않았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