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 빼고 싶지 않아?'
'네가 원하는 몸무게가 되면 더 예쁠 것 같은데.'
예전에 내 친구들의 남자친구들은 내 친구의 몸매에 대해 민감하게 신경을 쓰며, 내 친구들이 그들이 원하는 몸매를 유지할 수 있도록 통제를 했다. 한 친구는 누가 봐도 매력적인 몸매를 지니고 있었는데 그 친구는 자신이 스스로 엄격하게 관리를 하기도 했었다. 그러나 다른 친구는 남자친구의 말에 스트레스를 많이 받아하며 음식 조절 혹은 운동을 끊임없이 했었고 조금이라도 몸무게가 증가하면 과도한 스트레스를 받아했다.
나에게 즐거운 시간 중에 하나는 맛있고 좋아하는 음식을 먹는 일이다. 거기에 더해 좋아하는 사람과 먹을 때는 더없이 기쁘다. 허나 그러한 즐거운 일 중에 하나를 하지 못하게 된다니. 게다가 타인의 통제에 의해. 게다가 내 건강상의 문제도 아닌 그들에게 사랑받기 위해, 혹은 그들의 기준에 충족시키기 위해. 그럴 경우 나는 행복하지 않을 것 같다.
이는 비단 몸무게와 관련된 이야기만이 아니다. 우리는 어렸을 때부터 부모나 다른 중요한 타인들로부터, 혹은 사회로부터 인정받거나 사랑받기 위해 갖춰져야 할 모습들이 있었다. 어린아이는 본디 자기 나름대로의 욕구나 재능들이 있는데 이를 있는 그대로 충분히 수용받지 못하고 부모나 타인들의 기준에 맞추어 조건적으로 수용받게 된다. 아이들은 자신의 욕구를 채우고 싶다는 바람보다는 부모 혹은 중요한 타인들에게 인정 및 사랑을 받는 것이 중요하기 때문에 자신의 욕구는 버려둔 채, 그들이 원하는 가치에 맞춰 살아가는 것이다. 고로, 내가 진정으로 좋아하고 싫어하는 것은 무엇인지 모른 체 살아가는 것이다.
이렇게 조건부의 사랑이나 인정을 받은 사람들은 외부의 조건들을 내면화하며 성인이 되어서도 자신 스스로에게 기준을 들이대며 조건적으로 자신을 수용해준다. 즉, 자신 스스로도 자신의 존재 자체에 대한 수용 및 인정보다는 어떤 외적인 성과에 따라 존중이나 사랑을 주는 것이다.
나의 욕구나 재능에 맞춰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외부에서 원하는 조건과 모습으로 살아가는 경우 심리적으로 불편감을 느끼는 문제만 발생하는 것이 아니다. 이는 내가 관계를 맺는 사람들에게도 조건적인 사랑을 하기 때문에 문제가 더 크게 발생하게 된다. 내가 나를 있는 그대로 긍정적으로 수용해주는 것이 아니라면 내가 사랑하는 사람에게도 조건적으로 사랑을 주고, 그 사람이 내가 바라는 기준에 맞는 모습일 때만 수용을 하게 되는 것이다.
언젠가 나는 나에게 살을 빼라고 얘기하는 사람에게 이렇게 말한 적이 있다. "내가 정말 신기한 경험을 하게 해줄게. 네가 뚱뚱한 여자도 사랑할 수 있구나~~라는 것을 깨닫게 해줄게."라고 말이다. 물론, 그러한 신기한 경험을 시켜줄 수는 없었지만 말이다.
결국, 내가 하고자 하는 이야기는 우리가 지금 내 모습이 어떠하기를 바라는지, 내가 무슨 일을 하기 바라는지, 내가 무엇을 할 때 기분이 좋은지를 생각해보고, 이것이 정말 내 안에 있는 내 목소리로 이야기하고 평가하는 것인지 아니면 타인의 목소리가 나에게 그렇게 살지 않으면 사랑해주지 않을 거라고 얘기를 해서 그러는 건지 잘 들어봤으면 하는 마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