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하루기록

모터 달린 로보트

by 박지선
누나, 일을 줄이는 것도 능력이에요.

뭔 소리야. 지금 다 해야 하는 일들이야.


언제부턴가 내가 많이 들어온 잔소리이다. 있는 자존감이 별로 없어서 없는 자존심을 겁나게 세우느라 누군가 나에게 가르치려 들면 귀부터 닫고 귀찮아했는데 오늘은 그 말이 들렸다. 나와 성향이 전혀 다른 친구가 내 삶에 갈고리를 걸었다. 이제까지는 스스로 합리화를 하는 말들이 많았다. 지금 내 나이의 청춘들은 다들 이렇게 바쁘게 살지. 젊었을 때 바삐 움직이지 않으면 나중에 고생할 거야. 당연히 해야 할 일들이지 않나??!?!?!?


아니었다. 해야 할 일들을 하지 말라는 것도 아니고, 한량처럼 계속 풍악을 울리라는 것도 아니었다. 그저 일상의 모든 감정이나 생각들, 그리고 관계들, 그리고 지식 습득까지도. 수학 문제 풀듯이 공식에 맞춰 하나씩 해결해 나가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내가 지금 느끼는 이 감정도 내 마음에 머무르게 하고, 사람을 만나는 일도 그 사람에 대한 생각을 하며 내 안에 머무르게. 그리고 습득한 지식조차도 내 안에서 머무를 수 있게 하라는 것이었다.


와인을 마실 때 마시자마자 꿀꺽 삼켜버리는 것이 아니라, 입안에서 가글을 해야 그 와인의 향기가 입안 가득 퍼지는 것처럼 말이다. 내 삶에 풍요로움이 빠져있다는 것이다. 알맹이는 없고 껍질만 남은 느낌이다.


기계처럼, 반복되는 일상에서, 하루하루해야 할 일들에 치중해서 일을 완수하는 것에만 몰두해 있었던 것 것이다. 물론, 이런 내 특성이 장점으로 발휘할 때도 있지만, 요 몇 개월 간은 정말 감정가 없는 기계처럼 살아왔다는 것을 나 또한 느끼게 되어 멍하니 서있었다.


집에 돌아오는 길에 서러운 마음에 눈물이 멈추지 않았다. 친구는 내게 반복적으로 묻는다.


illustrated by 해원
뭘 위해서 열심히 하는 거야?
도대체 뭘 위해서


중요한 그 무언가를 놓친 채 살아왔던 시간이었다. 다시 또 내가 중요시 여겼던 것들을 다시 원위치에 옮겨놔야겠다.


하기 어려운 말을 내게 용기 있게 해준 나의 동료이자 친구이자 동생에게 고마울 따름이다.

그래서 집에 돌아오는 길에 몇 가지 일들을 취소하여 일을 정리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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