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정해 버리니 후련했다.
무조건 참기만 하면 된다고 생각하던 때가 있었다. 나는 지금 너무너무 고통스럽지만 참으면 될 거라고. 다 지나갈 거라고. 내가 뭘 잘못한 건지는 모르겠지만 견디자고. 지금 생각해 보면 그게 병이 된 거였다.
"검사 결과를 봤는데, ADHD가 아니라 우울증의 증상 중 하나일 수 있어요. 그래서 일단 우울증을 걷어내고 검사해야 더 정확하게 나올 것 같네요."
어릴 적부터 우리 집이 가난한 편이라고 생각했는데, 하필이면 그 집에서 예민한 장녀가 태어나는 바람에 인생의 절반 이상을 돈 없는 것처럼 안보이려고 부단히 노력해 오다 지쳐 나가떨어졌다. 아빠는 여러 사업에 손을 대며 한동안 생활비를 못 줬고, 엄마는 우리를 먹여 살리겠다고 간호조무사를 준비하던 중 학원 갈 버스비가 없어서 집으로 돌아왔다. 동생은 학교를 가지 않겠다고 뻐탱겼다. 나는 엄마가 안쓰러웠고 어쩌다 보니 책임감이 생겼다. 나라도 괜찮아야 할 것 같은 기분. 학창 시절은 대부분 울며 지냈다. 내가 무슨 잘못을 했던 걸까, 되뇌면서. 가정환경은 자식에게 매우 중요하다.
그때는 내가 우울증인가 싶다가도 에이 아니겠지 설마 아니겠지 아닐 거야 넘겼다. 학창 시절은 친구들이 전부니까, 괜히 눈에 띄는 사람이 되고 싶지도 않았고, 나는 완벽주의 성향과 함께 정상인이고자 하는 욕구가 강했다. 정상의 기준이야 없지만 내 딴에 그때는 평범하게 친구들 몇 있고 무난한 취향을 갖고 집에 돈도 어느 정도 살만하게 있는 사람이 내 기준이었다. 내 정상 기준에 정신질환은 없었다. 가장 힘든 때를 기합으로 버티고 상처를 대충 꿰맨 채 대학생이 됐다. 1학기가 지나고 아빠가 갑작스레 아팠다. 많이. 암이었다. 이름도 처음 듣는 암이었다. 나는 휴학신청을 하고 돈 버는 엄마 대신에 아빠를 간병했다. 간병 후 알바만 하다가 복학하니 새로운 사람들과 적응하는 건 또 내 과제였다. 내 인생 왜 이렇게 된 걸까. 한 때는 자주 생각했던 것 같다. 그럼에도 살아있고 싶어 헤맸다. 막연히 버티다가 K.O 당하고 향한 정신과에서는 나한테 '님 우울증입니다~' 보여주는 결과지를 안겨주었다.
다른 정신질환을 겪었던 이들도 그랬을지 모르겠는데, 내가 정신병을 앓고 있는 것이 조금 슬프지만, 후련한 기분도 들었다. 내 증상에 이유가 있었고 치료를 할 수 있는 것이니까. 또 '드디어' 인정해 버리니 그동안 내가 많이 아팠던 게 맞았다. 나는 감기에 걸려 아픈 마음을 방치했다. 안타깝게도. 그래서 이 브런치북에서는 담담하게, 조금은 미소 짓고 나의 정신과 방문기를 삶에 대한 생각과 함께 적어보려 한다. 병원을 다니면서 어떤 것을 경험했고 느꼈는지, 함께 해주시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