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삶은 플러스(+) 보다 마이너스(-)였다.
이전과는 뭔가가 달랐다. 나는 낡고, 지쳤고, 망가졌다. 망가졌다는 게 딱 알맞은 표현이었다. 나이 스물둘에 나는 무너져버렸다. 지금 기억을 더듬어 보면 사실 많은 부분이 흐릿해져 있다.(우리 뇌는 살기 위해 잊음으로써 나보다도 발버둥 친다.) 학교 동기들을 만날 때에는 세상 쾌활하고 찌르는 화살에도 무심한 사람으로 페르소나를 장착하고, 내가 기분이 오락가락해서 동기들과 잘 어울리지 못할까 걱정하고, 동생은 밥벌이를 하며 살 수 있을까 걱정하고, 아빠는 현재 일할 수 없는 상태인데 혼자 돈 버는 엄마는, 100세 시대에 우리 집은 어떡하지 걱정하고, 나는 또 혼자 짊어져야 할 것이 많이 생겨 있었다.
나이가 차면서 내가 불행한 것에 내 잘못은 없음을 인지해 버렸는데, 그 시점부터 나는 끝없이 억울하고 분노했다. 지금 생각하면 내 태도와 관점이 그렇게까지 나쁘진 않은 상황을 더 악화시켰을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그때 나는 더욱더 최악을 생각하지 않으면 안 됐다. 원인은 나한테 없는 것들이었다. 가장 큰 원인은 아빠의 계속된 사업이긴 했다. 아마 거기서 모든 게 시작됐을 것이다. 가정사 중에 아버지의 사업이 망하는 이야기는 되게 뻔한 스토리인데 그게 내 이야기가 될 줄 누가 알았을까. 당시 나는 너무 분해서, 억울해하고 분노하는 데 많은 시간을 소비했다. (이제와 생각하면 그때의 나에게 제발 그만 억울해하라고 하고 싶다. 그렇지만,, 우리 모두 어쩔 수 없었다.) '나는 괜찮아야만 해. 나라도 정상이어야 해. 나까지 이상해지면 엄마는? 우리를 키우려고 혼자 노력한 엄마의 삶은 어떻게 되는 거야.' 머릿속을 헤집는 생각이 나를 괴롭히는 가운데 나에게 상처 주는 말을 한 엄마 또한 미웠다. 우리 엄마는 여러 이유로 힘들어했고, 그게 나와 동생에게 언어폭력으로 돌아왔다. 나는 엄마가 불쌍하면서도 미워서 미칠 지경이었다. 엄마를 보듬어줄 사람은 나밖에 없는데 엄마의 말이 나한테 상처가 됐다. 그래서 나는 항상 억울해했던 것 같다. 내가 이 집에서 제일 엄마를 이해하고 공감하며 살았는데, 엄마는 아무도 자기를 이해 못 해준다고 힘들어했기 때문이다. 내 마음이 엄마한테 까지는 안 닿았던 것 같다. 내 생각이지만 딸과 엄마, 그중에서도 장녀와 엄마는 둘의 삶이 깊게 연결되어 있는 경우가 많은 듯하다.
어느 날 가만히 생각했다. 내 삶이 플러스보다 마이너스 같다는 생각, 그렇다면 살아있는 게 무슨 소용이지? 까지 가다가 그만 생각하자고 스스로를 다독였다. 나는 점점 높은 곳을 올라가면 몸이 산산조각 날 높이를 가늠해 보게 되고, 빨간불 횡단보도를 빤히 쳐다보는 날이 잦아졌다.
여러 상황이 미성년자일 때부터 계속되니 어느 순간 지치는 때가 왔다. 나에게는 그게 작년인 22살이었고, 그전까지는 삶이 나를 내몰아치더라도 살아야지,라는 생각을 자주 하며 버티곤 했는데 언젠가부터 자꾸 +와 -가 머릿속에 맴돌았다. 내 삶의 무게를 플러스, 마이너스로 나누어 재어본다. 아무리 봐도 마이너스 쪽이 무거웠다. 그렇지만 나는 죽고 싶지 않았다. 살기 싫다. 죽기도 싫다. 내 사고회로가 위험하다는 걸 그제야 눈치챘고, 이제는 물러설 곳이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엄마한테 내가 ADHD(주의력결핍 과다행동장애)인 것 같다(본인도 우울증 같다고 느끼긴 했지만 증상이 겹치는 게 있었고 그때는 차마 우울증이라고 말할 순 없었던 것 같다.)고 하고 정신과를 가보겠다고 했다. 이건 안 되겠다 싶었다. 그렇게 긴장하며 찾은 정신과는 생각보다도 정말 정말, 별 게 아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