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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으로 정신과 약을 처방받았다

by 나이현


나는 행동력이 나쁜 편은 아니어서, 정신과를 가자고 결심하니 속전속결 이었다. 여기서 내가 실수한 것은 병원을 여러 군데 알아보고 가지 않은 것이다.(여러분은 잘 알아보고 가길....) 나는 지금 당장 한 결심을 구부리고 싶지 않아서 결정한 김에 지금 내가 있는 위치에서 가장 가까운 정신과를 방문했다. 나중으로 미루면 결국 또 여러 날을 힘들어 하지 않을까 싶었다. 근처 두 군데로 좁혀서 전화를 해보기는 했는데, 한 쪽은 예약이 필요했고 한 쪽은 당일 진료가 가능했다. 같은 이유로 가깝고 당일 진료가 되는 병원으로 그냥 갔다. 지금 생각하면 참 대책도 없이 이상한 부분에서 행동력이 좋았구나 싶다.

병원은 정말 별 게 없었다. 내가 감기 걸려서 진료를 받듯이 몇 가지의 검사를 걸쳐 진행되었다. 처음 방문할 경우에는 검사 비용으로 약 10만원 내의 비용이 드는 듯하니 이 점을 유의해 방문하기를 추천한다. 나는 진료가 끝나고 결제할 때 8만원 정도 들었던 거로 기억하는데, 갑자기 큰돈 쓰려니 마음이 조금 쓰라렸다.


나는 우울증의 증상으로 가장 도드라졌던 부분이 기억력 감퇴와 집중력 하락, 무기력증 이었다. 가장 힘든 시절이었던 고등학생 때부터 집중을 잘 못했는데 어느새 30분 집중하는 것마저 까마득하게 느껴졌다. 공부를 하다가도 잊고 있었던 잡생각들(우울하고 부정적인 생각도 생각이지만 옷 사야지, 화장품 사야지, 게임 하고 싶다, 그 친구가 아까 한 말의 의미는 뭐였지, 저녁은 뭘 먹지 등 끝없는 생각이 집중에 해가 될 정도로 계속됐다)을 떠올리고, 바로 어제 일도 잘 기억하지 못했다. 특정한 사건을 기억할 뿐 내가 누구에게 무엇을 했고 무슨 말을 했는지 흐릿했다. 또 방금 나한테 일어난 일인데도 방금 일어난 게 현실이 맞나 헷갈리기도 했다.

현재까지도 나와 자주 붙어있는 남자친구 G와 있었던 일이나 대화내용 한 단락을 완전히 기억 못할 때가 한 번씩 있다. G가 설명을 해주어도 내 머릿속으로는 그 내용이 조금도 기억이 나지 않아 답답했다.(내가 어느 곳에 갔던 사실을 기억 못하기도 했다) 여러 기억이 합쳐져서 다른 기억이 되기도 하고 이러한 일들이 반복되니 스스로가 답답해 견디기 힘들었다. 기억이 나지 않는 게 가장 기분이 이상했다. 있었던 일인데, 어떻게 이렇게까지 기억의 힘은 무용지물인지. 남들과 조금 다르다는 감각이 기분 나빴다.


이러한 증상과 나의 가정환경 등의 이유로 병원을 찾았고 나는 병원에 가서도 ADHD같다고 했으나 우울증 때문에 그럴 수도 있다는 소리를 들었다. 첫날은 검사하는 데 시간이 좀 걸리니 이 점도 참고하길 바란다. 설문조사 하듯이 검사를 끝마치면 결과와 함께 진료를 시작하고, 결과지는 직접 받을 수 있었다. 결과지에는 생각보다도 자세하게 나의 성격과 결함 결핍 등을 보여주는데, 나는 부정적이고, 완벽주의자고, 정서적 결핍이 있고, 자기통제를 못하는 등의 사람이 된다. 하지만 어쩔 수 없다. 받아들여야 한다.. 그게 나니까. 선생님은 결과지를 해석해 주시면서 어떨 때 불안함을 느끼는지, 어떤 생각이 드는지를 여러 방면에서 차근히 물어보신다. 그리고 그에 맞는 약을 처방해 주신다. 처음 처방은 푸록틴캡슐 10mg과 데팍신서방정 25mg이었다. 처음에는 효과가 있다고 느끼긴 했지만.. 결론적으로 나는 병원을 옮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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