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 날 알아. 그럼 그렇게 살고 싶어져

by 나이현

"내가 아는 여자 중에 제일 재미있게 사는 것 같아요."

내가 이런 말을 듣는 날이 오다니. 나쁘지 않다 아니, 좋다.


솔직히 말하면 지금까지 내 삶이 재미있다고 생각한 적은 별로 없었다. 나는 어릴 때부터 내 삶이 정말 평범하기 그지없다고 생각해 왔기 때문이다. 특별한 재능도 없고, 커서 하고 싶은 것도 없고, 성적도 평범하고, 딱히 노력하지도 않는다, 고 생각해 오긴 했다.

극단적으로 튀지도 안 튀지도 않는 중간 어딘가에 위치해 이렇게 살다 죽음을 맞이하겠지라는 생각을 했었다. 어떻게 이렇게 몇십 년을 더 살아가야 할까 싶던 때도 있었다. 지금 생각하면 꽤나 비관적인 사고방식이었던 것 같다. 왜 인지 모르겠지만 그랬다. 그런 내 삶의 작은 부분을 보고 재미있게 사는 여자라니, 가당치도 않았기에 할 말을 잃고 정말 그러느냐고 되묻기밖에 못 했다. 되물으니 그렇단다. 신기한 감각이었다.


물론 내 삶의 단편적인 모습만 보고 말한 것 또한 맞다. 그가 재미있다고 해서 그동안의 내 삶 어떤 부분이 바뀌진 않는다. 애초에 삶이라는 것 자체가 기준 따위 없고 모두가 다르게 생각하는 것이니 어떤 이에겐 재미있고 어떤 이에겐 재미없는 것이 삶일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재미있다고 말해주는 건 역시 기분 좋은 일이다. 본인의 삶을 재미있다고 생각해 본 적 없는 사람에겐 더 크게 다가올 수 있는 일이다. 그동안의 내 삶은 바뀌지 않지만 앞으로 대할 삶이 바뀔 수는 있다. 그는 나에게 작지만 어떤 힘을 준 것이나 마찬가지다.

피곤해서 자체 공강 했다는 말로 물꼬를 튼 대화인만큼 별생각 없이 건넨 그의 말이 돌아가는 길을 따라 맴돌았다. 헤드셋 안에서는 스텔라장의 어떤 날들이 재생되고 있었다. 그날따라 노래 가사가 잘 들렸다.


어떤 날들은 아무 이유 없이

눈물이 흐르고

또 어떤 날은 하늘만 봐도

가슴이 벅차네

썩 좋은 오늘 하루


침대에 누워서도 몇 분간은 그 말을 생각했다.

"내가 아는 여자 중에 제일 재미있게 사는 것 같아요."

몇 자 안 되는 문장을 여러 번 더듬었다.


그 사람은 알까? 내가 집에 와서도 저 말을 몇 번 곱씹었다는 것을.

그 사람은 알까? 본인의 말이 누군가의 기분을 좌우했다는 것을.

그 사람은 알까.


나는 이런 일이 생길 때 말의 힘을 믿게 된다. 내가 생각하는 나는 별로일지라도 상대방이 나보다도 나를 더 알아봐 주었을 때, 정말 그런 사람으로 살고 싶어 진다. 누가 나를 알면 아는 대로 살고 싶다. 알고 있었지만 열어보니 더 괜찮은 사람이고 싶다. 쉬운 일은 아니지만.


김신지 작가의 <기록하기로 했습니다>에서 공감되는 글을 봤었다.

돌이켜보면 사람들 앞에서 고장 난 형광등처럼 떨어대고, 나 자신을 어떤 식으로 아껴야 할지 몰라 남의 눈치부터 보던 지난날의 나를 키운 건 좋은 말들이었습니다. 정확히는 그 말을 믿고 싶어 지던 순간이 나를 키웠다고 해야겠죠.

누군가가 나를 실제의 나보다 좋게 말하면, 정말 그런 사람이 되고 싶어 졌기 때문이에요. 나는 보잘것없는 내 안을 다 알고 있는데, 누군가 거기서 꽃이라도 발견한 것처럼 말해주면 그 꽃이 정말 거기 있는 것만 같았고 그 꽃을 잘 가꾸고 싶어 졌습니다.

그러니 여러분에게 닿은 좋은 말을 믿으세요.


내가 느끼기에 내 삶이 별로일지 모른다. 그렇지만 누군가 나를 안다면, 나는 기꺼이 그가 아는 대로도 살아야겠다. 실은 그런 것이다. 내 삶이 별로라고 느껴지고 고뇌하는 것도 결국은 잘 살고 싶은 마음 때문이다. 다음을 기대하고 싶은 것이다. 이번 생을 흐지부지 끝내고 싶지 않은 것이다. 그러니 나는 그가 알아준대로 재미있게도 살아야겠다. 언젠가 이 기억과 함께 내 삶을 돌아볼 때 웃을 수 있도록.


"너 열심히 살아. 되게 열심히 사는 거야."

최근엔 이런 소릴 들었다. 이 말 듣고 집 가는 길에 눈물이 났다. 열심히 사는 사람이 너무 많아서 '열심'이란 감각이 무뎌져 있던 때에 들은 말이라 훅 들어왔다. 정말 믿고 싶은 말이고 그런 사람이 되고 싶다.

삶이란 건 예상치 못한 곳에서도 살아갈 동력을 얻는 듯하다. 위로를 건네려는 것도 아니었던 가벼운 말이 그날 하루를 행복하게 만들었다. 다른 이의 삶을 알아줄 줄 아는 사람의 다정함을 맛보았던 날. 일기장을 뒤적이다 우연히 다시 읽고 좋은 기억을 남겨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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