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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당하기 힘들다면 멈추는 것도

정신과 상담 후기

by 나이현


"어머니하고 본인의 가족이라는 정의가 많이 다른 것 같아요."


내 가정사를 들은 선생님의 말씀이었다. 당연한 사실이지만 병원이 내 가정을 어떻게 바꿔주지는 않는다. 그저 나에게 일어나는 일들을 견뎌내는 힘이 생기도록 도움을 주는 것일 뿐. 나는 도대체 내가 뭘 잘못한 것일까 되뇌던 나날 속에서 이 모든 게 내 문제가 아니었다는 걸 깨달을 때쯤 다른 사람이 되었다. 매우 분노했고, 억울해했다. 그런데 사람이 감정에 휩싸이면 제대로 된 판단을 하기도 힘들뿐더러 심한 일이 아니어도 그런 쪽으로 밖에 안 보인다. 상담을 통해 알게 된 것은 나는 가정을 타인보다도 못하게 보는 경향이 있었다는 것이다. 분노에 휩싸여 내가 싫어해야 할 사람들로 정의해 버렸다. 그도 그럴 게 그동안 가장 많이 했던 생각이 '가족은 족쇄이고 내가 무언갈 할 때 걸리는 것이다'라는 생각이었다. 특히 어머니랑 가장 교류를 많이 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어서 나는 엄마를 사랑하면서도 증오하고 그런 오묘한 마음을 갖고 있었다. 내가 그렇게 힘들어했지만,, 부모님은 날 사랑하셨다. 그렇다고 해도 그러면 안 되는 거지만.


우리는 대면으로 말하는 것보다 메시지로 대화하는 게 편했다. 싸움도 메시지로 했다. 내가 어떤 점이 불만이라 이런 느낌이 든다고 말하면 엄마는 알겠다고 하시고는 잠시 후에 장문으로 답장했다.

'나는 그동안 너를 위해 이런저런 것을 했다. 근데 어떻게 그러니 엄마한테. 나도 많이 힘들었다. 너도 그걸 알아줘야 해.'

요약하자면 이런 이야기들이었다. 그럼 나는 또 그런 엄마를 이해해야 했다. 계속 반복하니 토할 것만 같았다. 선생님은 이런 경우가 앞으로 생기면 '나는 지금 이걸 감당하기 힘들다'는 것을 밝히고 그만하자고 대화를 잠깐 중단하는 게 차라리 도움이 된다고 하셨다. 조금 더 정확한 진단이 되길 원하는 마음으로 대화내용도 보여드렸다. 만약 정말 이 병을 고치고 싶다면 적극적으로 보여줄 수 있는 것은 보여주는 걸 추천한다. 감정을 휘갈긴 일기장도 좋다.


가정환경 자체를 해결하기엔 내가 나가거나 변하길 기다리거나 인데, 나는 지금 처한 상황이 괜찮아질 때까지 기다리기를 선택했다. 그 결과는 다행스럽게도 긍정적이었다. 우리는 서툴지만 화목해지려고 노력하는 가족이 되었다. 엄마한테는 정신상태가 괜찮아지고 있다고 하니 도움 준 게 없는데 괜찮아지고 있어서 다행이라고 고맙다고 하셨다. 지금까지 있었던 일들을 잊어버린 것은 아니다.(차라리 그랬다면 좋겠다) 그러나 지금은 서로 힘을 내보고 있다. 이전에는 인사도 없었던 우리가 이제는 외출 후 돌아오면 손을 번쩍 들어 인사한다. 약간의 일상적인 대화도 한다. 아마 이건 우리가 돈만 없었기 때문에 가능했던 것 같다. 제일 문제라고 생각했던 부분이 어느 정도 괜찮아지니 급속도로 정신도 맑아졌다.


나는 순간 '이제 곧 약 안 먹어도 되려나?!' 같은 생각을 했다. 하지만 인생이 항상 그렇듯 또 뭣 같은 일은 찾아오기 마련이다. 나는 금방 약을 추가하게 되었다. 그건 나의 또 다른 마음의 문제가 시작됨을 의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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