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무리해서 우울증과 내 상황을 회복하려 했다.
가정과의 일이 해결된 후 나는 급속도로 상태가 좋아졌다. 나한테 있던 결핍을 한 순간에 치료할 수는 없지만 어찌됐든, 꼬여 있던 실타래가 조금은 풀린 듯한 느낌이었다. 한 번 풀리기 시작하니 다른 꼬인 부분도 풀고 싶어졌다. 그게 '잘 살고 싶은 마음'이었다. 항상 아껴 쓰고 무언갈 살 때마다 전전긍긍 하던 기억이 있던 나는 경제적 여유가 생기고 싶었고, 돈을 빨리 모으고 싶었다. 그래서 오래 일 한 레스토랑을 허리디스크로 그만두고도 또 다시 쉼 없이 일을 찾았다.
모아둔 돈이 꽤나 있음에도 조바심이 났다. 빨리 돈을 모으고 싶은데 나는 지금 돈을 벌고 있지 않다. 그 사실이 너무 답답해 금방 알바 면접을 보고 일을 시작했다. 그것이 불러올 것들을 모르는 채로. 나는 한 번도 해보지 않은 카페 알바를 하게 됐다. 난이도가 높은 일부터 해보았기 때문에 카페 업무는 레시피가 익숙해지면 매장을 관리하는 데 있어 엄청나게 어려운 부분은 없었다. 문제는 적응이었다. 사람이라는 변수가 있음을 나는 예상하지 못했던 것이다. 점장님은 무경력자인 나를 뽑아놓고 경력자처럼 일하길 원하셨다. 초반이라 실수할 까봐 살펴보는 것이야 알고는 있지만 나의 행동 하나하나를 해체하여 왜 이렇게 하냐, 이게 더 편하다, 그걸 왜 넣냐 등등 사소한 부분까지 지적했다. 안 혼날 생각이었던 건 아니다. 못하면 어느정도 혼나면서 배워야 하는 것도 알았다. 근데 처음인 사람보고 적응도 하기 전인데 심하게 혼내야 하는 것일까. 나도 실수를 하기 싫었다. 하지만 처음에는 어쩔 수 없지 않은가. 완벽주의적인 성향 때문에도 나는 나를 더욱 채찍질 했다. 알바를 가는 날이면 가기 전까지 손에 아무것도 잡히지 않아 레시피를 외우거나 핸드폰을 했고, 쉬는시간에는 혼난 게 서러워서 눈물이 났다. 직원끼리 내 얘기를 수근거리는 것 같았고, 나를 그저 못하는 알바생으로 보겠지 가늠해본다. 집에 가서 G와 통화하며 울었다. 아무리 그래도 꼭 그렇게 까지 해야만 하느냐고. G는 이정도로 고통 받을 바에는 그만두길 원했다. 그렇지만 돈을 모으고 싶었고, 조금만 더 버텨보자는 생각으로 주에 3일 4시간 반 주휴수당도 나오지 않는 알바를 꾸역꾸역 했다.
정신과에 가서도 모든 증상을 말씀 드렸다. 당연하게도 선생님은 그런 생각들-다른 사람이 나를 이렇게 생각하겠지 과도하게 상상하는 것-은 하지 않는 게 좋다고 했다. 그리고 긴장에 도움을 주는 약도 처방해 주셨다. 나를 좀 더 관찰해보는 시간을 가지라고 하셨다. 나는 또래보다도 나를 많이 관찰하고 고민한 편이라고 생각했는데, 아직도 부족한 것인가. 그렇지만 관찰하지 않으면 안 됐다. 나를 살리기 위해서는.
집에 가서 책을 하나 꺼내들었다. 내가 이전 알바에서 심적으로 힘들 때 도움받았던 심리학 책이었다. 이 책을 다시 읽어보면 해답을 얻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마음에서 였다. 천천히 읽어내렸다. 그리고 놀랍게도 정말 해답이 있었다. 그 책에도 나를 관찰하라는 얘기가 쓰여있었다. 나는 책과 선생님의 말씀대로 나를 심히 관찰해 보고 그것을 종이에 적어내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