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울증 환자에게도 아침이 올까.
이전에는 내일을 기대한다는 게 나에겐 어려운 일이었다. 내가 무얼 잘못했길래 이런 일이 생길까, 이 지옥은 언제 끝나는 것일까. 왜 하나가 끝나면 또 하나가 날 찾아올까. 방이라는 내 공간에서 소리없이 울었던 날은 셀 수 없이 많았다. 정신과에 가는 건 내가 가장 힘들 당시 상상도 못 했다. 나는 우울증에도 기준이 있다고 생각했고, 그런 난 자해도 하지 않고 sns에 우울감을 공유하는 계정 정도를 만들어 봤던 그저 슬픈 사람 중 하나인데 병원에 갈 정도는 아니라고 생각했다. 이제 와 생각하면 내가 참 겁이 많았다. 우리 사회는 정신이 아픈 사람을 잘 이해하지 못 하니까. 내 성향이 바뀌지 않았다면 난 영원히 병원에 가지 않았을 거다.
정말 좋아하는 작가가 있다. 그 작가는 삶을 아름답게 보지 못하는 나에게 아름답게 볼 수 있는 마음을 주었다. 하지만 내가 그대로 따라할 수는 없었다. 나는 여유가 없고, 남의 시선을 신경쓰고, 부모를 원망하고, 끝내 빨간불인 횡단보도에 멈추어 있고 싶다고 생각하게 된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나의 요즘을 한 마디로 표현하기엔 다소 무리가 있겠다. 지금은 내가 조금은 좋아하는 작가 같아졌을 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작가가 말하는 삶은 한 마디로 표현할 수 없다. 너무나 많은 곳에서 아름다움을 찾고, 발견하고, 경험하고, 느끼니까. 이렇게 아름답게 세상을 볼 수도 있구나 신기한 감각을 주었으니까. 그래서 나는 남의 인생을 읽는 것 또한 좋아하는 편이다. 지금 당장은 시궁창 같은 내 삶과는 다른 곳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살아가다 보면 내 안에 읽어왔던 여러 사람의 삶이 담긴다. 누구처럼 비 오는 날 일부러 맞아 보기도 하고, 누구처럼 모르는 사람과 무작정 대화해 보기도 하고, 누구처럼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기도 하고. 그렇게 살아진다. 내가 읽던 삶과 내가 비슷해진다고 느끼면 일종의 행복감이 인다. 이전에는 상상도 못한 일이다.
최근 우리 가족은 오랜만에 다 같이 생일을 챙겼다. 나의 생일 케이크를 샀고, 나와 차이가 얼마 안 나는 엄마에게는 동생과 아빠가 퇴근하고 들어올 때 바로 초를 들이밀었다. 요즘 새로 생긴 우리의 대화주제는 남자친구 G이다. 너무 오랫동안 잊고 있었던 가족이라는 게 나한테 들어왔다. 정말 오랫동안 불행했다. 나는 우리 가족이 영원히 회복되지 못 할 것이라고 생각했고 절망했다. 이제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어릴 때 하고 싶은 말을 워낙 따박따박 당차게 말하고 발음이 좋던 나에게 아나운서가 어울리겠다고 우스갯소릴 하던 때로 돌아갈 수도 있겠다고, 가끔 생각한다. 나는 그동안 너무 많이 바뀌어 과묵한 장녀가 되어 버렸지만, 그럼에도 이전처럼,,, 내 얘기를 할 수 있는 믿을 구석이 하나 생기지 않을까 기대한다. 그러다 보면 눈물이 난다. 이 변화가 내겐 너무 감사했다.
그렇다고 해도 내 인생이 항상 요즘 같지만은 아닐 것이라는 걸 안다. 나는 여전히 치료 중이고, 나약해서 금방 스트레스를 받아 지치기도 한다. 여전히 사람들의 시선을 신경 쓰고, 내 안의 결핍은 계속 안고 가야 할 것이다. 그런데 이전에는 그래서 죽고 싶었다면, 다만 이렇게 살아간다고, 항상 좋은 일만 있을 순 없다고 생각한다. 우울증은 완치 되기 어려운 병일 것이다. 나는 아직도 사는 게 힘이든다. 그렇지만 누군가에게 다들 힘들게 살아요 라는 소릴 하고 싶지 않다. 내가 힘든 데 그게 무슨 상관일까. 내가 힘들면 힘든 것이다. 세상은 살 이유가 많단 소리도 안 할 것이다. 그런 낙관적인 생각을 할 수 있었으면 애초에 심해지지 않는 병이다. 나는 여전히 부정적이다. 시도때도 없이 학교에 가기 싫고 미래가 두렵다. 내 이 마음을 완치하기는 매우 어렵다. 다만 살아갈 뿐이다. 남들보다 느리더라도, 한 걸음 내딛는 게 큰 결심이 필요하다고 하더라도. 그러다 보면 어찌저찌 살아진다.
우울증 환자에게도 아침이 올까에 대한 대답을 이 연재북의 마지막에 하고 싶었는데 쓰고보니 나도 온다고 확신할 수 있을까 라는 고민이 들었다. 나조차도 쓰면서 힘든 순간이 계속해서 생겼기 때문이다. 그런 내가 온다고 자부할 수 있을까. 그럼에도 아침이 오긴 온다고 말 해주고 싶다. 하지만 아침이 되고, 오후가 되고, 밤이 찾아오는 것 처럼 힘든 순간을 막을 수는 없다. 중요한 건, 나 자신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는 것이다. 이것 하나만 중요하게 생각해도 상관 없다. 꼭 나를 잘 관찰하고, 어루만져 주길 바란다. 나를 가장 믿고 맡길 수 있는 건 남자친구도 여자친구도 가족도 친구도 아닌 나 자신이다. 아침이 빠르게 오는 방법은 나를 아는 것이다. 혼자 안 된다면 책을 읽어도, 병원을 가도 좋다. 본인이 견디기 힘들다면 바로 병원을 가고, 조언을 구했으면 좋겠다. 병원 별 거 없다. 나는 병원에서 나를 살펴볼 수 있는 쪽으로 이끌어 주신게 진심으로 감사하다. 그러니 다들 덜 아프면서 살았으면 한다. 아침을 잘 곱씹으면서.
'우울증 환자에게도 아침이 오나요?'의 연재는 이번 화와 후기를 마지막으로 끝마치려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