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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프면 병원을 가야 한다는 것만 알고 있으면 돼

마음이 아픈 건 병원 갈 생각까진 안 이어지는데, 우리 그냥 병원 갑시다

by 나이현

"나 병원 바꾸기로 했어. 스타가 아는 곳. 예약도 방금 오빠 만나기 전에 했어."

남자친구인 G를 만나자마자 자랑하듯 이야기했다.


새로 예약한 정신과의원은 두 명의 진료의가 계셨다. 나는 지인 소개로 오는 것이라고, 스타가 진료받는 분께 받고 싶은데 가능한지를 물었고 최대한 빠른 시일 내로 예약을 잡았다. 두 번째 병원 예약도 첫 번째처럼 바로바로 전화해서 예약을 했다. 이전과 똑같은 이유로 미뤘다가는 내가 손도 못 댈 것 같았기 때문이다. 예약을 잡으려 전화한 날은 남자친구 G와의 약속이 있는 날이었다. 마침 먼저 도착하고 시간이 남아 G를 기다리는 동안 나는 모든 절차를 끝내버렸다.

G는 본인과 맞지 않는다면 옮기는 게 맞다고 다독여주었다. 바로 옆에서 나를 지켜봐 주는 이가 있다는 것은 말로 표현 못할 행운이다. 그는 더 행복했어야 하는데 상황 때문에 그러지 못한 나를 슬퍼했고 본인이 행복하게 해 줄 거라며 적극 지지를 해주었다. G에게는 항상 고마운 마음뿐이다.(G가 없었다면 나는 이번에 찾아온 힘든 시기를 버틸 수 없었을 것이다)


떨리는 마음으로 병원을 찾았다. 선생님은 밝은 미소로 날 맞이해 주셨다. 이전 병원이 맞지 않아서, 지금 집안 일로 정신이 나갈 것처럼 힘들어서 방문했다고 이유를 설명드렸다. 묵묵히 내 얘기를 들으시곤 나를 해체하듯 질문이 이어졌다. 병원이 어떻게 안 맞았는지부터 차근차근 설명했고, 우리의 집안 이야기는 돈을 안 갖다 주던 아빠, 언어폭력을 하던 엄마, 학교에 안 가는 동생, 그 속에 나라도 정상이어야 한다고 발버둥 쳤던 나를 모두 알게 해 드렸다. 내 병적인 완벽주의 성향까지 설명했다. 내가 겪었고, 겪고 있는 상황도 함께 낱낱이 설명을 하고 나니 기존에 처방받던 약은 말도 안 안 되는 양이라고 하시면서 우다다 추가해 주셨다. 여기도 나와 맞을지 어떨지는 아직 모르는 일이지만 조금 더 전문적인 느낌이 드는 것은 확실했다. 선생님은 지금부터 천천히 부작용까지 보면서 나한테 맞는 약을 맞춰 나갈 거라고 하셨다. 이전 병원과는 다른 느낌이 확실했고, 안 맞을지 모른다는 불안 속에서도 확신을 갖게 하는 힘이 있으신 분이었다.


한 번에 맞는 병원을 찾지는 못 했지만 그래도 다행이라고 여겼던 건 나의 실행력과 바뀐 사고방식이었다. 이전에는 너무 우울하고 괴로워도 악으로 깡으로 버티기만 했다. 나는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고 나 혼자 견디는 것이 익숙했으니까. 그것 말고는 방법이 없다고 생각했다. 버티다 보면 괜찮아질 것이라고 생각했다. 시간이 약이라는 말이 있지만 언제나 그렇지는 않았다. 정신과에 한 번 발을 들인 이후부터는 내가 못 버티게 괴롭다고 생각이 들면 병원에 갈 생각을 할 수 있게 되었으니 많은 발전일 것이다. 버티지 못할 걸 버티다 병나는 것보단 그냥 한 번 용기 내서 병원에 가는 게 백 번 낫다. 어찌 되었든 이 글을 쓰는 나는 이 일들을 과거를 회상하듯 쓸 수 있으니. 다음 글에서는 내가 병원을 바꾸고 나서 어떻게 나아지고 있는지를 이야기하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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