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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찻잎향기 Nov 18. 2018

연애 소설_ 40일의 발칙한 아내

발칙한, 그러나 상상하는 그것이 아닌, 가슴 시린 사랑 "반전"

[한지수 연애 장편소설] 40일의 발칙한 아내


_상상하는 그것이 아닌, 가슴 시린 사랑 이야기로 "반전"이 있다.



>> 책 프로필 <<


장르: 연애 소설, 추리극

저자: 한지수_대표작 <자정의 결혼식>(소설집)

출판: 문학사상

발행: 2018년 3월 22일

독서 기간: 2018.4.10.~4.13


>> 이 책을 누구에게 << 


연애에 회의를 품고 있는 사람들,  사랑에 지친 사람들, 이별 후의 사랑이 궁금한 사람, 진짜 사랑은 언제 시작되는가를 고민 하는 사람들에게 추천하고 싶다. 




막 독서를 끝낸 후. 이 가슴 벅차고 뜨거운, 이 충만한 기분을 누군가와 밤새 얘기를 하면서 함께 나누고 싶다. 아, 갈증이 난다. 마구마구 수다 떨고 싶다. 지금 내 심장이 미친 듯이 날뛰고 있는 것만 같다. 


무모한 맛이 어떤 것인지 아는 발칙한 여인 마린과 타인의 이야기에 경청할 줄 아는 지혜로운 여자로 여섯 번째 아내가 된 디지털 세탁소 직원 이경. 두 여자를 동시에 사랑한 한 남자. 죽음 뒤에 부활한 사랑이야기.


정말 미쳐버리겠다. 


▶나는 작가에게 완벽하게 패하고 말았다.


나는 듬직하고도 숭고한, 그러면서도 너무나 서글픈 ‘사랑’을 읽었다, 보았다, 느꼈다, 통감했다. 이야기에 몰입해서 결국은 무너지고 말았다. 


마린으로, 여섯 번째 아내로, 이경 베로니카로 변주되는 한 여인의 사랑과 그 감정을 오롯이 느낄 수밖에 없는, 이런 나를 어찌해야 좋을지 몰라서, 휘청 쓰러질 뻔했다. 하필이면 어쩌자고 나의 이름은 미경이며, 또 어쩌자고 세례명이 베로니카인가. 이경 베로니카, 미경 베로니카. 미치겠다 정말. 죽음을 준비하던 그녀만 생각하면 지금도 눈시울이 뜨거워진다. 


어떤 이유로든 작가는 완벽한 승리자가 되었고. 나는 두 손 두 발 들고 완벽하게 백기를 들어야만 했다. 


나는 ‘사랑’을 보고 싶었다. 죽은 사람마저도 지독히 사랑할 수 있는 듬직한 감정이 그리웠다. 그것이 애정이든 우정이든 전우애든 간에, 사람 사이에 존재하는 사랑이라는 감정을 모두 맛보고 싶었다. <40일의 발칙한 아내>>를 소설로 쓰고자 했던 건 그런 갈증 때문인지도 모른다. - ‘작가의 말’에서


소설가는 꼭 한 번은 ‘사랑’이야기를 제대로 쓰고 싶은 로망이 있다는 글을 어디서 읽은 것 같다. 한지수 작가도 마찬가지라 여긴다. 소설 곳곳에서 그것을 읽어낼 수가 있다. 아니고 읽히고 만다. 그녀의 사랑 이야기가 얼마나 간절한지를. 어찌 보면 지독한 사랑이자 서글픈 사랑이다. 죽어서야 알게 되는 사랑. 아, 생애에 다시 못 올 사랑.


따로 또 같이. 한 공간에 있으면서 같은 연주를 듣거나, 바람을 맞거나, 공허하게 하늘을 보거나. 내가 얼마나 꿈꾸던 일인가. 어딘가에 지금 나처럼 이렇게 공원 벤치에 앉아서 하늘을 보고 나무를 보고 있을 어떤 사람. 그런 막연한 상상으로 환상적인 충만을 느끼던 날들이 얼마나 많았던가. 



▶40일의 셰에라자드: 그녀는 누구인가?


남자 윤선재를 사랑한 마린이자 여섯 번째 아내이자 이경 베로니카는 또한 셰에라자드였다. 


나는 40장의 포스트잇을 앞에 두고 백치처럼 앉아 있었다. 그것들은 마린이 나와 함께 보낸 밤의 숫자들이고, 그녀가 내게 남긴 40일간의 이야기였다. 

.

.

“거리가 조용해지는 시간... 내일 자정 무렵게 다시 와도 될까요? 그래도 좋다면 현관을 열어두세요.”

.

.

40장의 포스트잇은 각기 크기와 그림이 달랐다. 피카소와 클림트, 고흐와 샤갈, 프리다 칼로까지 그들의 그림이 인쇄된 포스트잇이 절반을 넘었다. 아마도 여러 전시회에 다녀온 듯했다. 그 포스트잇 한 장 한 장마다 우리가 보낸 하루치의 드라마가 있었다. (149쪽)


지상에서, 현실 속 선재의 집안이라는 공간에서 만난 마린은 ‘성적 유희’의 절정을 위해 모든 사랑의 감각과 스킬과 만반의 준비를 갖추었던 뜨거운 여인이었다. 


세상에 주눅 든 채 살아온 선재를 꽤나 괜찮은 수컷이라 착각하게 만들 수 있는 뜨겁고 열렬한 몸짓을 아끼지 않는 여인이었다. 그리고 그것이 가능하게 된 까닭은, 어쩌면, 소멸에 대한 저항이었는지도 모른다.


한 사람을 위해, 그 사람과의 사랑을 위해, 동물이 할 수 있는 온갖 대범한 몸짓은, 죽음을 앞둔 사람의 무모함과 초조함이거나, 이 사랑이 아니면 이 생에서 도저히 견딜 수 없을 것 같은 절박함이라는 것을. 나는 너무나도 잘 아는 사람이다. 그래서 ‘마린이 곧 나’라는 식의 빙의가 이루어지고 말았다. 이야기가 결말을 향해서 가는 곳곳에서 말이다. 



▶윤선재: 인연을 주는 건 하늘의 일인가?


잘 알지 못했던 아내의 죽음, 밤마다 기다렸던 마린의 죽음, 엄마의 젖처럼 뽀얀 콤비플렉스라는 액체로 홀로 병상을 지켜내며 죽음을 준비했던 이경 베로니카의 죽음. 그리고 그렇게 죽음 후의 모든 것을 정리해 두고 떠난 이경의 흔적으로부터 선재는 많은 것을 배우고 치유하고 성장하게 된다. 죽음은 사람을 비극적이라기보다는 이성적이고 강인한 힘을 갖게 한다는 것을.


삶의 지도는, 죽음이라는 반전으로 명확해지더군요. - 이경, 베로니카 (135쪽)


사랑이란 건 우리가 했지만 인연을 주는 건 하늘의 일인가 봐요
내게 신앙 같고 내게 형벌 같았던 그대의 옷깃 이제 나 보냅니다 (‘옷깃’의 노랫말에서)



누군가의 죽음 후에 알게 되는 사랑. 오묘한 인연이지만 마치 하늘이 점지한 운명 같은 두 사람. 그렇게 죽음 후에 분명하게 드러나는 사랑 이야기. 한 남자와 한 여자의 황홀한 듯 슬픈 사랑이야기. 그러면서 동시에 세 사람의 사랑 이야기가 되어 버린 윤선재의 행보는 우리에게 주변을 다시 한 번 살펴보게 한다. 


윤선재는 형의 죽음, 이경의 죽음, 아버지의 죽음을 맞이하는 사람이다. 그리고 그 죽음 후의 남겨진 생의 아픔을 고스란히 보여준다. 그리고 그들에게 남은 그마만큼의 부채를 어떻게 끌어안고 살아가야 할지를 보여준다. 그런데 그게 또 우리의 자연스런 삶이라는 것도 깨닫는다.


“남편을 먼저 보냈는데, 저 아이들이 커서 곁을 떠나고, 늙어서 혼자 남게 되면 어떻게 하실 거예요?”

여인은 유쾌하게 말했어요.

“그게 자연이죠”

순간 난 깜짝 놀랐습니다. 우리를 휩쓸고 간 죽음이라는 이 자연의 순리를 폭군으로 여겼거든요. 병으로 요절하든, 백수를 누리고 자연사하든 간에 죽음은 자연의 순리였던 겁니다.



▶남자와 여자의 목소리 변주


작가는 매우 흥미롭고 영리한 방식으로 긴장감을 유지하면서 남녀의 사랑 이야기를 들려준다. 남자의 보편적, 일상적인 언어. 여자의 (휴대폰 속)다이어리의 기록과 종이에 쓰인 글말로. 번갈아가며 이야기한다. 

또한 가상결혼 사이트를 통해 이상적인 그러면서도 현실적인 결혼에 대한 은유적인 서사를 보여주기도 하고. 가상인지 현실인지 가늠할 수 없는 경계의 아슬아슬한 줄다리기도 보여준다.


또한 선재의 시선과 이경의 시선을 교차하면서 남자와 여자의 목소리 변주를 통해. 같은 시간 같은 공간에서 느끼는 방식과 감정을 다르게 서술해 준다. 한편 결혼에 대한 또는 사랑에 대한 남녀의 가치관을 서로 번갈아가면서 말하는 것 같은 인상도 받는다. 


말이 없는 여자를 좋아하는 것의 의미. 그 말없음이 주는 고요와 적막이 얼마나 깊은 상처에서 비롯된 것인지. 


어쩌다 소리를 내면 비명이 되어버리는 벙어리의 말소리. 엄마와 아버지가 자신에게 무슨 짓을 했는지 끝내 알지 못하고 떠난 이경. 이경은 입말보다는 글말로 자신의 모든 것을 표현하고 운명처럼 만난 선재에게도 모든 것을 글로 남기는 방식을 쓴다. 


벙어리... 우리 엄마도 벙어리.


고문관인 아버지. 그 고문관의 딸. 죄없이 고문을 받고는 어느덧 간첩이 되어 버린 남자. 그 남자의 아버지로 두고 살아가야하는 아들을 사랑하게 된 고문관의 딸.


이 딸과 이 아들의 목소리가 교차되면서 들린다. 그리고 그들이 안고 살아가야 하는 상처가 어떤 것인지. 담담한 듯, 그러나 결코 가볍지 않게 보여진다.


작가 한지수에게는 남자의 속내를 이해하고 표현하는 깊이가 매우 남다른 것 같다. 문득문득 남자의 삶과 선동적이며 욕정적인 일상이 적나라하게 느껴지는 부분들이 있다. 정말 작가를 모르고 읽으면 완전 남자 작가의 소설처럼도 느껴진다. 또 어떤 부분에서는 얼핏 프랑스 작가 기욤 뮈소도 보이는 것 같다. 


신은 섹스를 만들었고, 성직자들은 결혼을 만들었다죠? 저는 성직자보다는 신을 더 좋아합니다. (21쪽)


나는 마린7의 브레이크 페달을 밟고 스마트 전원버튼을 눌렀다. 시동이 걸리자, 청아하면서도 묵직한 엔진 소리가 잔잔하게 퍼져나갔다. 리뷰에 쓴 것처럼 녀석의 심장소리는 고독하고 강인한 재규어의 울음소리에 가까웠다. 재규어는 교미 중에 깊고 거친 소리를 내지만, 대형 고양이류 중에서 포효하지 않는 유일한 종이다. 그렇게 포효하지 않으면서 깊고 거친 소리를 내는 사람으로 살고 싶었다. 고독하지만 강인하게. (65쪽)


아, 리뷰가 저렇게 감각적이고 선동적일 수가. 악마의 영혼을 일깨우는 자동차 리뷰 솜씨였다. 



▶엉뚱한 나의 호기심, 본능, 욕망을 자극했던 어떤 것들을 찾아서 다시 읽기.



11쪽에서. 가상결혼 정보 사이트를 찾아 봐야지, 라는 호기심 발동.

26쪽에서. 라벨의 볼레로를 틀어 놓고 몸사랑을 나눠 볼까나, 라는 욕망이 꿈틀대고.

42쪽에서. 결연시 일문일답에 하나하나 답을 하고 있는 나를 발견한 순간에는, 헐~ 대박!

65쪽에서. 재규어의 짐승 울음소리에 가까운 엔진 소리를 직접 듣고 싶다는 호기심 만땅!


83쪽에서. 죽은 내가 남편의 삶에서 부활하는 미친(엉뚱한) 이벤트를 시작해볼까, 라는 엉뚱함도 생기고.

135쪽에서. 내 무덤(꼭 무덤이 아니더라도)의 비문을 꼭 지어놓아야겠다, 다짐도 하고.

146쪽에서. 또 일문일답에 답하고 있는, 어딘가 모자란 나를 발견하게 되고.

162쪽에서. 결국은 노래 ‘옷깃’을 검색하고, 결국은 따라 부르고 있는 나.

166쪽에서. 내 정신의 영역에서 바람을 일으키는 것은 무엇일까, 선재는 ‘행복, 평화, 사랑’이라 했는데. 나는? 머릿속으로 단어를 떠올리고 있는 나. “평화... 사랑...” 


188쪽에서. 결국은 울음을 쏟고 마는 나. “시끄럽다. 네가 내는 소리는 다 비명소리로 들려” 나는 엄마한테 또 얼마나 잔인하게 굴었던가. 말 못하는 엄마에게.


199쪽에서. 문계봉 시인의 시 ‘11월’을 읽고 또 읽고.

215쪽에서. “불행한 결혼을 만드는 건 애정의 결핍이 아니라 우정의 결핍이라던, 니체의 말을 체감할 수 있었지요.” 라는 말을 씹고 또 씹고.

221쪽에서. 나도 관능적인 시들을 찾아 읽어볼까, 엉뚱한 호기심이 발동하고.

232쪽에서. ‘기일’이라는 동음이의어에 담긴 아이러니에 잠깐 호흡을 멈추었고.

248쪽에서. “우선, 미안하다”로 시작하는 아버지의 유서에서 나는 꺼이꺼이 목 놓아 울어댔다.


259쪽에서. 가장 싼 대가로 치르는 용서가 ‘돈’일지라도 그것을 줄 수 있다는 것도 ‘다행이다’는 생각을 했다.

274쪽에서. 나도 내 옆지기에게 “영원히 젊고 뜨거운 여자임과 동시에, 낙천적이며 자애로운 아내인 채로” 남고 싶다는, 아주 말도 안 되는 욕심을 부려보기도 하고.


279쪽에서. ‘영혼석’이라. 나의 유골이 다이아몬드로 가공이 된다? 리얼? 레알?

284쪽에서. ‘라흐마니노프를 듣고 울다’ 당장 피아노 협주곡 2장 18번곡을 들어봐야겠어!

291쪽에서. ‘끝과 시작’을 읽으며. 지적인 은유로 가득 찬 폴란드 시인의 시 안에서 지적 유희를 즐겨본다.

295쪽에서. 요절하는 젊음보다는 늙어가는게 낫지 않을까. 그러니 나도 늙어가는 것에 매일매일 감사해야 하는 일이다.


296쪽에서. ‘빛나는 이마와 깊은 인중으로 인해 더욱 총명해 보이는, 독점적인 특허를 내고 싶었던 미소를 지닌’ (아주 자주 등장하는) 이 구절을 읽을 때마다. 작가가 누군가에게 보내는 찬사라는 생각이 자꾸만 들었다. (그런데 그 해답이 작가의 말에 있었다.)


298쪽에서. ‘추억 그 자체는 단호하고 잔인하며 힘이 넘치는 날것이니까. 추억은 어떤 굴절을 통해 왜곡되어야 아름다울 수 있는 게 아닐까. 좋은 원석도 가공을 거치고 세팅이 된 후에 보석으로 거듭나듯이.’ 내가 아름답다고 여기는 모든 추억들이 어쩌면 내 기억 속에서 왜곡되어 세팅되어 나온 거듭난 장면들일지도 모르겠다.



아~ 책을 읽으며 밑줄 그은 부분이 백만 군데도 더 되는 것 같다. 그만 여기서 멈춰야겠다. 


나, 이러다가 쓰러지고 말겠다. 어서 빨리 빙의되었던 이경의 몸에서 나와야겠다. 



▶그래도 하나 더. ‘옷깃’


오늘 몇 번을 들었던 노래. 슬프게 살다 간, 그러나 뜨겁게 사랑을 이루고 간, 이경의 휴대폰에서 흘러 나왔던 노래 ‘옷깃’(노래 임태경). 그 노래의 노랫말을 여기에 옮겨 적는다.


잠시 스쳐간 옷깃의 인연으로 

나는 오랫동안 비틀거립니다
저 바람은 한숨 되고 햇살엔 눈 시리죠
이 세상 모든 움직임이 그댄 떠났다고 하네요
그대 안에 내 모습 재가 되어 날려도
고운 손등 위에 눈물 묻지 않기를 기도합니다
사랑이란 건 우리가 했지만
인연을 주는 건 하늘의 일인가 봐요
내게 신앙 같고 내겐 형벌 같았던
그대의 옷깃 이제 나 보냅니다
이 생 다 지나고 다음 생에 또 만나기를.
사랑 그것만으로 함께 할 수 있다면
편히 돌아서길 마음도 남길 것 없죠
그대 눈에 눈물 따위 그댈 위해서 나를 버리길.
함께 있어도 멀어져 지내도
눈물로 살 텐데 같이 울면 안 되나요
내겐 신앙 같고 형벌 같았던
그대의 옷깃 이제 나 보냅니다.

이 생 다 지나고 다음 생에 또 만나기를.
사랑 그것만으로 함께 할 수 있다면
편히 돌아서길 마음도 남길 것 없죠

눈물은 거둬요 그댈 위해서 나를 버리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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