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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찻잎향기 Nov 18. 2018

[장편소설] 먼 북으로 가는 좁은 길

도리고 에번스의 생애에서 가장 치열했던 전쟁과 사랑 이야기 

[장편소설] 먼 북으로 가는 좁은 길    

                

도리고 에번스의 생애에서 가장 치열했던 전쟁과 사랑에 대한 회고를 중심으로 읽다 보면

이 또한 연애, 사랑에 대한 성장 소설이 아닌가 싶다. 늙은 생애가 젊은 생애를 돌아 보며 쓰는 

처절한 회고록 같은 사랑이야기


 이야기 



▶ 이 책, 어마어마한 독서 근력과 인내심을 요구한다            


이 책을 읽게 된 동기는, 문학동네 출판사 네이버 카페에서 리뷰대회에 수상한 리뷰들을 읽으면서,"주인공 도리고 에번스의 회상의 서사가 대단하다", "정말 대단한 전쟁 서사다", "걸작이다", "훌륭한 작품이다" 등의 극찬을 많이 보았기 때문이다.     

그런데 나는, 독서 수준이 낮아서 그런지, 읽기가 수월하지 않았다. 도리고의 생각이 너무 산만하고, 과거 시간에 대한 교차가 너무 많고, 시와 산문이 자주 섞이다 보니. 간결하고 매끄럽게 책장이 넘어가지는 않았다. 

그러나 도리고의 서사 중에서 유독 에이미에 대한 회상 부분은 몰입이 잘 되었다. 그녀와의 첫만남, 책방, 카페, 빛, 그림자, 먼지 등에 대한 묘사는 눈에 쏙쏙 들어왔다. 


역시, 나는 모든 소설을 연애 소설처럼 읽는 재주가 탁월하다.

                    



▶ 책 소개            


장르: 전쟁, 사랑, 회고록  

주제: (이차대전 당시의 일본 포로군) 전쟁 서사극, 한 남자의 사랑 이야기    

저자: 리터드 플래너간     

옮김: 김승욱    

출판: 문학동네    

발간: 2018년 1월(초판 1쇄)    

분량: 543쪽    

독서 기간: 2018.11.4~11.11     


[이 책의 스펙]            


2014년 맨부터상 수상작 - 현대 영문학사의 지형도를 바꾼 오스트레일리아 대표 작가의 고향 '태즈메이니아섬의 호메로스'로 불리는 리터드 플래너건. 12년간 집필에 매달려 완성한 5개 판본 중 마침내 나온 최종판.            

"몇 해간 정말 좋은 작품들이 맨부터상을 받았지만, 올해 수상작은 그야말로 걸작이다. 이 작품은 세계문학의 카논으로 자리잡을 것이다." (2014년 맨부커상 심사위원장)            

<먼 북으로 가는 좁은 길>은 17세기 바쇼의 하이쿠 기행문 <오쿠로 가는 좁은 길>의 영문판 제목을 딴 것으로, 작가는 실제로 이차대전 당시 일본군의 전쟁포로였던 아버지에게 이 책을 바쳤다.  (아마도 책 첫장의 "335번 포로에게" 라는 게 그런 의미인 것 같다.)                 

   


▶ 이 책 140여쪽까지 읽고 난 후, 메모지에 남겼던 말들             


이 소설은 먼 북으로 가는 길만큼 산만하고 지루하고 웅장하다.    

그러나 갓길 길목에서 만나는 장면 하나하나는 아름답고 매력적이고 드라마틱하고 에로틱하다.    

각 번호가 붙은 작은 장면 하나 하나에서 들려주는 이야기는 그 자체로 흥미롭다.             

에이미를 만난 이야기, 애인에 대한 열정, 에이미를 사랑하는 것, 그리고 전쟁포로로서 수용소에 있었던 일 에피소드 하나하나. 장면 하나 하나는 마치 하이쿠 시를 읽는 것처럼 간결하고 집약적이고 긴장감 있다. 그러나 그 전체를 보는 것은 장강의 흐름과 같다. 이것은 마치 고단한 생애를 마지 못해 겨우 살아낸 자의 피폐해져 버린 한 인간의 생애를 두꺼운 사진첩으로 보는 거와 같다.            


그리고 그 생애는 그 사람의 이야기를 사진 한 장 한 장을 집어 올리면서 이야기 하는 거와 같다. 어떤 사진은 즐겁게, 어떤 사진은 흥미롭게, 어떤 사진은 유쾌하게, 어떤 사진은 분노로 가득차서, 그렇게 사진을 보며 이야기하는 것과 같은 느낌을 받는다. 그래서 이 소설은 몇 장씩 단편 식으로 쪼개서 읽으면 훨씬 몰입하며 읽을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그래서 이 책에 대한 아쉬움이 조금 있다면 각 장을 시작할 때 하이쿠에 그 비유적이고 상징적인 시보다는 작은 제목을 붙여 썼다 하면 오히려 그 글을 안내하는 느낌이 들어서 더 있기가 수월 했을지도 모른다. 아무리 좋은 상을 받은 책이라도 대중에게 조금 쉽게 다가가는 것이 더 나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 이 책의 주제는 마지막 하이쿠(짧은 시)에 집약되어 있다            


이 세상에서     

우리는 지옥의 지붕을 걷는다    

꽃을 응시하면서    

--  (잇사, 459쪽)              

  

501쪽에서 도리고의 영원한 사랑, 안식처, 삶의 희열이었던 에이미를 잠깐 조우한다.    

그 이후부터 이 책의 내용이 집약적으로 정리되어 있다. 그래서 이 부분을 먼저 읽고 앞부분부터 다시 읽어도 좋을 일이다.             

에이미를 처음 만난 날의 소회 - 빛과 먼지와 그림자와 강렬한 첫인상을 몇 차례 언급한다.     

지옥의 지붕을 걷는 듯한 이 세상(현실)의 삶을 꽃(에이미를 기억하면서)을 응시하면서 사는 한 생애가 비유되어 있다.             

이 소설에서 '햇빛', '여인', '책'은 밝음이며 희망이며 온전한 삶을 의미하는 것 같다.     

상대적으로 '전쟁', '남성', '의술', '그림자' 등은 어둠이며 지옥같은 삶을 의미하는 것 같다.     

그리고 도리고가 에이미를 부르는 다른 이름들을 수없이 자주 되내인다.             

"아미, 아망트, 아무르. (각각 친구, 연인, 사랑을 뜻하는 프랑스어)"    

전쟁 이후 지옥 같은, 악몽 같은 삶을 살아내는 도리고에서 그 이름은 빛이며 생명이며 아름다운 삶이기 때문이다.  마치, 괴테의 파우스트, 호메로스의 오디세이아, 일리아드 등의 어떤 장면들이 떠오르기도 하고.  톨스토이의 전쟁과 평화의 한 장면이 떠오르기도 하는 전쟁, 사랑의 대 서사시와 같은 내용이다.   

          

여기에. 일본의 짧은 시- 하이쿠 (일본 고유의 단시형. 5·7·5의 17음(音)형식으로 이루어진다)가 전체 이야기의 단락을 구분지으면서 5편으로 등장한다. 이것이 동양과 서양의 정서를 아우르는 장치로 쓰인다. 특히 죽음을 눈앞에 둔 시인들이 유작으로 남기는 하이쿠는 삶의 잠언 같은 비유와 상징으로, 한 생애의 삶을 압축하는 기능을 하고 있다.             


45쪽에서 제시되었던, 하이쿠 시인인 시스이가 임종을 앞두고 종이에 그렸던 시는 짙은 원이었다. 오른쪽이 트인. (이 시는 마지막에서 다시 한 번 등장한다)            

                


이 시스이의 시는 도리고 에번스의 잠재의식을 지배했고. 갇힌 허공, 끝이 없는 불가사의, 길이가 없는 너비, 커다란 바퀴, 영원한 회귀, 원을 이루는 선은 안티테제이며, (저승으로 가는)뱃삯으로 망자에 입에 물려주는 은화 같은 의미로 인식한다.     


그리고 이런 시와, 의미는 그의 의식을 따라다니고 잠식하고 만다. 그렇게 도리고 에번스의 잠재의식을 지배했던. 이 그림 같은 하이쿠 시는 539쪽에서 다시 한 번 등장한다. 도리고가 죽음을 맞이하는 시점에서 그 의미를 마침내 이해한다고 한다.                     



▶ 이 책을 추천하고 싶다면, 굳이 왜?            


주인공 도리고 에번스의 긴 생애는 지옥이자 파멸이었고. 이것의 시작은 전쟁이 준 (어마어마한) 생사에 대한 선택  때문이었다.     

전쟁이, 죽음이, 잃어버린 사랑이, 어떻게 죽어가는 기나긴 한 생애를 지배하는지 집요하고 처절하고 철학적이며 문학적인 사유로 보여주는 서사이다.     

이런 집요와 문학과 철학적 사유를 사랑하는 이들이라면 이 책을 꼭 읽기를 추천한다.    

그 모든 것이 다 있다.     

특히 여성을 향한 도리고의 사랑, 열정, 회한 등등은 가히 수많은 고전古典의 세계를 방불케 한다.                    

"에이미, 아망트, 아무르. 그는 속삭였다. 마치 이 단어들이 오르락내리락하는 검은 연기인 것처럼, 양초가 자신의 인생이고 그녀는 불꽃인 것처럼.     

그는 우연히 자기 것이 된 침상에 누웠다.     

얼마 뒤 그는 한동안 읽고 있던 책을 찾아 펼쳤다. 결말이 좋게 끝날 것이라고 기대하던, 그렇게 되기를 바라던 로맨스 소설이었다. 남녀 주인공이 사랑을 발견하고, 평화와 기쁨과 구원과 이해의 이야기로 끝난다면 좋을텐데.     

사랑은 두 몸에 깃든 하나의 영혼이다. 그는 이 구절을 읽고 책장을 넘겼다.     

그런데 아무것도 없었다. ...(중략)... 도리고 에번스는 사랑 이야기가 영원히, 영원히 계속되리라는 것을 깨달았다. 그것은 끝이 없는 세계였다.     

그는 지옥 속에 살게 될 것이다. 사랑 또한 지옥이므로. "     

(543쪽. 도리고의 에번스의 사랑에 대한 단상)       

         

이 대목에서, 이 책의 고단한 독서와 리뷰를 마치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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