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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찻잎향기 Sep 11. 2019

도서 리뷰 [무의식의 유혹]

40대에 이 책을 읽었더라면

도서 리뷰 [무의식의 유혹] 40대에 이 책을 읽었더라면  



'영혼의 치료사'로도 불린 분석심리학자 카를 구스타프 융은 우리의 정신 속에 프로이트가 말하는 무의식만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부분이 잠재되어 있다고 했다. 개인적인 경험과 기억이 축적된 무의식보다 더 깊은 곳에 인간이라면 누구가 공통적으로 지니고 있는 집단 무의식이 있다는 것이다.  


그 무의식을 구성하고 있는 수많은 원형들 중에서 특히 남자의 무의식에 존재하는 여성성인 아니마와 여자의 무의식에 존재하는 남성성인 아니무스. 그것들은 마치 독립적인 인격처럼 우리 내면에 존재하면서 생각과 행동에 긍정적이거나 부정적인 영향을 미친다고 한다.  


이 책의 저자는 융학파 분석가로서 심리치료사로 활동하기 위해 사제직을 그만두고 종교, 심리학, 그리스 신화, 아메리칸 인디언 역사, 영성과 과학을 접목시킨 꿈의 연구에 집중해왔다. 그는 그렇게 축적된 연구를 바탕으로 남자의 아니마와 여자의 아니무스로 우리 내면에서 강력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는 무의식과 소통하고 성찰하는 법을 배운다면 세상의 이치를 이해하는 전체 정신에 가까이 갈 수 있을 것이라고 예측한다.  


또한 진정한 사랑의 완성과 자기실현으로 우리를 안내하는 아니마와 아니무스를 만나기 위해 신화 속 인물과 사랑의 장면, 영화 속 인물과 심리 상태를 덧붙여 설명한다. 흥미롭다. 신화, 영화 등은 언제나 그랬듯이 심리를 분석하는 문장에서도 그 맛과 깊이를 풍요롭게 하는 MSG 역할을 톡톡히 해내니 말이다.  


만약, 내가 이 책을 40대 시절에 만났다면 어떤 영향을 받았을까? 


특히 150쪽의 '아니마의 두 얼굴', 155쪽의 '아니무스의 두 얼굴' 챕터를 읽으면서는 위와 같은 질문에 사로잡히고 말았다. 

나에게 40대는 결혼 암흑기라 할 수 있다. 진정 이 시절에 우울한 남자의 아니마, 화내는 여자의 아니무스를 알았다면. 나는 좀더 평화로운 결혼 생활을 유지할 수 있었을까. 진정 40대들이 이 책을 읽고 무슨 얘기를 하는지 듣고 싶어진다.  


나는 현재 최대의 결혼 안정기(평화기)에 들어서 있다. 어쩌면 이런 안정기를 맞이하고 있기 때문에 저자의 모든 말들이 흡수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아, 그랬구나. 그때 이 남자의 아니마가 이 남자를 자극하고 있었구나.', '아, 그때 나의 아니무스 때문에 나는 나의 인격과 싸우고 있었구나' 라는 생각을 할지도 모르겠다. 한 남자를 30년 이상 가까이에서 보고 듣고 사랑해도 모르는 게 대부분이다. 보여지는 면만으로 그를 판단할 수 밖에 없기 때문이다. 물론 대화 속에 등장하는 그의 내면도 중요한 단서가 되겠지만. 외적으로 드러나는 것과 대화만으로는 채워지지 않는 그 빈틈을 채워줄 이런 책을, 조금 더 일찍 읽었더라면 무엇에 홀린 듯이 '미친듯이 싸우고야 말았던' 암흑 시절은 덜하지 않았을까 싶다.  


이 책을 추천하고 싶다. 누구에게? 


두 남자 사이에서 또는 두 여자 사이에서 심리적으로 갈등하고 있는 사람들에게, 연애를 망설이고 있는 청춘들에게, 결혼에 대해 의구심이 드는 예비 커플에게, 또는 지독한 결혼 권태기에 빠져 있는 부부에게. 권하고 싶다. 어쩌면 어떤 한 구절(문장)에서 실마리를 얻을 지도 모르겠기 때문이다.  


(185쪽) 우리 내면에서는 끊임없이 불가피한 대립이 일어나고 있다. 남성성과 여성성, 아니마와 아니무스, 음과 양, 뭐라고 부르든지 간에 서로 대립하는 두 가지 특성은 영원히 긴장 관계를 이루면서 또한 결합을 추구한다.  

위의 문장에서 많은 답을 얻었다. 내면에서 일어나는 긴장 관계는 특별한 결합을 추구하기 위한 본능적인 투쟁이라 여긴다. 이런 내면(또는 무의식)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집중한다면, 자신만의 특별한 사랑을 쟁취하지 않을까 싶다.   


지금 나는 화내는 여자이기보다는 담백해진 모습을 주로 하고 있다, 나의 남자는 우울한 모습보다는 평화로운 얼굴의 남자가 되어 가고 있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 나이가 들어가면서 여유가 생겨서? 그것보다는 이 책의 맥락에서 접근해 보면, (특히 85쪽 부분에서) 50대 전환기부터 축적된 어떤 기억이 무의식 속에서 특별한 관계를 맺었던 좋은 기억으로 전이되어, 현재 상황에서도 재현되고 있기 때문이다. 다행이다. 나이들어서 좋은 기억이 무의식 속에 내재되고 계속 특별한 관계로 재현되고 있다니 말이다.  


그리고 또 하나. 성적 환상에서 벗어나 현실적인 사랑으로 충만해지기 위해서는. (저의 충고이기도 합니다.) 

진정한 사랑은 우리 내면의 동반자와 현실의 동반자를 구분할 수 있을 때 비로소 가능하다고 한다. 왜냐하면, 아니마와 아니무스의 정신적 이미지는 매우 풍요롭고 불가사의해서 우리도 모르는 사이에 언제라도 밖으로 투사되며, 그것들이 불러오는 감정은 매우 신비롭다고 한다. 그에 비하면 현실의 사랑은 평범하고 하찮게 여겨질 수 있다고 한다. 그러니 환상과 현실을 구분할 수 있을 때 비로소 진정한 사랑을 찾을 수 있다고 한다. (188쪽) 당연한 말씀. 그런데 이 당연한 말씀을 심장으로, 온전하게 현실로 이해하는 데까지는 30여년이 걸렸다는 사실. (현실에는 사랑에도 어마어마한 근력이 필요하다는 말씀이죠. ) 


무의식과 소통하기가 가능하다고? 


이 책의 마지막 챕터에는 무의식과 소통하기 위한 몇 가지 방법이 기술되어 있다. 

소위 '적극적 상상 active imagination'이라는 기법!

이 방법은 우리의 자아가 분명하게 참여할 것을 요구한다. 마음 속에서 일어나는 생각과 감정을 수동적으로 지켜보기만 하지 말고 의식이 적극적으로 관여하도록 하는 것이다. 


아니, 어떻게? 


- 꿈에서 출발하라.

- 환상을 이용하라.

- 마음 속에서 독백을 하라. 

- 적극적 상상을 글로 쓰라. 


결국, 적극적 상상은 의식과 무의식을 화해시키는 일이라 할 수 있는데.

어쩐지 쉽게 따라할 수 있을 것 같으면서도.. 과연 이게 가능한 일일까, 의구심이 들기도 한다. 


나처럼 꿈도 잘 꾸고, 엉뚱한 상상도 잘 하고, 이상한 혼자말도 잘 하고, 이렇게 짧고 비전문적인 글이지만 꾸준히 글도 쓰고 있는데. 그렇다면 나는 이미 무의식과 소통하고 있는 것인가?

그렇다. 이미 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중요한 한 가지. 위의 어떤 것을 하려고 하면 어떤 장면에서든지 의구심이 들면서 '방해하는 목소리'가 들린다고 한다. 마치 마녀가 사랑하는 남녀를 질투하듯이. 적극적인 상상하기에는 방해하는 무언가가 끊임없이 있다고 한다.  


이제 마무리를 하자.  


이 책의 내용을 내가 너무 세세하게 안내할 필요는 없을 것 같다. 

왜냐면 영화처럼 스포일러가 될 것 같기 때문이다. 영화도 두 시간 이상 직관을 하면서, 그 상황에서 집중하면서 현장에서 일어나는 어떤 카타르시스와 감동(또는 어떤 격한 반응)이라는 것이 있는데. 책도 마찬가지인 것 같다. 특히 이렇게 심리학을 접근한 무의식에 대한 내용을 읽을 때, 독자가 '읽어가는 동안 적극적인 상상하기'가 이루어지면서 자연스럽게 내면의 상흔이 치유되는 과정을 경험할 수 있을 것 같기 때문이다.


나는 그런 신비로운 경험을 할 수 있는 기회를, 많은 이들이 갖기를 바랄 뿐이다.  


아, 그리고 이 책은 심리학자 융과 프로이트의 이론이 7할(?) 이상 나온다. 이런 점은 이 책의 단점이자 강점이 되지 않을까 싶다.  


예스 24 리뷰어클럽 서평단  자격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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