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할 시간을 따로 떼어 두어라. 인생이 너무 짧기 때문이다.
독서 기간_ 2018.11.24.-11.25.
저자_ 고두현
출판_ (주)쌤앤파커스
발행_ 2018년 11월 12일 초판 1쇄
분량_ 263쪽
가격_ 15,000원
“앞만 보고 달여온 그대, 이젠 잠시 멈춰 시를 만나야 할 시간”이라고.
“시를 읽으면 뭐가 좋아요?” 이런 질문을 받을 때마다 유익함 네 가지를 말한다고.
첫째, 몸과 마음을 춤추게 하는 리듬(운율)의 즐거움(樂)과
둘째, 마음 속에 그려지는 시각적 회화의 이미지(像)와
셋째, 시 속에 숨어 있는 이야기(說)와
넷째, 이 세 가지를 아우르는 감성의 경계에서 피어나는 ‘공감각적 상상력(想)’이라고.
그래서 이 책에 나오는 시편들은 울림을 주는 깊은 맛과 시 읽기의 네 가지 유익함을 두루 갖추고 있다고 말한다.
유일한 사랑 & 영원한 사랑, 격정적 사랑 & 비운의 사랑, 금지된 사랑 & 위험한 사랑, 첫사랑 & 마지막 사랑
책의 구성은 이런 식의 ‘사랑’ 타이틀을 붙여 가며 1부, 2부, 3부, 4부에 각 시를 배열하고 있다. 그리고 여기 나오는 모든 시의 주제는 ‘사랑’이다.
책의 처음 시는 김영랑의 <모란이 피기까지는>로 시작한다. “최승희를 사랑한 영랑이 목매 죽으려 했던 나무가” 동백나무에 얽힌 일화를 엮어서 말이다.
시와 시인에 얽힌 뒷이야기들. 언제 읽어도 그 내용이 흥미롭다. 꽃 향기만큼 진한 슬픔을 견디던 시인들의 고독한 모습. 상상만 해도 찬란한 슬픔들이 배어 난다. 정말 시인들에게 있어서 사랑은 시의 소재이자 주제이자 영원한 모티프인가 보다.
p.68 소주병
공광규
술병은 잔에다 / 자기를 계속 따라주면서 / 속을 비워간다 //
빈 병은 아무렇게나 버려져 / 길거리나 / 쓰레기장에서 굴러다닌다 //
바람이 세게 불던 밤 나는 / 문 밖에서 / 아버지가 흐느기는 소리를 들었다 //
나가보니 / 마루 끝에 쪼그려 앉은 / 빈 소주병이었다 //
소주를 마시던 체험과 실패한 인생을 한탄하는 아버지가 연상되는 시이다. 아버지들의 인생은 참 고달프다. 그리고 50대가 되어 있는 우리들 또한 어쩐지 이 아버지와 연대감이 생기는 것 같다. 공감이 가는 시이다.
p.110 눈부시게 아름다운 5월에
하인리히 하이네
눈부시게 아름다운 5월에 / 모든 꽃봉오리 벌어질 때 /
내 마음속에도 / 사랑의 꽃이 피었어라 //
눈부시게 아름다운 5월에 / 모든 새들 노래할 때 /
불타는 나의 마음 / 사랑하는 이에게 고백했어라 //
독일에서 가장 사랑받는 시인 하인리히 하이네(1797~1856)의 시다. 이 시는 내게 아주 각별한 시이다. 하이네에게 이 시는 뜨거운 상처를 안겨 준 시이지만. 내게는 사랑과 사람을 만나게 해 준 시이다.
대학교 2학년 봄날(아마도 5월쯤)에 나의 ‘남자 친구’는 이 시를 독일어 원어로 암송하며 들려 주었다. 나를 꼬시기(?) 위해서. 그리고 나는 그 꼬임에 당연한 듯이 넘어가 주고 말았다. 독일과 독일 작가에 대한 터무니없이 많은 ‘동경’을 품고 있던 나. 그리고 고등학교 시절에 독일어 공부를 아주 잘했던 남자. 그 남자를 내가 만났으니. 독일 작가의 시를 독일어로 읊는 이 남자에게 어찌 빠져 들지 않을 수 있었을까. 이날 이후로 이 남자는 모든 기기의 닉네임에 ‘monat mai'를 사용하고 있으며. 나는 34년째 그에 대한 사랑의 약속을 지키고 있다.
p.246 참 예쁜 발
고두현 (이 책의 저자)
우예 그리 똑 같노. //
하모, 닮았다 소리 많이 듣제. / 바깥 추운데 옛날 생각나나 / 여즉 새각시 같네 그랴 //
기억 왔다 같다 할 때마다 / 아들 오빠 아저씨 되어 /
말벗 해드리다가 콧등 뜨거워지는 오후 / 링거 줄로 뜨개질을 하겠다고 /
떼쓰던 어머니, 누우신 뒤 처음으로 / 편안히 주무시네 //
정신 맑던 시절 / 한 번도 제대로 뻗어보지 못한 두 다리 /
가지런하게 펴고 무슨 꿈 꾸시는지 / 담요 위에 얌전하게 놓인 두 발 /
옛집 마당 분꽃보다 더 / 희고 곱네. 병실이 환해지네. //
시를 읊으면서 애닯고 서러운 마음이 올라온다. 우리 엄마... 우리 엄마의 마지막 병원 시절에도 저리 곱고 예쁜 발을 보여 주었는데. 나는 제대로 한 번도 만져 보지 못했더랬다.
기억이 왔다 갔다 하는 어머니를 바라보는 아들의 시선에서 콧등이 시큰해진다.
발바닥이 쩍쩍 갈라지는 길을 묵묵히, 힘겹게 걸어오셨을 어머니를 생각하며 아들은 또 얼마나 마음이 아팠을까.
링거 줄을 감았다 풀었다 하는 어머니의 끝자락 삶도 그런 어머니를 바라보는 아들의 애달픈 마음도 참 곱다.
내가 품이 그리 넓지는 못하지만. 저들을 꼭 안아 주고 싶다. 햇살을 받아 눈부신 희고 고운 두 발과 그들의 삶을 함께 말이다.
이 책에는 한국의 시와 외국의 시가 적절하게 섞여 있다. 그 분량도 수십 편이 넘는다. 최근 책꽂이에서 무시로 꺼내 읽는 류시화 시인의 에세이집<시로 납치하다>와 더불어 가까이 곁에 두고 한번 씩 꺼내 읽어 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