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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브랭 Oct 23. 2020

백일의 기절 그 후

나도 엄마가 처음이라

아기가 태어나고 백일 간은 본능의 시간이었다. 모든 감각기관은 아기에게 맞춰졌고, 가슴은 생물학적인 기능을 뽐내듯이 젖으로 흘러넘쳤다. 3킬로그램도 안되던 아기를 7킬로그램까지 키워내는 동안 손목과 어깨, 허리는 아스라 져서 너덜너덜해졌다.


나를 추스를 새도 없이 오롯이 아기에게만 집중하던 기간 백일이 지나고 나서야 내가 보다. 한 움큼씩 빠지는 머리카락, 푸석푸석한 피부, 빨갛게 충혈된 눈, 푸르스름한 다크서클까지 그야말로 총체적 난국이었다. 허리에는 튼살이 가득했고 출산 후 늘어진 복부는 충격적이었다.


아이만 낳고 나면 다 끝인 줄 알았다. 텔레비전에 출산 후 복귀한 연예인들은 다들 날씬하고 여리여리했는데, 나는 왜 추레한 건지 알 수가 없었다. 안아서 달래야만 겨우 잠이 드는 아이를 키우면서 백일 간 굽어버린 어깨에는 토사물만 얼룩져있을 뿐이다.


나보다 더 사랑하는 존재가 생겨버렸기 때문에 내가 사랑했던 내가 없어져 버렸다. 사랑의 대가 치고는 너무 가혹하다. 나는 이 몸뚱이를 가지고 60년도 더 살아야 하는데 어쩌지.


외출도 쉽지 않다. 아기에게는 분유를 먹이면 된다지만, 젖은 계속 차오른다. 아기가 없어도 내 몸은 아기를 향해있다. 멀리 나갈 수도, 오래 나갈 수도 없다. 아기에게 메인 몸이다. 신체의 자유를 이토록 속박받은 적이 있었나. 나는 언제쯤 나갈 수 있을까. 답답함 속에 경력단절에 대한 불안함이 스며든다.


이무래도 나를 사랑하는 방법을 다시 익혀야겠다. 아기가 없던 세상에서의 나는 이제는 없다. 이제 새로운 세상이다. 처음 보는 나와 마주한다. 뭉텅이로 빠지는 머리카락, 새빨갛게 충혈된 눈, 굽어버린 어깨, 뻐근하게 솟아오른 승모근. 모두 다 처음 보는 나다.


거울 속의 낯선이와 어색하게 인사를 나눈다. 처음 뵙겠습니다. 이렇게 만나고 싶지 않았지만 어쩔 수 없네요. 이왕 이렇게 된 것 앞으로 잘해봅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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